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반부패 2004-07-08   1788

백지신탁제도 무엇이 쟁점인가

공직자 범위·신탁 방식·위헌성 등 문제

이해충돌 방지 차원에서 중요한 제도로 부각된 백지신탁 제도가 입법화를 앞두고 있다. 이에 맞춰 참여연대는 7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백지신탁제도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백지신탁 적용대상 공직자의 범위, 신탁의 방식, 부동산 재산의 포함 여부,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재산의 포함 여부 등이 쟁점이 됐다. 그리고 이 모든 쟁점과 관련해서 위헌성 여부도 세심하게 검토할 필요성이 확인됐다.

적용대상 공무원의 범위

정부여당안은 1급 이상 모든 공무원에 일괄 적용하는 방안이다. 애초 공직자 이해충돌의 문제를 공론화시켰던 참여연대는 “이해충돌은 기본적으로 직무 관련성이 핵심이기 때문에 공무원 직급에 따라 일괄적으로 처리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며, 이에 따라 “1급 이상 공직자와 경제부처 공직자는 사전 규제적 차원에서 주식보유를 금지시키고 4급 이상 공직자에 대해서도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직무 관련성을 심사해서 관련성이 인정된 경우에는 백지신탁 등 이해충돌을 회피할 수도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 행정자치부는 “직무 관련성을 심사하는 데 따른 기술적 어려움”을 들어 현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이은영 열린우리당 의원의 경우 “1급 이상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는 하위직 공직자를 포함시켜도 무방하다”고 밝혔고, 오늘 토론회에 참석한 박연수 행정자치부 감사관도 “토론회에서 지적된 직무 관련성 여부가 이해충돌 문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정부 여당안의 변경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도 정부 여당안처럼 1급 이상 공직자로 대상을 한정하는 분위기다.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은 “백지신탁제도의 시행이 처음이고, 백지신탁제도를 지원하는 금융제도가 부실해 4급 이상 공직자까지 확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행자부안에 대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임지봉 건국대 교수는 “직무 관련성 여부와 무관하게 1급 이상 모든 공직자를 대상으로 할 경우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원칙으로서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위헌 가능성이 제기된다”면서 “하위직이라도 직무 특성상 이해충돌 가능성이 높은 경제부처 공직자는 백지신탁 작용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올바르다”고 주장했다.

과잉금지 원칙 등 위헌성 시비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정부가 시민단체보다 더 저돌적인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박연수 감사관은 “재산권 제한과 관련 공익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재산권을 제한하는 입법사례가 많고, 재산권 수용이 대표적”이라며 “백지신탁은 주식보유를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헌성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리신탁인가, 처분신탁인가

백지신탁과 관련 또 하나의 쟁점은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공직자의 재산을 신탁회사에 맡겼을 때, 신탁회사가 그 재산을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하는 처분신탁으로 할 것인가, 신탁회사가 재산을 관리만 하는 관리신탁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정부안은 일단 이해충돌 방지라는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처분신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역시 같은 입장이다.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블라인드 트러스트(blind trust)에서 ‘블라인드’의 의미는 재산의 변동을 수탁자(공직자)가 모른다는 데 그 핵심이 있다”면서 “정치권 일부에서는 미국의 백지신탁 제도가 강제가 아니라 선택사항이라는 이유를 들어 처분신탁에 반대하고 있는데, 미국의 백지신탁제도는 실제로 거의 강제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탁 방식에 관해 한나라당은 아직 당론이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박재완 의원은 보관신탁을, 권영세 의원은 처분신탁을 주장하는 등 개별 의원들의 입장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적용 재산과 인적 대상이 행자부안 수위로 가는 것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권영세 의원은 “재임 중에 정책 결정을 통해 재산 가치를 불려 놓고 퇴임 후에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보관신탁은 엄밀한 의미에서 백지신탁이라 볼 수 없다”고 하면서도 “백지신탁 자체가 개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요소가 있어 넓게 적용되서는 곤란하다”는 우려를 전했다.

열린우리당은 이에 대한 분명한 조율이 안됐지만, 권영세 의원이 “열린우리당도 보관신탁 쪽으로 기운다고 알고 있다”고 발언한 것에 비춰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낼 지는 미지수다.

부동산 재산의 포함 여부

백지신탁의 대상이 되는 재산은 주로 주식에 집중되지만, 여기에 대해 부동산 재산도 포함시켜야 하는 지가 쟁점이 되고 있다. 행자부안은 부동산 재산은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박연수 행정자치부 감사관은 “주식의 경우 이론의 여지없이 이해충돌의 문제가 발생해 통제해야 되지만, 부동산은 주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서 “부동산 재산은 현 재산등록제도를 통해서도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막는 데 상당한 효력을 거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나라당이 여당보다 진전된 당론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부동산을 백지신탁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공약했고, 현재는 여기에서 약간 후퇴해 백지신탁은 아니지만 1세대 1주택 외에 개별 공시지가 또는 기준시가 기준으로 1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원칙적으로 매매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매매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은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부동산 재산의 경우 이해충돌 가능성이 낮고, 외국 사례도 없다는 이유로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제도규제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윤태범 교수는 7일 참여연대 주최 ‘백지신탁제도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제문을 통해 “부동산도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경우 이해충돌 방지 대상 재산으로 다뤄야 한다”고 시민단체의 시각을 대변했다.

백지신탁제도 도입시 소급 적용 가능한가

17대 국회가 백지신탁제도를 도입할 경우, 이 제도 도입 전에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주식 재산을 취득한 경우에도 모두 백지신탁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도 쟁점이다. 헌법상 소급적용 금지 원칙과 관련해 위헌성 시비도 있다.

이와 관련, 지난 5일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17대 국회의원에게도 백지신탁제의 취지는 적용되어야 하지만, 17대 의원 전원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전부 처분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고 발언해, 열린우리당이 백지신탁제도의 소급적용에 반대하는 당론으로 기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여론의 반대를 의식해 현재는 소급적용으로 기운 분위기다.

박연수 행자부 감사관은 “소급입법이 문제가 된다면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수년, 수십년 공직생활을 해온 공무원 일반이 문제가 된다”면서 백지신탁 제도 도입에 따른 소급입법의 문제는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지봉 교수는 백지신탁제도의 소급입법성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보호 이익보다 공직사회의 부패나 정경유착의 정도가 심해 이를 바로잡을 필요성이 더 커서 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논지로, 위헌성 시비를 피할 수 있다는 법률적 견해를 내놨다.

배우자·직계존비속도 포함되나

백지신탁을 비롯한 이해충돌 해소 제도 대상으로 공직자의 배우자와 가족 등이 포함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다. 여기에도 연좌제 금지, 과잉금지 원칙 등 위헌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박연수 감사관은 “배우자나 가족의 재산을 포함시킬 경우 연좌제 금지 문제가 있는데, 아직 해결을 하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박 감사관은 “가족 중에서 특히 배우자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박 감사관에 따르면,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자 본인과 독립해서 사는 부모와 자식은 재산등록시 ‘고지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서 큰 문제가 없다. 미성년자 역시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러나 박 감사관은 “공직자의 배우자가 기업 소유자 또는 경영자였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밝혔다. 박 감사관은 “공직자의 배우자가 이해충돌 가능성있는 기업의 경영권을 가진 경우라면 법 개정을 기다리기 전에 뭔가 대책을 세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당연히 앞으로 도입될 백지신탁 제도에 배우자의 경영권 문제를 이해충돌 방지 차원에서 다룰 것이란 입장인 셈이다.

배우자의 경영권 문제와 별도로 참여연대는 백지위임신탁의 대상 범위에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임지봉 교수는 “고위공직자의 존비속이란 이유로 재산의 사용, 수익, 처분을 자유로이 할 수 없게 한다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높다”면서 “이런 규제는 또한 공직자가 직계존비속 이외에 친인척 명의로 주식투자를 할 경우 규제할 방법이 없는 맹점이 있다”고 위헌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이런 위헌성 문제는 시민단체와 정부, 여야 정치권이 좀 더 논의를 해야 할 부분이다.

이 밖에도 정몽준 의원의 경우처럼, 백지신탁을 했을 경우 경영권을 잃을 수밖에 없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규제 방법,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경우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스톡옵션도 백지신탁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 등도 입법과정에서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백지신탁 제도의 입법화가 탄력을 받고 있지만, 참여연대는 백지신탁 제도를 공직자의 이해충돌 해소를 위한 ‘하나의 제도’로 보는 반면, 정치권은 모든 이해충돌의 핵심으로 백지신탁제도를 다루고 있어 공직자윤리법에 포괄적이고 촘촘한 이해충돌 방지 제도를 마련하는 데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각 당이 부패근절 의지를 자랑이라도 하듯 앞다퉈 내놓았던 백지신탁(blind trust) 제도가 본격적인 국회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 실효성을 훼손할 수 있는 발언들이 심심찮게 정치권에 의해 쏟아지고 있어, 최종 제도화 단계에서 이해충돌 방지라는 입법 취지를 얼마나 살릴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장흥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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