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칼럼(ts) 2004-06-10   1209

[기고] 너무나 어렵지만 너무나 중요한 기록물관리

참여연대-세계일보 공동기획을 마치면서

참여연대를 처음 지원해 면접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질문이 있었다.

“시민운동이 전문적이어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아님 대중적이어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순간적으로 이 질문 속에 함정이 있다는 생각을 했고 몇 초간 머리를 굴려 자신 있게 대답했던 생각이 난다.(후일 그 질문을 한 선배는 절대 함정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 전문적인 것을 대중적으로 풀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멋진 대답이었다. 하지만 저 대답은 2년 넘게 나를 괴롭혔고 지금도 괴롭히고 있다.

내가 투명사회팀에서 주로 맡고 있는 분야는 정보공개와 기록물관리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참여연대에 들어와 정보공개법과 기록물관리법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중 에서도 기록물관리법은 보고 또 봐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분류기준표” “보존기간표” “편철분류” “특수자료관” 등 온갖 함축적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는 것이 기록물관리법이다. 또한 기록물관리법은 법을 공부하는 학자들이나 변호사들조차 생소한 법이어서 관련 전문가들조차 많이 없다. 따라서 운동현장에서 기록물관리법의 중요성을 시민들에게 쉽게 알리기란 쉽지 않았다.

이런 현실은 나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현장에서 직접 공공기관이 기룩물관리를 맡고 있는 담당자들조차 기록물관리법의 무지는 심각했다. 그로 인해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소중한 기록물을 폐기시키는가 하면 제대로 작성하지도 보관하지도 않고 있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기록관리를 하고 있는 담당자들은 대부분 1-2년 내에 보직을 변경하고 있어 이런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단 것이었다.

결국 2003년 5월부터 대표적인 중앙행정기관 몇 개를 선정하여 정보공개청구로 통해 집중적인 기록물관리실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에 청구한 정보공개청구 량은 몇 천 페이지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몇천 페이지에 해당하는 자료들을 분석하는 것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다. 관련 전문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업었더라면 분석조차 불가능했을 지 모른다.

조사 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대부분의 기관이 기록물관리밥을 위반해 기록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너무나 전문적이고 현학적인 것들이 너무 많아 어떻게 알면 시민들을 제대로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하는데 있었다.

결국 오랜 논의 끝에 시민들에게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록물폐기실태에 대한 것만 사회에 고발 할 수 있었다. 애초 예상보다는 반응은 뜨거웠지만 우리가 준비기간과 자료에 비하면 너무나 미미한 것이었다.

그 이후 기자들과 공동기획취재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소중한 자료가 세상에 빛을 보기를 바랬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다. 항상 걸림돌은 너무나 어렵다는 것에 있었고 현장의 실태를 접근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민하는 자에게 길이 열린다고 2004년 3월 세계일보에서 기록물관리에 대한 탐사보도를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는 신념으로 담당 기자에게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그동안 내 재산보다 더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자료도 그들에게 다 제공해 주었다.

결국 세계일보는 참여연대와 공동으로 9회에 걸쳐 기록물관리실태에 대해 보도하기로 결정했고 지면도 파격적으로 배치 받을 수 있었다. 참여연대는 주로 과거에 모아 두었던 자료를 제공하고 현 정부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지적을 해주었다. 또한 각종 정부부처에 기록물관리실태를 조사할 설문지도 꼼꼼히 만들어 제공해 주었다.

거의 두 달간의 준비기간과 취재기간을 통해 우리나라의 기록물관리실태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압권은 세계일보 김형구 기자와 내가 6개 부처(행자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환경부, 법무부)를 문서고를 민간인 최초로 들어가 보관 상태등을 꼼꼼히 체크할 수 있었단 것이다. 원래 문서고는 일반인들의 접근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라 취재하기 어려운 곳이었지만 이번에는 부처별로 문서고를 개방해 주었다.

단순히 이론적으로만 각 부처 문서고의 시설을 들어온 나로써는 직접 방문한 결과 입을 담을 수가 없었다. “습기가 꽉 차 있는 축축한 공간” “온갖 자재들이 널 부러진 모습” “외부공기가 유입될 수 없는 꽉 닫힌 구조” 등 우리의 소중한 기록물이 썩어가고 있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런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보았다. 30년 전 손으로 정성스럽게 써 놓은 중요한 각종 기록들은 곰팡이 시퍼렇게 번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아마도 30년 전 누군가 그 문서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겠지만 그 기록은 쓸쓸히 죽어가고 있었다. 담당 공무원은 앞으로는 잘할 것이라는 말만 연신 되풀이하고 있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대부분의 기관이 자신의 업적을 홍보하거나 책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자료실은 너무나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곳이다. 그곳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상대적으로 자유스러운 곳이라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의 전시행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결국 “기록이 없는 나라” 라는 이름으로 5월 31일부터 보도가 나가기 시작했다. 세계일보에서는 메인 톱과 4.5면을 털어 수많은 기록들이 사라진 실태를 조목조목 지적하기 시작했다. 특히 6월 1일자에는 6개 부처 문서고의 모습이 신문에 9장의 사진으로 보도되었다. 기록물이 너덜너덜 해졌거나 각종 자재들과 뒤섞여 방치되어 있는 모습들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각 부처 문서고의 처참한 모습이 보도된 아침에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앞으로 대책을 발표 할 수 있도록 인터뷰를 요청해왔다고 한다. 주무부처 장관조차도 우리나라의 문서고가 그렇게 심각한 상태였는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후에 주옥같은 기사들이 세계일보를 지면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현장에서 담당자들과 싸우면서 받아내었던 각종 자료들과 세계일보 특별취재팀의 헌신적인 노력이 어우러져 수많은 특종들이 보도될 수 있었다.

결국 참여연대와 세계일보가 공동으로 기획한 기획연재는 끝이 났다. 하지만 기획기사는 끝났지만 그 여파는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다. 이번 보도로 인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기록물관리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또한 감사원에서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실태에 대해 특별감사를 결정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기관에서 기록물관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사회 전반적으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던 기록물관리가 이제서야 빛을 보는 것 같아 그저 기쁠 뿐이다. 기록관리 없이 이 사회의 미래는 없다. 지나간 과거를 반추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발전은 영원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기록을 작성하고 보관하는 것은 우리 후세를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이다. 이번 기회로 조선시대부터 내려왔던 기록관리의 전통이 현실에서도 이어지길 간절히 바래본다.

전진한 맑은사회만들기본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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