행정감시센터 칼럼(ts) 2005-09-08   968

<안국동窓> 그들에게 로드맵은 없었다

현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새로운 용어들이 적잖게 등장하였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로드맵이 아닌가 싶다. 한때 로드맵이 뭐냐고 다들 궁금해 했었는데, 이제는 그럭저럭 다 알게 되었다. 한때 언론에서는 현 정부가 외래어를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했었는데, 이젠 그것마저도 쑥 들어갔다.

이렇게 이 정부는 로드맵과 함께 시작하였다. 많은 로드맵들에 현 정부가 지향하는 국정운영의 이념과 방향을 담고자 하였다. 일부 구체적인 정책과제까지 제시되었다. 현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국정이념을 구체화한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첫 해는 로드맵을 마련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고 했다. 국정운영과 관련된 문제가 터질 때 마다 그들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로드맵만 완성되면, 로드맵에 따라서 모든 문제들이 다 풀릴 거라고 그들은 말했다.

2년 반 이상이 지난 지금, 하나하나 따져보면 분명 로드맵에 의하여 진행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로드맵으로 체계적인 개혁이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다는 장점을 구태여 부인하지는 않는다. 로드맵의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앞으로 갈 길, 즉 방향을 알게 해준다는 데 있다. 앞으로 무엇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예측하게 해준다. 때문에 사람들은 로드맵을 통하여 기대감과 희망을 갖는다. 노력도 하고 인내도 한다.

국민들은 기다렸다. 가끔씩 문제가 터져도 기다렸다. 과거 정부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전 정부에서는 한 적이 없었던 구체적 로드맵을 만들었고, 또 그대로 실천하겠다고 하였고, 또 믿어달라고 했으니 말이다.

현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2년 반. 이때 쯤이면 로드맵에 따라서 국정 이념이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되었고, 또 국정운영도 효율적으로 이루어졌어야 할 시점이다. 물론 모든 것들이 로드맵대로만 진행될 수 없음을 모두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참 양보해도 대세는 국정운영 전반이 로드맵에 따라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떠한가? 현 정부가 각종 로드맵에서 강조하고 있는 정책들은 얼마나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가? 그 좋은 국정이념들은 얼마나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그리고 온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요 정책들만 보더라도 현 정부가 과연 로드맵을 갖고 출발했는가를 의심케 한다. 온갖 정책들이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정책들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책이 어디로 갈지 예측이 되지 못한다. 오죽하면 정부가 발표하는 부동산 정책과 반대로 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겠는가?

주요 정책들이 로드맵과 상관없이, 국정이념과 상관없이 왔다갔다 하고 있다. 이미 로드맵은 장농 깊숙한 곳에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애당초 로드맵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감을 주기 위하여 로드맵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 정리된, 잘 색칠해진 종이 뭉치는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들의 일상적 삶에 너무도 큰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교육, 재벌, 환경 보호, 정부 개혁, 공기업 등 많은 영역에서 로드맵이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서 수많은 정책들을 쏟아냈지만, 이것이 제대로 실천되어 부동산 투기가 사라지고,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되고, 무주택의 저소득층의 주거가 안정되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현 정부가 지향하고 강조하는 국정운영의 방향이 과연 무엇인지 실종된 듯한 인상이다. 그들은 말한다. “들어가기 전에는 몰랐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그게 아니더라,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이런 아마추어들이 하는 말을 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그들이 프로인줄 알았다.

그들은 걸림돌이 많다고 한다. 잘 해보려고 하는데 방해꾼들이 있다고 한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한다. 왜 몰라 주냐고 한다. 다른 뜻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걸림돌이 왜 없겠으며, 왜 방해꾼이 없겠는가? 어찌 모든 사람이 다 도와주겠는가? 그러나 이렇듯 푸념만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아무추어임을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추어에도 장점은 있다. 자기 주장을 꺽을 줄 안다. 남의 말을 수용할 줄도 안다.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운영은 아마추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프로가 하는 것이다. 프로에겐 늘 일관된 몸에 밴 원칙이 있다. 자기의 몸을 늘 최고의 상태로 만든다. 경기장에 단 1분을 서있는다 하더라도, 그 1분을 위하여 한달을 준비한다. 그렇게 준비한 1분 조차도 실패할 수 있다. 공 단 한 개를 던지고 강판 당한다. 프로는 받아들인다. 자인한다. 준비가 부족했음을, 상대방을 얕잡아 보았음을. 그래서 다시 죽어라 몸을 만든다.

국민들은 프로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무엇인 잘된 것인 줄 잘 안다. 누가 프로이고, 누가 아마추어인줄 안다. 국정운영이 잘 되고 있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은 로드맵을 애써 그려놓고, 그 앞에서 길을 잃고 있는 형상이다. 아니면 애써 그려놓은 로드맵을 읽을 줄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어디가 동이고 어디가 서인지. 분명 로드맵을 그릴 때는 사방을 분간하였을 텐데, 정작 지금에 와서 사방을 알지 못하고 있다.

프로인 국민들은 알았다. 로드맵이 실종되었음을. 정부가 로드맵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음을. 아니 따라할 로드맵이 없음을 알았다. 현명한 국민들은 구태여 실종된 로드맵을, 없는 로드맵을 찾으려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대신 각자 자신들만의 로드맵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로드맵에 따라서 실천하고 있다. 어디에 땅을 사고, 어디로 이사를 가고,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정부 믿고 있다간 큰일 나겠다 싶은 것이다.

이런 상황들이 국민들 입장에서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정부가, 위정자가 있긴 있는데, 이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이다. 버릴 수도 없다. 야단을 치는 것도 한두 번이다. 그러니 아예 무시해버린다. 없는 셈 친다. 차라리 속 편하기 때문이다.

프로인 국민들이 없는 셈 치는 정부와 위정자들. 그들은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늘 불펜만 덥히고 있는 허울뿐인 선수와 하등 차이가 없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지만, 누구 하나 눈길 주지 않는다. 연민도 기대감이 있을 때나 생긴다.

이 답답한 형국. 어디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초심이다. 비교적 순수했던, 덜 물들었던 처음 마음가짐이다. 원칙을 갖고 있었던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이다.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무수한 복잡한 문제들. 해결난망의 문제들. 그렇다. 복잡한 문제를 쉽게 푸는 방법은 지극히 원칙적으로 접근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무리 복잡하게 꼬인 수학문제라 하더라도 원칙은 단순하다.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반칙으로 문제를 풀면 더욱 더 꼬일 수밖에 없다. 원칙은 어디에서나 원칙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참여정부라고 스스로 지칭한다. 참여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외받는 계층을 위하는 정부가 되겠다고도 했다.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신뢰받는 정부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너무나도 금과옥조와 같은 말들이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이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인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고, 지지를 하고, 열심히 일하라고 힘을 보태주었다.

이제 그들은 이제 물어보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국민들에게 묻고 또 물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답을 들어야 한다. 얼마나 제대로 참여가 되고 있는지, 얼마나 소외계층을 위하고 있는지, 얼마나 원칙이 통하고 있는지, 얼마나 신뢰받고 있는지.

그렇다. 누구 말대로 진정성이다. 그러나 진정성은 말의 유희가 아니다. 원칙이다. 원칙의 실천이다. 원칙이 흔들림없이 지켜지고, 그 원칙이 어려운 난관 속에서도 뜻한 바대로 실천될 때 비로소 진정성은 받아들여진다. 구태여 진정성을 사정하지 않아도 된다. 국민들은 사정하지 않아도 제대로 헤아릴 줄 아는 프로이기 때문이다.

모두 다 원칙이다. 지금 그들은 처음 주장했던 그 원칙들을 정말로 제대로 고수하고 있는지, 실천하고 있는지 되살펴보아야 한다. 깨달아야 한다. 이미 만들어 놓은 수많은 로드맵들. 그것들이 정말 엉터리가 아니라면 초심대로, 원칙대로 제대로 실현시켜 보아야 한다. 한참 늦었지만 원칙으로 돌아오면 현명한 국민들은 그들을 다시 한번 받아들일 줄 안다. 왜 그랬냐고 따지지도 않는다. 야단치기 전에 오히려 격려할 것이다. 국민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현명한 프로들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아마추어임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윤태범 (방송대 행정학과 교수, 맑은사회만들기본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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