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칼럼(ts) 2006-07-25   1510

<안국동窓> 그가 그 회사로 간 까닭은?

취업허가제도로 전락한 퇴직후 취업제한제도

‘물거품 된 나관료씨의 꿈’

나관료씨는 관세청에 근무하다 올해 퇴직했다. 나관료씨에겐 꿈이 있었다. 공직생활을 하며 익힌 관세 관련 전문성을 살려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리저리 취업할 회사를 알아보던 중 관세업무와 관련해 자신의 전문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국제화물 서비스회사를 택했다. 애초 업무관련성이 있을까 취업을 망설였지만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해당 업체에 취업해도 된다는 답변을 받고 정식으로 재취업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관료씨가 하는 일은 관세관련 업무가 아니라 회사의 통관업무 수행 중 발생하는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후배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안 하기로 유명했던 나관료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이 근무했던 부처의 후배들에게 부탁을 가장한 청탁을 해야 했다. 뒤늦게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관료씨는 관세전문가가 아니라 청탁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기업에 재취업해 제2의 인생을 살아보겠다던 나관료씨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나관료씨의 사례는 재취업한 퇴직관료에 대한 가상 이야기이지만, 기업에 취업한 퇴직관료에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퇴직관료 대부분 부처 관련 업체에 취업, 공직자윤리위는 “취업 보증기관” 으로 전락

참여연대 조사결과, 2006년 퇴직공직자 중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이하 공직자윤리위)가 업무연관성이 없어 취업이 가능하다고 통보한 49명의 공직자 중 80% 가량이 부처와 관련된 업체에 취업했으며 이들 중 8명은 자신이 직접 담당했던 업무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업체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가 이같은 조사결과를 발표하자, 금융감독원과 행정자치부는 이들의 취업이 업무연관성이 없는 ‘적법’한 취업임을 강조하는 반박 보도자료를 내놨다. 하지만 이들이 취업한 업체와 퇴직전 3년간의 업무를 비교해 보면, 업무연관성이 없어서 취업한 것인지 업무연관성이 있어서 취업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기업체들이 업무와 관련된 부처의 관료들을 채용하는 것은 관료의 전문성을 기업경영에 접목하려는 이유도 있겠지만 관련 부처에 영향력을 행사해 업체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와 같이 퇴직공직자가 불법적 로비활동에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이 퇴직 공직자들이 재직시 업무와 밀접하게 관련된 사기업체에 취업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퇴직공직자의 취업을 제한해야 할 행자부와 공직자윤리위는 이들을 규제하기는커녕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며 감싸주기에 급급할 뿐이다. 공직자윤리위가 퇴직자의 문제 있는 취업을 “적법하게” 해주는 ‘보증기관’으로 전락한 것이다.

심지어 행자부는 “2006년에 취업제한 여부 확인을 요청한 퇴직자 59명 중 58명에 대해 취업이 가능하다고 통보한 것은 퇴직후 취업제한제도가 본래의 여과기능을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 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행자부의 이같은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 일례로 공직자윤리위는 미래에셋생명(주)의 변액보험은 보험상품이므로 자산운용감독국과 업무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간접투자사산운용업법(이하 간투법)에 의하면 법 시행 이후 신규 설정된 변액보험 상품(신규 간접투자기구 : 변액보험 특별계정 내에 신규로 설정된 상품)에 대해서는 간투법의 적용을 받는다. 미래에셋생명(주)가 법 시행이후 변액보험을 판매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굳이 법을 따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래에셋이 자산운용 전문회사란 것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봐도 안다. 미래에셋의 계열사인 미래에셋생명(주)가 금감원 자산운용감독국장을 채용한 이유가 자산운용 업무와 관련해서 감독기관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 지나친 추측일까?

직업선택의 자유? – 왜 수많은 회사 중 업무관련 업체에 취업하나

퇴직공직자의 취업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당사자인 공직자들은 하나 같이 볼멘소리를 한다. 헌법에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퇴직한 뒤에 어떻게 먹고 살라는 건가 등등.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 하필이면 왜 수많은 회사 중에 문제가 되는, 트집 잡힐만한 업체에 취업하는 것인가?

퇴직공직자 역시 취업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공직수행과정에서 축적된 전문성과 경험이 민간영역에서 충분히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퇴직후 취업제한제도가 매우 제한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은 취업제한 대상을 재산등록의무자(주로 4급 이상)로 하고 있고, 퇴직 전 3년간 맡았던 업무와 관련된 일정 규모 이상의 영리사기업체(자본금 50억, 매출액 150억)에 한해 취업을 제한하며, 취업제한 기간도 퇴직후 2년에 한정하고 있음).

취업제한제도는 공직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준칙이다

그러나 퇴직공직자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사회 전체의 공익에 우선할 수 없다. 퇴직후 취업제한제도의 근본취지는 퇴직공직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퇴직공직자가 재직 시 직무상 취득한 정보, 대인관계 등을 사적이익을 위해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다. 퇴직공직자가 업무나 부처 관련 업체에 취업해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해 사회 전체의 공익을 해친다면 이들의 취업은 제한되어야만 한다.

퇴직공직자가 업무와 관련된 업체에 취업할 경우, 나관료씨처럼 전문성을 활용하기보다 재직 시 정보를 활용해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불법 로비활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퇴직공직자가 진정 전문성을 활용할 기회를 보장받기를 원한다면 재직 시 업무와 관련이 없는 회사에 취업해야 한다. 취업제한제도의 취지를 인정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고위 공직을 수행한 공직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준칙이다. 무엇이 본인과 사회 전체를 위한 win-win 전략인지는 누구보다도 공직자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변금선 (투명사회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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