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국가정보원 2003-04-22   1140

대통령 아닌 의회서 통제 바람직

<참여연대-한겨레공동기획> 국정원 이렇게 바꾸자 ④

22일 국회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고영구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참여정부의 국정원 개혁방안 내용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전문가들의 좌담회를 열어 국정원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대안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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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장유식 변호사, 한상희 교수, 배종윤 교수

▶참석자 : 장유식 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한상희 교수(건국대·법학), 배종윤 교수(연세대 통일연구원·정치학)

▶사회 : 성한용 <한겨레> 정치부장

사회=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국가정보원 개혁 방안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대공정책실 부분 조정, 수사권 유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한 통제, 국회 정보위원회의 예산 통제 강화 등이다. 대통령이 국정원 보고를 직접 받지 않겠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 시민사회 단체의 국정원 개혁 요구와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통령으로선 개혁 요구를 한꺼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세 차례의 기획기사를 통해 주로 국정원의 문제점을 살펴봤는데 오늘은 대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달라.

장유식= 노 대통령이 국정원의 정치사찰 보고와 기무사의 대면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라든지 경찰청이 정치정보 수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기 때문에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권력자의 선의나 권력기관의 반성에 의존하는 미봉책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대공정책실을 없애면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원칙적으로 폐지해야 한다. 대공정책실이 국내 정치사찰의 핵심기구였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기능이 있다면 그 기능만 살려 재조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한상희= 국정원의 정보 수집 범위를 명확히 하자는 지적이 있는데, 정보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는 분석을 해 봐야 알 수 있다. 정보 수집 범위를 법으로 정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정보기관이 정치·경제·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정보 활동을 하는 것은, 어쩌면 국정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엄격한 법치주의의 열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한계는 정해주되, 남용 가능성을 막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대공정책실이 문제가 됐던 것은, 수집된 정보들이 권력 욕구에 의해 미리 주문된 것이거나, 경우에 따라 권력 요구에 따라 가공돼 2·3차 정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활동 규제보다는 이를 활용하는 쪽, 곧 대통령과 권력핵심들의 통제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배종윤= 국정원을 해외 정보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기관으로 하고,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기구를 새로 만드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권력의 집중을 막고 분산을 통해 정보기관 사이에 경쟁을 시키고 독점으로 인한 비리를 차단하자는 것이다. 대공정책실을 줄인다고 해도,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다시 키울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게 된다. 현 정부에서도 크게 줄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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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좌담 참석자들이 국정원 개혁 방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대공정책실 원칙적 폐지

한=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기 마련이다. 대공정책실을 축소하거나 폐지한다고 해도 그런 정보의 수요가 존재한다면 다른 곳에서 담당하게 된다. 폐지하기보다는, 한쪽만 열어주고 다른 국가기관은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존속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정치 사찰 수준은 아니더라도 정치권 동향을 수집하는 기구로서의 의미는 있지 않겠는가.

배= 국정원이 정치사찰을 하는 것은 정당들이 제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중정을 만든 뒤 공화당을 만들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보안사를 만들고 민정당을 만들었다. 노태우 대통령 등도 정보기관에 의존했다. 정당으로부터 정치적 힘을 받지 못하니까 정보기관에 기대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여당으로부터 힘을 받지 못하면 정보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런 수요가 많아지면서 조직이 확대돼온 것이다. 근본적으로 정권을 가진 사람의 책임이 크다.

장= 광범위한 정보수집도 문제지만, 국정원이 일반인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준 것은 간첩조작과 고문 등이다. 이는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이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면 언제든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국정원은 효율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인권침해가 벌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또 과거 김영삼 정부의 안기부법 날치기 처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차원에서라도 수사권은 폐지해야 한다.

한= 대통령의 직속기관인 국정원이 수사권을 보유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 수사권은 가장 핵심적인 행정권인데, 이를 국무총리 통할 아래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4년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릴 때도 재판관 가운데 5명은 합헌의견을 냈지만, 3명은 헌법체계에 약간의 부조화가 있다며 보충의견을 냈고, 1명은 위헌 의견을 냈다. 김영삼 정부에서 한때 수사권을 제한하면서 이런 부조화가 극복됐는데, 96년 말 수사범위가 넓어지면서 부조화가 되살아난 셈이다. 다시 헌재에 회부되면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알 수 없다.

사실 국정원은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제도의 설계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중심제인 미국이나 내각책임제인 유럽과 달리, 국무총리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 모든 행정권을 총리 통할 아래 둔다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총리 통제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

물론 대공수사의 경우 장기화할 수 있고, ‘밀행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국정원 쪽의 반론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국정원의 수사권은 없애되 국정원이 유기적으로 수사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정원이 수사권을 가진 검찰에 수사권 개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거나, 국정원장에게 수사방향 조정권 정도를 부여하면 된다. 대공수사 분야에서 국정원의 노하우와 정보망은 인정해야 하지만, 국정원이 국가안전보장의 핵심기능을 하는 유일한 기구라고 여기는 편협한 태도는 버려야 한다. 안보 개념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여러 국가 기구의 공조와 조정 속에 국가 안보가 이뤄져야 한다.

배= 노무현 정부가 인권침해 소지가 큰 대공수사권을 당분간 유지하기로 한 점은 유감스럽다. 정부는 또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정책조정실이나 국정자료실을 통해 국정원을 통제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기관에 대한 통제와 정보기관을 포함한 대통령에 대한 통제는 구분해야 한다. 정부 방안은 대통령이 국정원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이지, 권력기관인 국정원을 통제하는 방안은 아니다. 결국 국정원은 국회가 통제할 수밖에 없다. 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주체는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이기 때문이다.

장= 의회를 통한 통제는, 국정원 예산의 예·결산과 회계감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국정원 예산에 대해 특례를 인정하는 것도 재검토해야 한다. 또 국회 정보위원들의 예산내역 분석 기능이 떨어지는 만큼, 전문가들의 보좌를 받는 형태를 고려해야 한다. 국정원 쪽은 비밀 누출 등을 우려하지만, 보좌진이 비밀취급 인가를 받도록 하고 보좌진이 분석한 자료를 다시 비밀로 묶는 방법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방식 등으로 예·결산을 실질적으로 하도록 해야 한다.

배= 미국과 영국의 경우에도 사실 의회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통령이 지시하더라도 ‘이런저런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가이드 라인’을 국회가 제시해야 한다.

한= 크게 보면 대통령의 권력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대한 방안이 거시적으로 나와야 한다. 대통령과 국정원이 한 라인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를 견제할 유일한 기관은 의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회가 국정원장 탄핵소추권을 갖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국정원 예산에 대한 실질심사는, 제도 문제라기보다 국회의 의지 문제다. 국회가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국정원장이 안보를 이유로 자료제출을 거부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국정원장이 자료제출을 거부할 때는 국가안전보장회의 등 다른 기관의 승인을 얻도록 해야 한다.

사회= 결론적으로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장= 국회가 국정원 견제 기능을 할 수 있으려면, 국회 스스로 자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정원에 대한 개혁 논의도 개방된 자리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 정보기관의 문제점을 풀겠다는 정부와 국회의 의지를 국민들 앞에 보여주기 위해선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일정기간 비밀로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비밀을 해제하거나 필요에 따라 비밀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기록물 관리법을 개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내부 개혁의지 있어야

한= 과거 국정원의 문제점은, 권력핵심들이 정보기관을 정권안보기관으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또 정보기관이 권력을 차용해 자신의 조직을 키워나갔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이제 국가안보 개념이 냉전과 좌우대립의 시대보다 확대된 만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정원 스스로 제도적 견제를 받고, 자체 개혁에 나서겠다는 의지가 필요한 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정원을 국익을 위한 순수 정보기관으로 만들겠다는 권력자의 의지다.

배= 정보기관을 통제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통제의 주체가 개인이냐 또는 법과 제도냐, 그리고 단일한 통제인가 복수 통제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후진적인 것은 개인에 의한 단일 통제일 것이고, 가장 선진적인 방안이 법과 제도에 따른 복수의 통제일 것이다. 〈끝〉

정리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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