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12-10-10   11266

[아시아 생각] 계급 따라 먹는 ‘물’도 다른 네팔 – 아직도 요원한 네팔의 기본권

 

*한국은 아시아에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해있는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 해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각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뿐만 아니라 유엔과 인권, 개발과 인권, 기업과 인권 등 여러 분야에 대한 국제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계급 따라 먹는 ‘물’도 다른 네팔

아직도 요원한 네팔의 기본권

진주 전 아시아인권위원회(AHRC) 식량권담당 연구원

 

 

“비행장이 개장되었어요!”

 

며칠 전 네팔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무구'(Mugu)의 삼림과장 고빈다르 씨가 이제 지역에 비행장이 완성되었다는 기쁜소식을 전했다. 전날 무구의 보건담당자 딸인 스리자나가 국립의대입학시험에서 떨어졌다며 눈물을 떨궜던 터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지난 해 7명 정원의 경비행기를 목숨 걸고 타고 무구를 방문한 뒤로 비행장은 폐쇄되었고, 일년이 지난 이제서야 재개장된 것이다.

 

네팔 정부는 무구 지역이 가장 취약함을 인정하면서 수년 동안 이 지역의 기반시설 구축에 예산을 배분해왔다. 하지만 그 예산은 어디로 새어나가는 것일까. 비행장이라고 해도 해발 3000미터 꼭대기에 경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공터를 다듬은 것일 뿐이다. 하지만 비행장이 있는 가장 근거리 지역에서도 4일 동안 걸어가야 하는 것보단 낫다.

 

 

 

Mugu airport

 

▲ 구비행장 (Mugu, 2011). ⓒ진주

 

2011년 부패인지지수 154, 세계기아지수 19.9, 인간발전지수 157. 아름다운 히말라야 산맥과 다채로운 문화를 자랑하는 네팔의 정치, 경제적 실상을 간단하게 보여주는 수치다. 아시아 지역내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빈곤과 기아는 상대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부패도는 상당히 높고, 인간발전지수는 아시아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평가를 보여준다.

 

10여 년간의 내분끝에 2006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2008년도 의회선거를 시작으로 올해는 헌법제정에 관한 끊임없는 논쟁속에서 11월 의회 선거가 확정되었다. 그 동안 정치적 상황을 모니터링한 카터센터는 2011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속되는 정치적 불안정성이 정치적 공간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역의 정치적 폐쇄성을 유지시키고, 정당들의 대중활동 참여도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부패와 차별을 강화시켜 경제, 사회권을 보호하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다. 행정상 서부 산악지역에 위치한 무구가 대표적인 곳이다.

쌀가마니

▲ 무구비행장에서 세계식량기구의 쌀가마니를 운송하는 여성들 (Mugu, 2011). ⓒ진주

 

무구의 비행장에 내려서면 여성과 아이들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짐꾼들이다. 이들이 정기적으로 운반하는 짐 가운데 세계식량기구에서 배달해주는 50㎏의 쌀가마니도 있다. 한국처럼 네팔도 1950년부터 미국으로부터 쌀 원조를 받아왔고 정부는 이때 부터 외진 산악지역에 식량 지원을 시작했다. 세계식량기구와 같은 국제기구로부터의 식량지원은 이제 40년을 넘어섰고, 각종 국제기구 및 단체들이 마치 땅따먹기처럼 구역을 나누어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이 외진 산악지역에서 일하는 국제단체의 활동가들은 모두 무구 밖 외지에서 온 네팔인들로 현지 단체 및 활동가들의 수를 넘어선다. 몇몇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원이 비효율적이며, 식량 의존도를 높여왔다고 비판한다.

 

세계식량기구나 여타 국제기구들의 주장과 달리, 마을 사람들의 75%가 식량지원의 수혜자가 되지 못한다. 네팔 내의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쌀과, 일본과 같은 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쌀, 세계식량기구와 같은 국제기구로부터 지원받은 쌀들이 저렴하게 판매되거나 프로그램을 통해 분배되긴 한다. 하지만 저렴하게 들어오는 쌀의 대부분은 우선적으로 정당활동에 지원되고, 정부관료 및 국제 NGO활동가들에게 인센티브로 제공된다는게 담당자의 설명이다. 결국 무구 내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 지원받는 경우 가족 당 일년 내 20㎏의 쌀에 불과하다. 일본에서 들여온 쌀은 지역 토종쌀과 달라 마을 사람들이 소화를 시키지 못해 무용지물이 됐다.

 

2011년부터 세계식량기구는 지원을 대폭 축소하고 헬리콥터 배달을 중단했다. 세계 경제위기로 식량 원조 사업에서도 헬리콥터 운영이 금지됐고 대신 현지 상황 개선, 인도적 지원보다는 개발 중심의 지원으로 축이 옮겨갔기 때문이었다.

식량배급

 

▲ 소재지에서 식량배급을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 (Mugu, 2011) ⓒ진주

 

“모든 사람들이 어느 한 정당에 속해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함부로 말해서도 안되고, 부패를 고발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장치도 없습니다. 당신이 여기서 일하려면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해선 안되며 독립해서 개척해야 할 거에요. 나는 단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언론인이 되고 싶어요.”

 

계속 빼돌려지는 식량지원을 부패로 고발하기란 쉽지 않다.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며 사건을 보도해 온 한 언론인은 몇 차례 지역관료 및 정치인들의 마을개발 및 지원관련 부패문제를 보도하다가 폭력과 협박을 받았다. 국제 NGO활동가들과 공무원들 모두 하나의 정당에 가입해 있으며, 정치활동을 위해 쓸 수 있는 자원과 재원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부패와 차별이 은밀하게 끊임없이 진행된다는 게 몇몇 중립성을 지키려는 관료 및 인권옹호자들의 목소리다.

 

경제사회적 권리의 중요한 영역인 식량권과 함께 건강권, 안전한 식수에 대한 권리, 그리고 주거권은 네팔에서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는 인권문제들로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있다. 무구에서 안전한 식수가 부족해 한 달 동안에만 스무 명의 아이들이 질병으로 사망한 적도 있다고 이 지역 여성들은 말한다. 이 산악지역 마을의 유일한 식수공급원인 계곡의 강은 우기가 오면 황토물로 변해버리지만 다른 식수원을 개발하지 않아 여전히 식수로 사용된다. 영양이 부족한 상태에서 아이들이 질병에 걸릴 경우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예산배분에 무엇을 우선적으로 할 것인가, 국제적 지원이 어디에 우선적으로 가야될 지에 대한 결정 또한 정치적으로 이뤄지며 그 과정은 차별적이다.

 

네팔 남부 팔파(Palpa)지역 한 마을의 식수는 커다란 물항아리에 빗물을 저장해 사용하는 게 전부다. 이 마을 여성들은 물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도보로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사용하는데, 도로개발과 기후조건의 변화로 수원이 오염되고 수량이 감소하여 2009년 ‘물항아리 프로젝트’가 실시되었다. 새로운 수원을 개발하거나 기존 수원을 개선하는 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대신 가구별 두 개로 한정된 물항아리를 지원제작하여 빗물을 받게 했다. 턱없이 부족한 물 때문에 여성들은 여전히 오래된 우물에서 물을 받아야 한다. 남부 평원지역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지대는 가난한 달릿(Dalits, 낮은 카스트)이 모여사는 데 지리적으로 열악한 조건으로 이들을 차별하는 데 그럴듯한 변명이 된다. 같은 마을의 낮은 지역에 거주하는 높은 카스트 거주 지역은 이미 수로가 건설되어 물부족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물항아리

▲ ‘아름다운’ 물항아리들 (Palpa, 2012) ⓒ진주

 

그러나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경제, 사회권을 보장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보다도 토지개혁이다. 네팔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대부분 나라들은 토지개혁의 실패로 자원의 재분배를 통한 인권과 평등실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전근대사회에서 카스트와 같은 계층차별 문제나 여러 (선주민으로 볼 수 있는) 소수부족에 대한 차별이 구조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원의 재분배가 아니고서는 이를 개선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더구나 개발로 인한 자원수탈이 더해져 차별이 더 심화되는 실상이다. 남미의 불가리아가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정부를 수립해 나가려는 대부분의 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이룬데 반해 이들 국가에서 토지개혁정책이 실패한 사례는 재분재 정책의 어려움을 반영한다.

 

네팔도 카스트 차별과 다양한 부족민 간의 갈등의 골이 깊다. 몇몇 연구자나 활동가들은 마오주의자들의 활동이 카스트간의 관계를 완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증언한다. 마오주의자들의 활동으로 인해 강제적이지만 낮은 카스트들이 높은 카스트들의 집을 방문하거나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높은 카스트들은 이를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펌프
▲부서진 물펌프를 나무로 임시로 만들어 사용하는 여성들 (Saptari, 2011) ⓒ진주

네팔 남부 평원지역 삽타리(Saptari)에서 중농의 땅에서 경작하다 쫓겨난 달릿 공동체 사람들은 빈 터에 정착했다가 다시 쫓겨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삼림부에서 그 지역이 숲 보호구역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착한 지역은 숲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이었지만 숲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가 그들을 다시 쫓아낼 명목이 되었고 삼림부에서는 폭력까지 동원했다.
쫓겨날 위기에 놓인 이들을 위해 우리는 유엔의 주거권특별보고관 및 식량권특별보고관에게 진정서를 내는 한편 네팔 당국에도 서한을 보내 폭력을 중단시켰고 당분간 마을 사람들은 조용히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네팔에서 이러한 사례는 수 없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토지개혁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지 않는 시점에서 정부는 삼림지역보호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결국 토지는 재분배되지 않고 대지주들의 손에서 다른 이들에게 팔려나가고 있어 그 땅을 경작했던 소작농들이 쫓겨나고 있다. 삼림부 중심의 삼림지역보호 정책은 쫓겨난 이들이 이주하여 정착한 땅을 숲보호 지역으로 지정하여 다시 쫓아내고 있다.
불안정한 정치환경 속에 정부부처간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삼림지역을 확장하려는 삼림부와 토지개혁에 무능한 토지개혁위원회 및 관련 당국은 서로 무시하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어 가난한 이들은 오갈 데 없이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보다 많은 삼림을 조성하여 보호하려는 네팔정부의 정책은 환경보호단체나 기관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인간의 최소한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숲이 먼저일까 사람이 먼저일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논리가 현실을 읽어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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