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칼럼(ts) 2007-05-28   1306

<안국동窓> 공무원은 ‘해외연수’를 좋아해

연수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래도 드물 것이다. 연수란 ‘익히고 닦는 것’, 쉽게 말해서 ‘공부’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수는 필요하다. 무엇보다 세상이 변하기 때문이다. 변하는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누구나 열심히 연수해야 한다. 또 사실 꼭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연수는 중요하다. 공자는 공부가 즐겁다고 했지만, 도올도 가장 재미있는 것이 공부라고 했지만, 이런 이상한 경지가 아니더라도 공부는 아주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나라를 실제로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나라가 잘 되려면 공무원이 일을 잘 해야 한다. 그러므로 공무원에게 연수는 필수적이다.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는 것을 넘어서 이끌어야 하는 주체가 바로 공무원이다. 돈이 많이 드는 ‘해외연수’라고 해도 공무원은 받아야 한다. 공무원은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책임을 지고 있는 직접적 주체이기 때문이다. 시민을 대표해서 또는 대신해서 공무원은 온갖 좋은 연수는 다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더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사실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공무원들은 이미 온갖 연수를 다 받고 있다. 나도 몇몇 공무원 연수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잠시 기억을 되새겨 보자면, 강의를 받는 공무원들의 태도가 공부를 하겠다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다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대부분은 그랬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연수를 그저 ‘따분한 휴식’으로 여기고 있지 않는가? 이런 공무원들이 반드시 받고자 하는 연수가 있으니 바로 ‘해외연수’가 그것이다. 공기업 감사들도, 구청장들도, 공무원 노조 간부들도 ‘해외연수’는 몹시도 좋아라 한다. 왜 공무원들은 ‘해외연수’를 그렇게 좋아하는가?

공무원들에게 ‘해외연수’는 대체로 ‘즐거운 관광’ 또는 ‘즐거운 골프’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외국의 이름난 곳을 돌아다니며 비싼 관광이나 골프를 공짜로 실컷 즐기고는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시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공무원이 혈세를 받고는 제대로 일을 안 하는 것도 모자라서 멀리 외국까지 가서 놀고, 그렇게 혈세를 추가로 탕진하고는 ‘공부’를 했다고 거짓말까지 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셈이다. 아니, 그보다도 못하다. 고양이는 ‘해외연수’를 안 가고, 거짓말도 안 하니까.

‘공무원 해외연수’는 크게 단기연수와 장기연수로 나뉜다. 이번에 주로 문제가 된 것은 단기연수였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장기연수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KBS의 ‘쌈’에서 최근에 아주 잘 다뤘는 데 어쩐 일인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매년 440억원의 혈세가 엉터리 장기연수로 탕진되고 있다는 데도. ‘쌈’에서 취재한 내용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대부분 1년의 장기연수를 떠나서는 하느니 ‘골프질’이다. 공무원들 스스로 ‘연수’를 빙자한 ‘휴가’이므로 ‘골프’를 즐길 수도 있는 거라고 ‘설명’한다. 너무 황당하고 분해서 그냥 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사실 이 문제는 이미 잘 알려진 문제이고, 더 심각한 문제도 이미 오래 전에 알려졌다. 장기연수를 가서 골프와 관광을 즐길 뿐만 아니라 공부도 열심히 해서 아예 학위를 따고는 귀국해서 바로 공무원을 그만두고 교수가 되거나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무원 신분과 혈세를 이용해서 개인의 ‘출세’를 도모한 것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실상은 거의 ‘사기’나 마찬가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을 속이고 국가를 이용해서 개인의 영달을 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이비 공무원’의 문제를 이제는 더 이상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이 나라는 기본이 잘못된 ‘기형국가’임에 틀림없다. 여기에 공무원의 책임이 아주 크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그토록 많은 공무원들이 매년 수천억원의 혈세를 낭비하며 ‘선진국’에 가서 ‘해외연수’를 받고 있지만, 전봇대와 전깃줄, 보도의 배전함과 지하철 환기구, 세계 최악의 간판공해, 버스의 라디오 소음폭력 따위의 후진적 문제조차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공무원들이 ‘관광’과 ‘골프’에 쓰는 시간의 10분의 1만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지에 써도 이런 문제들은 좀더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OECD 통계에서 잘 알 수 있듯이 한국은 공공서비스가 극히 취약한 나라이고 공무원의 수도 당연히 크게 모자란다. 그러나 모자라는 것이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공무원의 생산성이나 공공성 의식도 역시 크게 모자라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야근수당을 챙기기 위해 밤에 술 먹고 사무실에 들르거나 운동복 차림으로 남편의 차를 타고 와서 야근기록을 남기는 ‘도둑’ 공무원들도 아주 많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을 늘리겠다는 정책에 대한 거부를 넘어서 반감이 생기는 것은 그저 당연할 뿐이다.

공무원들의 연수는 필요하다. ‘해외연수’도 물론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연수를 빙자한 ‘관광’을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몇가지 조치들을 반드시 취해야 한다. 첫째, ‘해외연수’를 받기 위해서는 언어능력이 필수적이다. 서구는 영어, 중국은 중국어, 일본은 일본어 등 외국어 능력을 갖추지 않은 자는 ‘해외연수’를 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해외연수 계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지 심사해서 선정해야 한다. 독일의 에베르트재단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 공무원들은 왜 독일 통일’에 관한 연구만 한다고 오느냐, 한국 공무원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느냐는 낯뜨거운 질문을 받았다. 하나마나한 연수를 받는 것도 연수를 빙자한 ‘관광’만큼이나 잘못이다.

셋째, ‘해외연수 결과 보고서’를 제대로 작성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을 보고 배웠으며, 어떤 정책을 고쳐야 하고 새롭게 시행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억원씩 혈세를 쓰고는 달랑 두세장의 글같지 않은 글을 써내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학술진흥재단 등재(후보)급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하거나 단행본을 출간해서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 장기연수는 특히 그렇다.

연수 기간이 길수록 큰 ‘도둑’이 될 수 있는 너무나 잘못된 공무원 연수제도는 하루빨리 시정해야 한다. 공무원이 ‘공공성의 수호자’가 아니라 ‘공공성의 파괴자’인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공무원이 학벌과 투기에 사로잡혀 있다면, 학벌과 투기의 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겠는가?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을 위해서도 쭉정이를 잘 솎아내기 위해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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