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칼럼(ts) 2004-09-29   1238

<안국동窓> 추석(秋夕)과 선물(膳物)

추석(秋夕)과 선물(膳物)

추석 한가위는 그 어느 명절보다도 풍성하다. 한해의 수확을 거둬들이는 결실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추석’하면 보름달, 송편, 강강수월래도 떠오르지만 ‘선물’도 빼놓을 수 없다. 크고 작은 선물꾸러미를 손에 들고 고향을 찾는 정겨움이 추석의 전형적 풍경이 아닌가. 설날이 세뱃돈이라면 추석은 ‘선물’이 연상된다. 그런데, 올해 추석에는 ‘선물 안주고 안받기 운동’이 공직사회는 물론이고 정치권, 기업체까지 확산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심기일전(心機一轉)

‘선물 안주고 안받기 운동’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특히 공직사회에서는 단골메뉴이다. 이처럼 연례행사처럼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다른 기대를 하게 되는 몇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부패추방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대선자금파동을 겪으면서 ‘돈’에 대한 감시가 더욱 강력해졌다. 지난 총선때는 50배 과태료와 포상금제도를 통해 금권선거에 대한 통제를 경험하였다. 그 결과 관행의 영역에 있던 많은 것들이 불법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둘째,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거나 준비되고 있다. 부패방지위원회가 활동하고 있고, 부패방지법과 공직자윤리법, 공직자행동강령을 통해 ‘선물’과 관련된 엄격한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셋째, 공직사회 내부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공무원노조와 공직자협의회를 중심으로 내부고발운동과 감시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공무원조직은 스스로 ‘깨끗한 명절 보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자체감사반을 운영하고 있다.

설왕설래(說往說來)

‘선물 안주고 안받기 운동’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전시효과만을 노린 일회성 운동이라는 냉소가 여전하다. 과도한 통제로 인해 오히려 민원인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침체된 경기 탓에 볼멘 소리가 터져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부방위에 건의문까지 제출했다. “소비심리 활성화와 미풍양속 유지를 위해 무조건 선물을 안주고 안받는 것보다는 합리적인 선물문화 정착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요지이다. 소박한 명절선물 주고받기까지 제한하면 음성적인 이중구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일리있는 지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부패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황당한 얘기로 귀결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은 개발독재시대가 아니다. 투명성과 예측가능성, 신뢰성의 부재가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실체 아닌가. 여전히 우리나라의 반부패지수는 OECD국가중 최하위에 속한다. 부패와 잘못된 관행은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요소일 뿐, 더 이상 필요악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견물생심(見物生心)

얼마 전 농림부의 고위관료가 100만원을 받고 사표를 제출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공직사회에 몸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공직사회의 사정의 태풍이 몰아칠 때면 가장 돋보이는 부서가 법제처라고 한다. 법제처는 공직비리 등과는 거의 무관한 사정의 무풍지대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법제처는 지난 48년 정부수립이후 부정부패나 비리로 징계 또는 처벌을 받은 공무원이 한 사람도 없는 유일한 부처이고, 최근 주식백지신탁과 관련해서도 장관급 정부 부처내에서는 유일하게 3000만원 이상 주식보유자가 1명도 없었다고 한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어서 이재에 밝지 않고 고지식한 탓도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법제처의 업무가 각종 인,허가 업무나, 건축, 세무 등 소위 이권이 오가는 업무와 거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솔선수범(率先垂範)

마음을 담은 선물은 좋은 것이다. 또한 공직자들의 업무가 이권과 무관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공직자도 인간이기에 욕심이 있고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무너지고, 정실에 의해 이권이 좌우될 때 국민들은 또다시 좌절한다. 국민들이 공직자와 정치인들에게 다소 가혹한 기준을 적용하고 싶어하는 이유이다.

‘선물 안주고 안받기 운동’은 우리사회의 ‘관행’에 대한 도전이다. 추석연휴가 끝나면 부패방지위원회나 각 기관을 중심으로 성과와 문제점에 대한 적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반부패운동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장유식 (변호사, 참여연대 협동처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