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과 정치역학 사이에서 고민하는 정형근 의원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 이후 한나라당의 ‘국정원 폐지’ 강경론을 주도했던 정형근의원이 국정원 개혁 쟁점 중 하나였던 수사권 폐지를 놓고 애초의 한나라당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정 의원은 29일 오전 10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강당에서 열린 참여연대 주최 ‘국정원개혁 대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해 “일단 해외정보를 다루는 부서와 국내 안보정보를 다루는 부서를 분리하되, 국내보안담당 부서의 수사권은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유지하든지, 검찰이나 경찰에 이관하든지 공청회 등을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가 주최한 국정원개혁 토론회에 참석한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원 개혁방안에 대한 다른 참석자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고심의 표정을 짓고 있다.(사진 : 사이버참여연대) |
정 의원은 “국정원 개혁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방향은 정해졌지만 내용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도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간첩수사를 검·경에 넘기자고 하는데, 이는 대공수사업무의 어려움을 모르는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정 의원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국내 정보기관의 대공수사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정 의원의 정보기관 수사권에 대한 미련은 “현재 국정원은 단순한 정보기관이 아니라 ‘정보수사기관’이기 때문에 국정원 수사권 폐지 논란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는 처음의 발언부터 강하게 묻어났다. 국정원 개혁의 또 하나의 쟁점인 국정원의 예산통제에 대해서도 “세계 어느 나라도 정보기관의 예산이 공개되고 있지는 않다”면서 “미국도 국회 정보위에서만 공개를 하는데, 정보기관의 기밀유지에 대한 정보위원의 인식과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미국과 우리나라 사정은 다르다”고 밝혔다. 국정원 예산에 대한 국회와 법률에 의한 통제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에 주장에 대해 보안상의 문제를 지적하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힌 셈이다.
국정원 자체 개혁안에 대한 집중 성토
정 의원은 이밖에 지난 9일 발표된 국정원이 발표한 자체 개혁안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정 의원은 “대공정보수집에 있어 수집과 분석조직을 분리했는데 본인의 경험상 이는 언제든지 기구를 확대할 수 있다. 또 동북아지원단 등 2개 기구를 신설해 오히려 조직을 확대했고, 인적인 구성에 있어서도 1급 이상 직원의 70% 이상이 특정지역 출신으로 이뤄져 상호견제 기능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성토했다.
이날 정 의원의 전체적인 발언은 고영구 국정원장과 서동만 기조실장의 임명 이후 국정원 폐지를 들고 나온 한나라당의 초강경론이 당의 정체성 논란, 노무현정부에 대한 대응 수위 등 여러 정치역학 사이에서 정리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정 의원은 “해외정보처와 국내 정보부서의 분리는 국정원 근무시절부터 절실하게 느꼈고, 참여정부에 대한 정치적 압박으로 갑자기 결정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여론의 추이는 ‘더 이상 국정원에 대해 한나라당이 미련을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없애자’는 즉각적이고 정치적인 대응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특히 한나라당 국정원 폐지의 핵심 내용인 대공수사권의 검경 이전은 “이 정부 들어 간첩을 몇 명이나 잡았느냐?”는 김대중정부 시절의 한나라당의 평소 목소리와 정면 배치되는 주장이라 당 내부의 혼란이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후 박희태 대표가 ‘꼭 국정원을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개조되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 발 물러서고, 국사모(국정원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 그동안 한나라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외부단체 및 내부 인사들의 반대에 직면하면서 초기의 강경 당론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반북반공 정치인이자, 국정원과의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정 의원의 고심은 한나라당이 국정원 폐지 법안의 국회 제출 시기로 잡은 오는 9월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결단이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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