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칼럼(ts) 2005-04-06   1291

<안국동窓> 문제의 본질은 윤리의식이다

철저한 인사검증제도·시스템 정비를

최근 고위 공직자의 연이은 낙마사태로 정치,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적으로도 우리사회 소위 ‘있는 사람’들 사이에 만연된 부동산 투기 행태나, 공직사회를 비롯한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윤리의식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사회 일각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도 제기한다. ‘부동산 투자도 재테크의 한 방법인데 주식 등 다른 재산증식 방법에 비해 부동산 문제만 너무 문제삼는다’,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뭐냐’, ‘재산이 많은 것이 무슨 문제냐’, ‘도덕성 잣대를 절대시하여 능력 등 다른 요소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과거에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일인데 너무 지금의 잣대로 재단한다’, ‘한사람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지 일생을 살면서 한두 가지 흠결이 있다고 공직에서 배제하라는 것은 너무 편협하고 가혹한 것 아니냐’ 등등. 심지어 작금의 사태가 ‘마녀 사냥’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필자는 다른 시각에서 나온 이런 문제제기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문제제기를 일고의 가치도 없는 기득권 옹호 태도로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필자 스스로 과거 낙선운동이나 공직자의 도덕성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문제나, 과거 잘못은 이를 인정하거나 반성하는 지 여부나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장점이 있는 지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용인될 수 없는가 하는 점 등을 깊게 고민해 본적이 있다.

또한 우리 사회가 개인의 도덕성 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하면서도 정치적, 정책적 책임에 대해서는 관대한 태도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가 여러가지 문제도 낳고, 혹 다소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고, 공직 윤리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시대적으로 불가피한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도덕성 문제로 낙마한 대부분의 인사들은 아마 “그 시대에 돈 있는데 그렇게 안한 놈 있으면 나와 봐라”는 식의 심정이 다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런 의식이 문제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즉, 지금의 문제는 인사검증제도나 시스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서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으면 바보 취급당하는 분위기,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에 대한 사회적 비판여론이야 어떠하든 간에 부동산 투자를 가장 효과적인 재테크라고 생각하는 의식, 판공비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면서도 이를 관행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의식, 그런 식으로 부를 축적하고도 공직에 나아가는데 결격사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은 그런 의식이 문제인 것이다. 공직자와 소위 사회지도층의 이런 의식이 변하지 않고는 아무리 훌륭한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해도 지금과 같은 일은 반복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어떤 제도개혁을 논하기 이전에 최근 사태가 우리사회 특히 공직자와 소위 사회지도층의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들의 자성에 맡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에 최소한의 장치로 인사검증제도와 시스템을 정비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의 일환으로 인사청문회 대상을 확대하는 것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뚜렷한 사유도 없이 인준을 거부했던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의 사례에서 보듯, 인사청문회 제도를 정쟁과 협상의 수단으로 악용할 위험성은 상존한다.

따라서 정치문화가 성숙되지 않는다면 인사청문제도의 확대를 통해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현재의 인사청문회 제도로 과연 제대로 된 검증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짧은 시간에 전문적 조사기구의 협조 없이 그동안 고위공직자들에게 문제가 된 사안을 충분히 검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경찰, 국세청, 금융감독위원회 등 공적 기관의 검증을 받도록 하고,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토록 하는 등 검증시스템의 보완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미국식 인사 검증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인사패턴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취임시 일거에 조각을 하거나, 한두 주의 짧은 기간에 검증하고 임명하는 기존 인사 방식을 변경해야 한다. 이럴 경우 인사 지연으로 인한 업무 공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대통령이 강조하는 부처 업무의 시스템화로 해결할 수 있다.

또 다소의 문제가 있더라도 고위 공직자의 낙마로 생기는 혼란과 공백이라는 비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제도는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이번 사태가 공직 윤리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 이 칼럼은 <시민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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