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19-07-08   1549

[아시아생각] 나는 홍콩 사람이다

지금 홍콩은 반송중 시위로 뜨겁습니다. 홍콩 시민들은 왜 거리로 나왔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한국에 살고 있는 홍콩인 Fanny(한국 기독 학생회 총연맹 국제부 활동가)님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나는 홍콩 사람이다

반송중, 우리는 왜 싸우는가? 한국에 살고 있는 홍콩인 이야기 

 

파니 Fanny (한국 기독학생회 총연맹 국제부 활동가)

 

 

지난 6월 홍콩에서 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일요일에 두 번이나 거리에 나와 “반송중(反送中)” 구호를 외치며 ‘범죄인 인도법(아래 송환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했다. 송환법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홍콩 시민들은 반대하는 것일까?

 

이 법안은 2018년 2월, 한 홍콩 남성이 여자친구와 대만으로 여행을 갔다가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망쳐온 것에서 시작되었다. 딸과 연락이 되지 않은 어머니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면서, 남자친구가 딸을 대만에서 살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홍콩과 대만이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지 않아 대만에서 범죄인의 인도를 요청해도 홍콩인을 강제로 송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 정당이 다른 방안을 제안했지만,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2019년 2월, 홍콩 정부는 중국과 대만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협약을 맺지 않은 국가에도 범죄인 인도를 할 수 있도록 송환법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은 법안에 ‘중화인민공화국 제외’를 삭제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즉, 법이 개정되면 중국을 포함해 홍콩과 협정을 맺지 않은 국가에도 범죄인 인도 협정이 적용되는 것이다. 또한 개정 후에는 범죄인 인도 요청이 왔을 때 홍콩 입법회가 먼저 심의하는 절차도 삭제될 예정이다. 입법회 심의 없이 행정 장관과 법원이 최종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홍콩 반환 22주년인 7월 1일에 진행된 대행진

▲  홍콩 반환 22주년인 7월 1일에 진행된 대행진 ⓒ Fanny

 

홍콩의 사법독립이 망가질 수도 있다

 

홍콩 시민들은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 송환법이 개정되면, 중국에서 범죄인 인도 요청이 왔을 때 언제든 홍콩 시민을 중국으로 송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이 그동안 자랑해온 사법독립(司法獨立)이 완전히 붕괴할 수도 있다.

 

올해 3월 말부터 지금까지 송환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는 6차례 열렸다. 6월 9일, 3번째 시위에는 백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에 참여했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이러한 반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6월 12일 입법회 회의에서 법안을 심의하여 그날 바로 통과시킬 예정이었다. 

 

입법회 회의가 예정된 날, 홍콩에서는 400개 넘는 회사가 파업과 철시를 했고, 100여 곳의 학교와 7개 대학이 동맹휴학을 했다. 수많은 시민이 전날부터 입법회를 포위하고 집회를 이어갔다. 결국 그날 입법회 회의는 시위 때문에 취소 되었지만 경찰들은 최루탄, 고무탄 등을 사용해 시위자와 기자들을 강경 진압했고 많은 시민들이 부상을 당했다. 그날 밤 홍콩 정부는 이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했다.

 

이어 6월 16일 200만 명+1명(1명은 16일 대행진 전날 고공시위 중 추락하여 숨진 희생자를 의미)의 홍콩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와 경찰 과잉 진압 규탄, 송환법 철회, 행정장관 캐리 람 퇴진을 요구했다. 대규모 시위는 홍콩 반환 22주년인 지난 7월 1일에도 이어졌다. 

  

홍콩 입법회 앞 시위대 모습

▲  홍콩 입법회 앞 시위대 모습 ⓒ Fanny

 

 

2003년 국가보안법 반대, 2014년 우산운동, 그리고 2019년의 반송중

 

이번 반송중 시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후 20여 년 동안, 홍콩 시민들은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다. 5년 전 2014년의 우산운동(혹은 우산혁명)이 아직도 어제의 일처럼 느껴진다. 시민들은 홍콩 금융 중심가 센트럴을 3개월 가까이 점령하고 민주 직선제를 요구했다. 이번 반송중 시위 역시 이 우산운동의 연장선에 있다. 

 

사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3년(중국 반환 6년 후) 50만 명의 홍콩 시민이 국가보안법(기본법 23조) 반대를 외치며 거리에 나온 일도 있었다. 중국 반환 후 벌어진 첫 번째 대규모 민주화 시위였다. 반환 이후 홍콩 시민들은 홍콩의 가치인 인권, 독립적 사법 제도,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이 중국의 영향으로 흔들릴 수 있고, 일국양제의 약속 역시 언제든 깨질 수 있다고 깊이 느끼고 있었다.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던 홍콩 시민들이 50만 명이나 거리에 나왔을 때, 당시 홍콩 정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국가보안법 규정은 결국 폐지되었다. 

 

2014년 우산운동은 반환 후 두 번째 대규모 민주화 시위였다. 우산운동의 강력한 요구는 홍콩 민주화, 직선제였으며 학생들과 젊은 세대가 주도했다. 우산운동은 2014년 9월 말부터 12월 중순 홍콩 정부가 시위 현장을 강제 철거할 때까지 2달 반이 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우산운동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으며 이후 시위를 이끌었던 여러 명이 체포되고 수감되었다. 우산운동에 참여했던 젊은 세대들은 매우 분노하고 실망했다. 지난 5년 동안 쌓였던 분노가 다시 민주화의 씨앗이 되어, 이번 반송중 시위에 ‘우산세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이 한국 신문에 게재한 광고

▲  홍콩 시민들이 한국 신문에 게재한 광고 ⓒ Fanny

 

나는 홍콩 사람이다

 

200만+1명 대행진, 그리고 7월 1일에도 대규모 시위가 있었지만 정부는 아직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홍콩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홍콩의 상황을 알리고 한국 시민들의 지지를 요청하기 위해 홍대에서 밤마다 피켓팅을 했었고, 지난 6월 15일에는 동대문 DDP에서 서명운동을 하기도 했다. 

 

6월 28일에는 한국 신문들에 광고를 냈다. 이 광고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전후로 국제사회에 홍콩의 상황을 알리고 홍콩 정부와 중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홍콩 시민들이 크라우드펀딩으로 모금한 돈으로 게재한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약 673만 홍콩 달러(한화 약 10억 원)가 모금되었고 6월 28일 독일, 영국, 캐나다, 일본, 미국, 한국, 프랑스, 대만 등 9개국 12개 신문에는 ‘Stand with Hong Kong At G20’ 광고가 실렸다.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반송중 시위에 참여한 의료 자원봉사자에게 왜 이곳에 나왔는지 물었다. 그 청년의 대답은 “나는 홍콩 사람이기 때문이다”였다. 홍콩 시민들은 왜 ‘나는 홍콩 사람’이라고 강조하는가? 왜 자꾸 홍콩과 중국을 구분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할까?

 

이번 반송중 시위를 포함해 반환 이후 지난 3번의 대규모 시위를 통해, 홍콩 시민들은 인권,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쳐왔다. 그것이 바로 우리 홍콩의 정체성이고, 홍콩 시민들은 이러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언제든 홍콩의 핵심적인 가치가 흔들리면, 홍콩 시민들은 거리로 나올 것이다. 이것이 홍콩이다.

 

오마이뉴스에서 보기 >> http://omn.kr/1jyp8

홍콩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 Fanny와 함께 한 참여연대 팟캐스트 [아시아팟] 절망이 희망에게 : 홍콩 ‘반송중’ 시위는 진행중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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