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칼럼(ts) 2005-04-11   1601

<안국동窓> 공직자 검증시스템, 이해충돌 확인할 수 있어야

관청 혹은 바름(正)을 뜻하는 “공(公)”이라는 글자는 중국의 전국시대 한비자에서 처음 언급된다. 한비자에서는 “자기의 이익만을 취하는 것을 사(私)라 하고, 이 사(私)와 반대되는 것을 공(公)이”라 하였다(自環者謂之厶, 背厶謂之公). 즉 공은 자기의 이익을 멀리하고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으로서, 공직자는 곧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타인, 즉 국민의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한자만이 아니라 영어의 공(Public)의 어원인 “Pubes”의 원뜻도 “타인을 돌보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하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公)의 의미나 혹은 이것에 기초하고 있는 공직자의 기본적 의미에는 하등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이와 같은 공(公)의 의미를 망각하거나 혹은 오용하는 사례들이 연이어 등장하여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즉 최근 계속 논란이 되었던 몇몇 장관(혹은 장관 후보자)들의 부도덕성이나 그릇된 처신들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는데, 대부분이 “공(公)”의 의미를 망각한데서 비롯된 사례들이다.

물론 이렇게 장관들이 “공(公)”을 망각하고 부도덕하게 처신하였다가 중도에 그만두었던 일든은 비단 이번만은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시절 부터 최근까지의 사례를 보면, 장관 본인의 부패문제를 비롯하여 주식과 부동산, 가족의 재산 등 장관의 도덕성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사퇴한 장관들 수가 줄잡아 30명이 넘는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숫자이다. 장관이라면 공직의 꽃이며 상징인데, 이렇게 30여명이 도덕성 문제로 인하여 중도에 사임하였다는 것은 고위공직자의 도덕성이 이제 땅에 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과거에는 별탈이 없었던 관행에 지나치게 엄격한 현재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 것이기에 문제가 있다는 항변도 한다. 일리가 전혀 없는 지적은 아니다. 그러나 공직, 그것도 장관이라는 고위 공직자의 근본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면, 오히려 도덕성 기준이 새롭게 엄격해진 것이라기 보다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공(公)”의 의미가 이제서야 되살아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관이 된다는 것에는 자신의 사익이 아닌 타인, 즉 국민의 이익(公益)을 돌보겠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장관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의심받지 않는 처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직도 유효하다.

장관 자신의 이익에 우선하여 공공의 이익을 돌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에 처하지 말아야 한다. 이해충돌에 처하는 것 자체가 부도덕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할 경우 부패로 유인될 가능성은 어느 것보다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장관의 도덕성을 확보하고 제대로 검증하기 위한 일차 관문으로 공직자가의 이해충돌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이해충돌의 상황이 예견될 경우 공직 후보자가 이를 해소하고 공직에 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국회에서는 여와 야를 막론하고 장관에 대한 청문회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국회 청문과정을 통하여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제도 자체는 매우 의미 있다. 그러나 정작 청문제도의 가장 중요한 핵심, 즉 무엇을 기준으로 청문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제대로 된 기준을 설정하고, 이것의 측면에서 청문이든 검증이든 논의되어야 한다.

국회 청문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관 후보자의 이해충돌 여부를 얼마나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장관 후보자의 공직과 사익간의 이해충돌 가능성이 청문과정을 통해서 확인될 수 없다면 청문회 절차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의회 인준을 받는 고위직을 대상으로 하는 청문의 경우, 사전에 자세하게 기록된 재산등록 사항과 경력 등을 제시하고, 앞으로 담당하게 될 공직과의 이해충돌 여부를 심사받으며,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이해충돌을 해소하지 않으면 의회의 인준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 미국의 청문제도는 이해충돌 확인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청문회제도가 장관의 윤리를 제대로 확보해줄 수 있는 유영한 잣대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해충돌이라는 측면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와 같은 인식공격성 청문으로 장관에 대한 청문이 이루어진다면, 득도다 실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제대로된 청문회제도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윤태범 (방송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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