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경찰감시 2009-06-17   1401

[통인동窓] 집회는 경찰서장 허가대상이 아니다



 집회는 경찰서장 허가대상이 아니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헌법학,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요즘 서울광장 폐쇄와 관련해 집회의 자유 논란이 뜨겁다. 우리 헌법은 제21조에서 집회의 자유를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명문규정을 통해 금지하고 있다.
물론 헌법상의 기본권도 공익을 위해 부득이한 경우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집회의 자유와 같은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운영을 위해 특히 중시되어야 할 자유이므로 그 제한이 사뭇 까다롭다.

주권자 국민의 뜻이 국정에 제대로 반영되는 민주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선거가 없는 평상시에도 집회의 자유와 같은 표현의 자유가 ‘살아 있는 기본권’으로서 제대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집회의 자유는 소수자 및 약자의 권리라는 측면에서도 보호의 필요성이 크다. 대의제의 일반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그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고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적 소수자 및 약자들이 집회를 통해 그들의 공통된 이익과 의사를 확인하고 이를 표현하는 자유가 집회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기댈 다른 방법이 없는 소수자나 약자의 집회를 통한 절규를 들어줄 수 있는 아량을 민주사회는 요구한다.

이런 점 때문에 국내외의 많은 학설과 판례는 집회의 자유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즉, 소수자 및 약자의 집회의 자유는 집회지역 거주자의 주거의 평온을 보호하는 프라이버시권 등의 다른 권리보다 우월적 지위를 점하기 때문에 우선시 될 수 있다. 집회로 인해 주거의 평온이나 인근지역의 교통소통이 어느 정도 방해받는 것은 ‘집회의 자유’라는 중요한 기본권의 보장을 위해 다른 사회구성원들이 용인해줘야 할 ‘민주주의의 비용’이 되는 것이다.


우월적 지위 가진 ‘집회의 자유’

문제는 헌법상의 집회의 자유를 구체화한 하위법률인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우월적 지위를 가지는 중요한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보장’하고 구체화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기보다는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규정을 통해 ‘제한’하는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집시법 제5조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를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집회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 한 예이다.

‘공공의 안녕질서’나 ‘위협을 느낄 것’ 등이 얼마나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규정들인가. 집시법 제14조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조항은 집회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도로를 행진하는 경우에도 주변 도로의 교통 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심각한 교통불편을 줄 우려가 있으면 관할경찰서장이 집회를 금지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심각한 교통불편을 줄 우려’라는 모호한 규정에 기반해 경찰서장이 집회를 원천봉쇄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집회의 자유와 같은 표현의 자유 제한에는 ‘명확성의 원칙’이 엄격히 적용된다. 어떤 경우에 집회의 자유가 어떻게 제한되는지 사전에 누가 보더라도 명확히 알 수 있게 법에 규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규정들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의 소지가 높다.

나아가 이런 모호한 집회금지 규정은 경찰서장이 자의적인 집회금지 판단을 통해 집회의 자유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서 더 문제다. 사실상 집회가 ‘경찰서장 허가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집회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는 우리 헌법 때문에 집시법은 제6조에서 신고제를 규정하고 있다. 집회를 개최하려는 사람은 집회개최 720시간에서 48시간 전에 이를 집회지를 관할하는 경찰서장에게 신고서를 통해 알리기만 하면 된다. 이 때 집회에 대한 신고는 단지 경찰서장의 행정상의 참고를 위한 것일 뿐이다.


위헌적으로 운용되는 집시법

그런데 현실의 법적용에서 경찰서장들은 예외적으로만 이루어져야 할 집회 금지통고를 남발함으로써, 그 실제적 운용에 있어 ‘신고제’가 아니라 또다시 ‘경찰서장 허가제’로 집시법을 운용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이달초까지 시민·사회단체가 서울 도심에서 열려던 민생·시국 관련 집회 42건이 모두 금지통고처분을 받은 것이 그 방증이다. 집시법이 위헌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봉사자로서 국민의 집회의 자유가 제대로 행사되도록 협력해야 할 의무를 진다. 자의적 판단으로 국민 기본권을 훼손하는 일은 추호도 없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서울광장 봉쇄와 관련해 “차벽이 병풍 같아서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는 분들도 있다”고 한 경찰수뇌부의 발언은 헌법과 현실의 괴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글은 내일신문 6.16일자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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