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19-07-22   3037

[아시아생각] 2019 필리핀 선거, 두테르테 세력의 약진 및 권위주의의 강화

2019 필리핀 선거, 두테르테 세력의 약진 및 권위주의의 강화

정법모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2019년 5월 13일 필리핀에서는 총선이 있었다. 이 선거는 현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중간선거로서 주목을 받았다. 대통령을 제외한 상·하원 및 지자체장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의 압도적인 승리였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상원의원 당선자 총 12명이 6개의 정당 출신이었고 1명은 무소속 출신이었으며, 하원의원 선거에서도 대통령의 소속 정당인 PDP-LABAN의 당선자 수도 전체의원의 30%가 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특출나게 성향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여론이 향후 두테르테 대통령이 추진하는 마약과의 전쟁이나 헌법개헌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하는지, 그 배경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 전통적 정치 가문의 힘이 여전히 강력하고, 이념적 지향보다는 권력을 향한 줄서기와 이합집산이 정당의 특징이라는 점이 필리핀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출신 정당이나 개인의 정치적 지향보다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측근이나 그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사람이 얼마나 당선되었는지가 관전 포인트가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민주주의와 인권의 관점에서 두테르테 정책을 비판해 온 시민사회나 정치 세력에게는 매우 암울한 결과였다.

 

2019년 필리핀 선거 결과

 

필리핀에서는 1899년과 1907년에 각각 지방의원과 국회의원 선거가 처음 실시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현재의 선거는 1987년 헌법에 의해 기본적으로 3년마다 선거를 치르게 되어있다. 2019년의 중간선거에서는 12명의 상원의원, 59명의 비례대표의원, 243명의 지역구의원, 지사와 부지사 각 81명, 780명의 주의원, 시장과 부시장 각 145명, 시의원 1,628명, 군수 및 부군수 각 1,489명, 군의원 11,916명이 선발되었다. 이들은 임기는 6월 30일 시작하여 3년간 계속된다. 다만, 상원의원의 경우에는 이번에 선출된 12명은 향후 6년간 계속된다. 그리고 3년 후에는 또 다른 12명의 상원의원이 선출되어 6년을 수행하게끔 되어있다. 전체 상원의원 24명의 선출 시기를 달리하는 방식을 취하여 권력을 견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원의원은 3년마다 선출되며, 3번 이상 연임할 수 없다. 총 297명의 하원의원 중 지역구는 238명, 59명은 정당명부제를 통한 비례대표로 구성되어 있다. 6년 단임제인 대통령에 대한 선거는 없는 해이기 때문에, 대통령 중간선거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미국의 식민시기 동안에 형성된 선거제도는 오히려 지역 토호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정치 신인은 등극하기 어려워 필리핀에서 정치 가문을 손꼽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일반 시민 중 다수가, 마르코스(Marcos)-로무알데스(Romualdez), 아라네타(Araneta), 아키노(Aquino)-코후앙코(Cojuangco), 로하스(Roxas)-아라네타(Araneta), 오스메냐(Osmeña)-로페스(Lopez), 마카파갈(Macapagal)-아로요(Arroyo), 에스트라다 등의 가문이 어떤 지역에서 유력 가문인지 답할 정도로, 이 정치 가문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민중 혁명이 있었던 1987년 이후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지만, 기존 가문에 엔릴(Enrile), 비나이(Binay), 빌라(Villar), 두테르테(Duterte) 등의 가문이 새로 추가되었을 뿐이다. 현 대통령인 두테르테는 2016년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트라포(trapo)’(트라포(trapo)는 ‘전통적 정치인(traditional politician)’을 줄인 말이지만, 필리핀어로는 걸레라는 뜻이 되어 부패한 정치인을 조롱하는 말로 사용된다.) 라고 불리는 정치적 가문의 폐해에서 벗어나 깨끗한 정치를 표방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결과적으로 많은 득표를 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그의 가문 역시 중앙 정치에 등단하여 세력화하려는 의지를 명확히 드러냈다. 필리핀에서 개혁적이거나 현 정권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력으로 상원의원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실제 선거전 상원의원 24명 중 소위 정치 가문 출신이 아닌 사람은 5명에 불과했다(Cbcplaiko 2019).

 

인물 선거, 새롭게 등장한 인물들

상원의원 선거 당선자 총 12명을 배출한 정당은, NP(Nationalist Party), IND, PDP-LBN(Philippine Democratic Party-Lakas ng Bayan), LDP(Laban ng Demokratikong Pilipno; Struggle of Democratic Filipinos), NPC(Nationalist People’s Coalition), LAKAS(Lakas-Christian Muslim Democrats), UNA(United Nationalist Alliance) 등 6개이었으며, 한 명은 무소속이었다. 언론 및 정치권에서는 두테르테 측근이 12석 중 9석을 차지한 압도적인 승리라고 평가했다. 위에서 열거한 많은 정당 이름과 관계없이 선거 직전에 두테르테 정책에 반대하는 그룹과 대통령 지지를 공공연히 표현한 그룹 간의 대결이 된 셈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현 대통령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명한 ‘정의의 8인(Otso Diretso)’ 중에는 2016년 선거에서 경쟁자였던 마로하스(Mar Roxas)도 포함되어 있으며 전직 대통령 아키노 전 대통령의 사촌, 밤 아키노(Bam Aquino)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 중에 당선자는 한 명도 없었던 반면, 두테르테 지지를 표명한 그룹이나 측근들은 대거 당선되었다. 또한 기존에 현 정책을 비판하던 상원의원 중에 다수는 입후보 자체를 취소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 새롭게 상원에 입성한 크리스토퍼 봉 고(Christopher Bong Go), 로날드 델라 로사(Ronald Dela Rosa) 등은 두테르테 대통령을 등에 입고 정치 일선에 등장했다. 델라로사는 2016년 7월 1일부터 2018년 4월 19일까지 경찰총장을, 그리고 2018년 10월까지는 법무부 교정국장을 역임했다. 그는 두테르테 임기 시작과 함께 경찰총장직을 맡으면서 마약과의 전쟁을 실질적으로 수행했으며 자신이 상원의원이 되면 사형제를 부활하기를 원한다고 공공연히 천명했던 인물이다. 봉 고(Bong Go) 의원은 두테르테가 다바오 시장이었던 1998년부터 개인 자문관이었으며, 2016년부터 2018년까지는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필리핀의 오랜 독재자 마르코스의 딸인 이미 마르코스(Imee Marcos)도 두테르테의 지원 아래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두테르테는 기존 정치 가문에 대한 초기 입장과는 달리 기존 정치 가문인 마르코스나 아로요 가문과 손을 잡고 공조를 취해왔다.

2016년부터 상원을 맡고 있었던 기존 의원 중에는 6명 정도가 두테르테 대통령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 중 드 리마(Lelia de Lima) 의원은 2017년 이후 비리 혐의로 수감되었고, 가장 강하게 비판하던 안토니오 트릴리아네스(Antonio Trillanes) 의원은 재선을 포기했다. 대통령에 도전적이던 의원들은 불이익을 당하거나 정치적 보복 성격이 강한 검찰 조사를 겪어야 했다. 결국 이번 선거까지 종합하면 24명으로 구성된 상원의원 중 현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낼 의원은 4명에 불과할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헌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상원의원에 7명은 필요한 상황인데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헌법 개정이 쉬워지게 된다. 이미 하원 의원 절대다수는 두테르테 진영으로 줄을 갈아탔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의 의미

이렇게 본다면 이번 선거 결과는 야권의 참패이며 두테르테 측근의 약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선거 전부터 두테르테는 이번 선거를 자신에 대한 국민투표라고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반면 야권에서는 ‘중간선거 참극’이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탄생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전망되는 두테르테 정부의 후반기 정국은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 예상해 볼 수 있다. 물론 이번 선거 결과를 두테르테 정책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라고 볼 수는 없지만, 80%가 넘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과 맞물려 현 정부가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에 속도를 낼 명분으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하다.

첫 번째 건은 역시 마약과의 전쟁이다. 다바오 시장 때부터 오랫동안 두테르테를 보좌하면서 경찰청장을 역임했던 델라로사가 상원의원에 당선된 점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현재까지 5,000명, 인권단체의 추산으로는 12,000명이 희생된 이 전쟁이 여러 비난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두 번째 현 정부는 형사 처벌 나이 제한을 15세에서 더욱 낮추고 사형제를 부활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또한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애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헌법 개정을 전제로 하고 있어 쉽지는 않지만, 상원까지 두테르테 진영에 장악된 것을 고려하면 헌법 개정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미 사형제 부활과 헌법 개정안은 하원의원에서는 의결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재편된 상원의원에서는 이와 같은 안이 결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헌법이 개정된다면 대통령 연임 제한도 폐지되어, 두테르테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는 2022년 이후에도 계속 재임할 가능성도 생긴다.

세 번째 두테르테 또한 새로운 정치 가문으로 등장할 여건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서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인 사라(Sara)는 58만 440표 대 4,270표라는 압도적 득표 차이로 다바오 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또 다른 딸인 세바츠찬(Sebastian)은 다바오 부시장에 당선되었으며, 큰아들인 파올로(Paolo)는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두테르테 정부의 비인권적 상황을 우려하는 시민단체에는 매우 절망적인 이 선거 결과는 왜 일어난 것인가? 선거 결과에 대해서 일부 시민사회는 전자 개표와 관련한 부정 의혹이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과 함께 고려할 때, 현재의 필리핀 상황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인권 상황과 관련하여 밖에서 우려하는 것과 필리핀 국민의 정치적 선택은 왜 이렇게 다른 것인가? 80%에 달하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지는 무엇을 의미하며, 아시아 역사에서 선두 그룹이었던 민주주의 제도나 시민사회는 어떤 상황에 부닥친 것인가?

일부에서는 권위주의로의 회귀를, 과거 자유주의자들의 정책 실패와 연결해 보고 있기도 하다.(Aljazeera 22 may 2019. “Philippines: President Duterte’s allies dominate Senate race.”) 실제로, 지난 대선과 지난 중간선거는 필리핀에서 전통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대표하던 인물이나 집단이 대중적인 지지를 크게 받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그의 정책 전반에 국민들이 찬성을 하고 있다는 의미는 않을 것이다. 필리핀 라살대학의 헤이다리안(Richard Javad Heydarian) 교수는 이번 선거를 통해 두테르테 대통령이 전제정치를 계속해서 추진할 수 있는 교두보가 생겼다는 점을 우려했다.(The New York Times. “Philippines Election: Duterte Allies Sweep Senate, Unofficial Results Indicate.” May 14, 2019.)

하지만 그는 상원의원에서의 승리가 두테르테를 모두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으며 전략적 동맹을 맺고 있을 뿐이라고 해석했다. 어쨌든 엘리트 민주주의와 자유 개혁주의에 대한 기대감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1987년 이후의 아키노 가문을 비롯한 자유 개혁 세력이 경제 토대나 소유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리핀에 닥친 글로벌한 신자유주의 흐름과 맞물려 빈부격차는 급속도로 커졌으며 서민들은 점점 직업 및 주거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최근 5년 이상, 국가 경제는 연 6%가 넘는 성장을 하고 있지만, 서민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국민들이 새로운 지도자에게 거는 기대를 높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국가나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체감은 필리핀 국민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것일 수 있다. 기존의 질서를 흔들어야 서민들 삶에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점을 국민이 잘 알고 있으나, 그 요동이 긍정적으로 작동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많은 의문이 된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내세웠던 의지가 여러 가지 자기모순에 빠지고 있는 상황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 및 측근의 정치세력화나 범죄나 부패 문제에서 불공정한 적용이 계속 문제 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이상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필리핀인은 생각보다는 적을 것이다. 하지만 두테르테에 대한 대안이 분명해지지 않으면 현 체제에 대한 지지가 오래 지속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함께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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