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칼럼(ts) 2006-03-13   1467

<안국동窓>‘두려움’ 없는 방약무인(傍若無人)

사기(史記)의 형가전(荊軻傳)에 나오는 일화이다.

위나라에 진시황을 죽이려다 실패한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예와 문학에 능하였고 호주가였으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현인호걸들과 친교를 맺고 있었다. 형가가 연나라를 방랑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형가는 축(筑-비파의 일종)의 명인인 연나라의 고점리(高漸離)와 아주 친하여 두 사람은 매일 같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술을 마셨다. 취하여 흥이 나면 사람들이야 보건 말건 고점리는 축(筑)을 타고, 형가는 그것을 반주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감정이 고조되면 두 사람은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손을 맞잡고 울었다(傍若無人). 방약무인은 이렇게 “당당한 태도”를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이제는 그 뜻도 변하여 “무례”하거나 “교만”한 태도를 표현할 때 종종 쓰인다.

국무총리의 ‘삼일절 골프’ 논란이 연일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순수한 운동으로 하는 골프라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는데, 그 동안의 언론보도로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상당히 “부적절한” 운동이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게다가 이와 관련한 해명에서도 총리실이나 교육부차관 등 관련 인사들의 말 바꾸기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가 나서서 조사하겠다고 하니 기류가 심상치 않은 것 같다.

그동안 국무총리는 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최근 국회의 대정부 질문과정에서는 야당의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자신의 소신을 정말로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야당의원들이 오히려 궁지에 몰릴 정도로 당차게 대응하였다. 야당의원들에게 쩔쩔매는 다른 국무위원들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말 그대로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모습(傍若無人)을 보였다.

그런지 며칠 후 국무총리의 또 다른 모습이 한 지방지에 포착되었다. 삼일절에 부산 상공업게 인사들과 골프장에서 골프를 하는 광경이었다. 물론 같은 시간에 대통령이 삼일절 행사에 참석하고 있었지만, 이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것 같다(傍若無人).

이후 삼일절 골프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연이어 터지기 시작하였다. 부적절한 인사들과의 회동이었다는 지적이다. 일부 인사는 사실상 총리와 심각한 “직무상 이해충돌”을 야기하는 정말로 “부적절한” 인사라는 지적이 보도되었다. 조금이라도 주의 깊은 공직자라면 당연히 피하였을 것 같은 몇몇 인사들과의 접촉을 총리는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하였다(傍若無人). 총리가 이날 같이 운동하였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사전에 알았는지 혹은 몰랐는지는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또 얼마 후 언론은 삼일절 골프에 “내기”가 있었다고 보도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도박이다. 금액의 규모를 떠나서 하지 말아야 했을 “내기‘를 하였다. 조금만 주의 깊은 공직자라면 피하였을 ”내기 골프“를 총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였다(傍若無人).

흔히 국무총리를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고 한다. 정말로 높은 고위 공직자임을 일컫는 말이다. 공직자들의 우상이 될만한 자리이다. 그런데 혹 국무총리는 자신을 정말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총리는 자신이“(일인지하 만인지하)一人之下 萬人之下”에 있음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기에 아직도 방약무인(傍若無人)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옳지 않은 일에 대한 당당함은 고위 공직자가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품성이다. 주변이 아무리 불의로 가득 차 있어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傍若無人)은 고위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참 모습이다. 그러면서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이를 티내지 않는 것이다. 하늘아래 있음에 허리를 굽혀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땅이 아무리 두터워도 조심스럽게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跼蹐). 이 또한 고취 공직자가 갖추고 있어야 할 가짐이다.

불의에는 당당하게 행동하되(傍若無人), 국민을 누구보다도 어렵게 여겨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跼蹐)이 총리와 같은 고위공직자가 늘 갖추고 있어야 할 덕목이다. “두려움(跼蹐)”이 없는 “방약무인(傍若無人)”은 결코 “무례함“과 ”교만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국무총리에게서는 ”두려움(跼蹐)이 없는 방약무인(傍若無人)”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윤태범 (방송대 교수, 맑은사회만들기본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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