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칼럼(ts) 2006-01-20   1090

<안국동窓> 시가 453억원의 스톡옵션과 백지신탁제도

행정자치부는 지난 1월 11일 재산공개대상 공직자 중 주식을 매각한 공직자 3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백지신탁제도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공직사회에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공직자 윤리 제고와 관련하여 매우 획기적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많은 공직자들이 보유주식을 백지신탁하기 보다는 아예 매각을 선택함으로서 직무상 이해충돌을 해소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더 많은 공직자들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직무관련성 여부를 백지신탁심사위원회에 의뢰해 놓고 있는 상태이어서, 앞으로 어느 정도의 주식이 매각되고, 또 백지신탁될 것인지, 그리고 이해충돌은 얼마나 제대로 해소될 것인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다.

이번에 가장 많은 관심을 끈 공직자는 역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진 대제 장관은 정보통신부 장관 취임 이후 지금까지 계속 논란을 빚어왔던 이해충돌을 야기하는 주식 중 약 64억여원 어치를 이번에 매각처분하였다. 이것은 진장관이 취임 후 지금까지 위법성은 없었지만 “실질적인 이해충돌”을 야기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진대제 장관은 이해충돌의 해소를 위한 시민단체들의 주식 매각 요구에 대해서, 관련 규정이 없음을 이유로 관련 주식의 매각은 물론 이해충돌 자체를 부인하여 왔는데, 결국 지난 2005년 5월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에 백지신탁제도가 포함됨으로서 이번에 논란이 되었던 주식 일부를 매각함으로서 스스로 이해충돌이 있음을 자인한 것이다.

이러한 주식의 대량 매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대제 장관은 이해충돌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즉 진대제 장관은 이해충돌을 야기하는 주식 중 극히 일부만 매각하였을 뿐, 실질적인 이해충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450여억원대의 스톡옵션은 그대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도 진대제 장관은 법규정을 이유로 스톡옵션을 제외한 주식 만을 매각처분하였을 뿐이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서는 백지신탁의 적용대상에 스톡옵션을 포함하지 않고 있어서, 진대제 장관의 스톡옵션 보유가 법률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에서도 늦었지만 이 같은 법률 상의 허점을 인정하고, 스톡옵션을 포함하는 개정안을 지난 연말에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

백지신탁은 이해충돌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발생한 이해충돌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해충돌의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수단이다. 때문에 백지신탁 제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예방 지향성”이다. 그리고 이 제도는 백지신탁 대상자 스스로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이해충돌 가능성을 인정하고 이를 자발적으로 해소하고자 할 때 보다 의미있는 이해충돌 방지수단이 된다. 그런 점에서 백지신탁제도의 또 다른 특성의 하나는 바로 “자발성”이다. 법에 규정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신탁하는 것이 아니라, 공직자로서의 올바른 처신과 판단을 위하여 스스로 ‘백지신탁’을 하는 것이다.

백지신탁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어 운영되고 있는 국가로 미국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미국에서의 백지신탁은 법적 강제가 아닌 고위 공직 후보자의 “자발성”에 기초하여 시작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미국에서는 지난 1960년대부터 자발적 백지신탁이 이루어졌는데, 고위 공직후보자가 담당하게 될 직무와 이해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주식을 갖고 있을 경우, 이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의회에서의 문제 제기 등으로 후보자는 법적 강제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보유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을 통하여 이해충돌을 해소하였다. 미국에서 백지신탁제도가 정부윤리법 등을 통하여 제도화된 것은 이보다 훨씬 뒤인 1978년이다. 미국에서의 백지신탁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자율적 윤리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사정은 미국과 너무도 크게 다르다. 이해충돌을 야기하는 주식에 대한 자발적 백지신탁은커녕, 법적인 강제성이 없음을 이유로 백지신탁의 거부는 물론 이해충돌의 발생 가능성조차 부정하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인식되는 이유로서 이해충돌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 부족도 들 수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윤리적 의식 자체가 희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여전히 이해충돌의 발생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규정을 이유로 관련 자산의 매각이나 백지신탁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진대제 장관은 현행 공직자윤리법을 잘 준수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진대제 장관에 대해서 단순한 법 준수 만이 아니라, 높은 수준의 도덕성도 함께 요구하고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도덕성의 영역은 법적 강제력 이전에 자율성이 우선적으로 작용하는 영역이다. 미국의 예를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해충돌이나 백지신탁은 모두 법 이전에 자율성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고위공직자의 도덕성을 효율적으로 확보해줄 뿐만 아니라, 국민들로 부터도 높은 신뢰를 받도록 해주는 유용한 수단들이다.

많은 미국의 고위 공직후보자들이 왜 이해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주식을 매각 혹은 백지신탁하였는가? 그것은 법적인 강제성 이전에 고위 공직자에게 부여되어 있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 확보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해충돌을 회피함에 있어서 주식과 스톡옵션이 구분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나아가서 법규정을 이유로 심각한 이해충돌 가능성을 갖고 있는 스톡옵션을 여전히 보유하려는 도덕적 무감각에서도 벗어나야 할 때이다.

이 참여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은 이제 더 이상 (흠결 있는) 법규정을 이유로 이해충돌 문제를 애써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진대제 장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다. 국민들은 진대제 장관이 법규정 때문에 할 수 없이 이해충돌을 야기하는 주식을 억지로 매각하는 모습보다, 이해충돌을 야기하는 관련 주식들을 자발적으로 매각처분하여 고위 공직자로서 바람직하게 처신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윤태범 (방송대 교수, 맑은사회만들기본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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