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칼럼(ts) 2006-03-24   1522

<안국동窓> 차라리 ‘공직윤리(公職倫理)’를 폐기하자

최근 한달 사이에 야당 중진 국회의원, 국무총리, 그리고 서울시장의 “부적절한” 처신을 둘러싸고 신문과 방송이 무척이나 시끄럽다. 야당 국회의원은 성폭력 문제로, (전)국무총리와 (현)서울시장은 “부적절한 운동” 문제로 궁지에 몰렸다. 특히 전총리와 현시장은 “황제”라는 칭호까지 들으면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두 당사자는 그래도 “황제”라는 칭호를 얻었으니 그렇게 큰 불만은 없을 듯 싶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같이 “부적절한 관계”에 얽혀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야당 의원은 언론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전 국무총리와 현 서울시장도 운동을 통하여 부적절한 인사들과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보기 싫은 모습들이다. 이 때다 싶은지 또 다시 공직윤리가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늘 뒷방에만 갇혀 있던 윤리가 이렇게 사건이 터질 때면 아주 짧은 순간이기는 하지만 빛을 보기도 한다.

공직(公職)에서 “공(公 혹은 Public)”은 “내”가 아닌 “타인 혹은 다수” 지향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Public”의 어원으로 알려진 “Pubes”는 원래 “타인을 돌보다” 혹은 “타인을 배려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기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돌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공직(公職)은 결국 “남을 배려하고 위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이들 3인은 남을 배려하고 위한 것이 아니라 “괴롭히고 방해하였으니”다른 경우에는 몰라도 이번 사례에서 이들은 결코 ”공직자“가 아니었다.

“윤리(倫理 혹은 ethics)”는 “마땅히 준수하여야 할 바람직한 가치 혹은 행동규범”이다. “ethics”의 어원인 “ethos”은 “특정한 시대에 바림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지배적인 정서와 문화, 풍습”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바람직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바람직함을 의미한다. 이타성이다. 그러니 윤리는 애당초 “나만의 윤리”가 아니라 “우리의 윤리”인 것이다. “나만의 윤리”만 주장한다면 그것은 독선이고 궤변에 가까울 따름이다. 그런데 이들 3인은 모두 “나만의 윤리”강변하고 있다. 이들의 윤리가 “우리의 윤리”와 같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작금의 사태들은 이와 같은 논의들을 정말로 무색하게 만든다. 고리타분한 것으로 무력화시킨다. 구닥다리 교과서에서만 발견되는 골동품으로 전락시킨다.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윤리”를 부정하고 있다.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그들만의 윤리”로는 문제 없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공직윤리”가 천대받고, 무시당하고 있다. “공직윤리”가 무시당할진대 이젠 “공직”이라는 용어 자체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차제에 공직윤리를 폐기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해 본다. 이를 준수하여야 할 “당사자”들이 이렇듯 무시하고 조롱하고 있는데, 무엇하러 이를 고집하고 지킬 것인가? 그리고 이참에 “공직”이라는 용어도 폐기하는 것이 어떤지 제안한다. 어차피 이들을 포함한 많은 공직자들이 “이타성”을 부정하고 그들만의 윤리를 말하고 있는데, 구태여 “공(公)”이라는 용어를 쓸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대로 “윤리”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공직”에서 자유롭게 해주자. 괜히 공직이니 혹은 윤리니 하는 고귀한 용어를 사용하여 국민들 현혹시키고 괴롭히지 말고, 모두들 속편하게 공직이니 공직윤리니 하는 것들을 다 폐기처분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요즘 혁신이다 하면서 여러 병폐들을 제거하고 있는데, “공직 윤리”를 온갖 병폐 중의 한가지로 포함시켜도 별 문제 없을 것 같다. 불편하기만 하고 지키기 싫은 것, 괴롭히는 것을 무엇 때문에 유지할 것인가? 그러면 야당 의원도 이렇게 숨어 지내는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의정활동을 할 수 있고, 전총리는 계속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높은 자리에 계속 있을 수 있고, 서울시장 또한 계속 “황제 테니스”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괜히 이들을 괴롭히지 말고, 이들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할 수 있게 내버려두자. 이젠 구차한 공직윤리를 과감하게 없애 버리자. 허울 뿐인 공직이라는 용어도 이젠 과감하게 없애 버리자.

윤태범(방송대 교수, 맑은사회만들기본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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