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17-04-29   907

[아시아생각]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된 시리아 비극, 해법은?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7 아시아생각] ① 시리아 토마호크 공습, 짜고 친 힘자랑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된 시리아 비극, 해법은?

[아시아 생각]모든 적대행위, 외세 개입 중단에서 시작해야

최재훈 경계를넘어 활동가

 

지난번 기고(☞시리아 토마호크 공습, 짜고 친 무력과시)에서 시리아 정부군 공군기지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이 현재 바닥을 기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낮은 국내 지지율과 대선과정에서 불거진 러시아와의 공모 스캔들을 상쇄하려는 일회성 힘자랑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편 바가 있다. 그 며칠 전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 대사가 했다는 말처럼 “마을에 새로운 보안관이 등장했다”는 걸 과시하는 차원일 뿐, 신경가스 공격으로 죽어간 “아름다운 아기들”의 고통에 대한 진심 어린 반응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원고를 보내놓고는 마음 한구석이 영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음을 뒤늦게 고백해야겠다. 오늘날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가슴 아파하는 많은 사람들, 특히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시리아 국민이나 멀리 타국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시리아 난민들이 만약에라도 이 글을 읽는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들의 눈에는 행여 지구 저편에 한가로이 앉아 트럼프가 어떻고 미국의 의도가 어떻고 하면서 관전평이나 늘어놓는 것처럼 비치지는 않았을까? 그렇지 않아도 국제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버림받아왔다는 배신감에 힘들어하는 그들의 상처를 위로하기는커녕 소금을 뿌린 건 또 아닐까? “누구도 자기 나라에 공습이 가해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6년에 걸친 학살을 지켜본 뒤, 아사드 정권이 자국민을 살해하는 데 이용했던 비행장 하나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오늘 아주 행복합니다.”라던 어느 시리아 출신 작가의 말을 접하고 난 뒤에는 특히나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도 한 가지 흔들리지 않은 생각은, 미국이 아무리 미사일을 쏟아 붓고 기존에 파병된 500명의 미군 병력에 더해 450여 명의 해병대와 특수부대원들을 추가로 시리아에 들여보낸다 할지라도 그런 군사적인 방식으로는 오늘날 시리아의 비극을 절대 끝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나 반군, 러시아, 이란, 터키, 이라크,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레이트 모두에게 다 해당하는 이야기이며, 시리아 내전, 아니 이미 국제전으로 비화된 지 오래인 시리아 전쟁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오늘날의 형국이 그걸 뒷받침해준다. 잔뜩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가위로 무지막지하게 잘라버리면 허리가 싹둑 잘려버린 실 전체를 못 쓰게 되는 것처럼, 꼬인 갈등과 전쟁의 실타래는 차분히 둘러앉아 말 그대로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가 듯해야 하는 법인 것이다.

 

올해로 햇수로는 6년째에 접어든 시리아 전쟁은, 간단히 표현하자면 단순한 진실에서 출발해 복잡한 현실로 질적 변화를 일으킨 사례라 하겠다. 여기서 단순하다는 의미는 1963년과 1966년, 1970년, 이렇게 세 차례의 쿠데타를 거쳐 장기집권을 시작한 알아사드 가문이 오랜 기간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 기본적 인권을 억압한 독재체제를 구축해왔으며, 2011년 3월부터 시작된 반정부 봉기는 그에 맞선 대중적 민중항쟁이라는 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명한 사실이라는 걸 뜻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초기의 시리아 항쟁은 무장투쟁보다는 평화적인 대규모 행진과 시위, 농성, 문화적인 방식의 저항이 오히려 주를 이뤘고, 그래서 더더욱 전 국민적인 공감과 참여를 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을 덧붙일 수 있겠다. 

 

▲ 지난 4월 15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 인근에서 정부 지지자들을 겨냥한 차량 폭탄테러로 60명이 넘는 어린이 등 민간인 130명이 희생됐다.  시리아의 비극은 테러에 테러로 보복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AP=연합 

 

IS를 탄생시킨 아사드 정권의 파멸적 전략

 

반면 그에 맞선 알아사드 정권의 대응은 크게 네 가지 차원의 전략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평화적인 시위대를 잔인하게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무장투쟁을 유도해내는 항쟁의 군사화, 두 번째는 2011년과 2012년 사이 수백 명에 달하는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을 의도적으로 감옥에서 풀어줌으로써 그들이 반군과 뒤섞이게 만드는 항쟁의 이슬람주의화, 세 번째는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수니파 주민들과 15%의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이 서로서로 맞서게 하는 종파주의화, 마지막으로는 같은 시아파인 이란과 레바논의 헤즈볼라 민병대를 끌어들임으로써 지역에서 그들과 경쟁적 위치에 있는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자동적으로 끼어들게끔 만들고, 같은 맥락에서 러시아까지 끌어들여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군사개입을 이끌어내는 국제분쟁화가 그것이었다. 이런 영리하고 교활하면서도 국가적으로는 파멸적인 전략의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듯이 반정부 시민군인 자유시리아군(FSA)의 점진적인 세력 약화,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의 상대적인 영향력 확장, 한때 종파를 뛰어넘어 반독재 항쟁의 편에 섰던 알라위파 일부 주민들의 절대적인 친정부 입장으로의 선회, 정부군의 전쟁 주도권 탈환, 가장 중요하게는 전쟁의 장기화와 주민들의 고통 극대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리아 민중들이 평화적인 시위에서 무장투쟁으로 저항의 방식을 바꾼 것이 잘못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시위에 나선 시민들이 정부군과 ‘샤비하’라 일컬어지는 폭력집단에 의해 무자비하게 살해당하고 끌려가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무장은 불가피한 측면이 훨씬 더 강했고, 정부군에서 탈영한 군인들이 ‘자유시리아군(FSA)’에 대거 합류한 이유 또한 정부군의 유혈 진압 명령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들로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도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광범위한 대중적 참여에 기초한 비폭력적 저항에서 전투가 가능한 청년층 중심의 무장투쟁으로 항쟁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순간, 항쟁의 동력은 필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다.

게다가 정부군보다 무기와 훈련이 턱없이 부족한 시민군이 시간이 지날수록 군사적으로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불 보듯 예견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미국과 그 동맹국인 터키와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국가들은 시민군에게 다량의 무기와 자금을 제공하는 전략을 취했지만, 그렇게 제공된 무기와 자금은 고스란히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에게 대거 넘어가 오늘날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즉 이슬람국가(IS)를 탄생시킨 자양분이 됐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아사드 정권의 축출에서는 시민군과 뜻을 같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칼리프를 정점으로 한 이슬람 신정체제 건설을 더 큰 목적으로 하는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은, 한편으로는 정부군에 맞서 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군과 지역의 활동가들을 향해 본격적으로 총부리를 겨누기 시작했다. 자유시리아군과 이슬람주의자들이 힘을 합쳐 2013년 3월 4일 주(州)의 수도로서는 처음으로 정부군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한 뒤 한때 “시리아 혁명의 모델”로까지 칭송받을 정도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꽃피우다가, 어느 순간 등을 돌린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시민군과 활동가들이 철저히 탄압당하고 쫓겨났던 락까 시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한 때 시리아의 거리 곳곳에 나부끼던 자유와 민주주의의 깃발이 점차 칼리프의 검은 깃발로 대체되는 과정은 부패하고 폭압적인 정권과 민주화를 바라는 시민들 간의 대결이라는 시리아 항쟁의 단순했던 본질이 종교와 종파, 민족, 지역 패권을 배경과 목적으로 한 다수의 행위자들 간의 뒤엉킨 복마전으로 변질되는 과정과 시공간적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오늘 2017년 봄을 기준으로 그 구체적인 행위자들과 각각의 대립 구도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시리아 아랍군’이라 불리는 정부군은 러시아와 이란, 레바논의 헤즈볼라 민병대, 이라크에서 건너온 시아파 민병대로부터 군사적인 지원을 받는다. 반면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은 ‘시리아 민주군’이라는 이른바 온건 성향의 반군을 지원하는데, 그 주력은 약 2만 5000명에 달하는 쿠르드족 민병대 ‘시리아 인민방위대(YPG)’와 ‘여성방위대(YPJ)’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아사드 정권의 축출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들이 원하는 건 ‘로자바’ 불리는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 지역의 완전한 자치이고, 그를 위해 2014년 9월부터 자신들의 존립 자체를 위협해온 이슬람국가를 몰아내는 게 군사적 목표다. 

 

한편, 시리아 쿠르드족과 국경을 마주한 터키는 자신들이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쿠르드 노동자당(PKK)’과 민족적 정체성을 같이 하는 그들을 적으로 여긴다. 따라서 터키 정부는 미국과 프랑스가 시리아 민주군을 지원하는 데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해왔고, 그로 인해 작년 여름부터는 국경의 안정화를 구실로 ‘유프라테스의 방패’라는 작전명 하에 아예 독자적인 군사 개입을 감행한 바 있으며, 지역의 대표적인 친미국가이면서도 이슬람국가 격퇴 작전에서는 러시아 정부와 더 끈끈한 공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터키는 시리아 내의 마지막 남은 반군 거점이라 일컬어지는 북서부 이들리브 주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아흐라르 알 샴(시리아 자유인 운동)’이라는 이슬람주의 반군을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헌데 이들리브 주에는 아흐라르 알 샴과 경쟁 관계에 있는 알카에다 계열의 ‘자밧 파타 알 샴(시리아 정복 전선)’이라는 또 다른 이슬람주의 반군이 있다. 이들은 올 초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평화협상을 거부하면서 아흐라르 알 샴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왔고, 최근에는 비슷한 성향의 반군 조직들을 규합해 ‘타흐리르 알 샴(시리아 해방)’이란 연합 조직을 결성했다. 여기에는 ‘누르 알 딘 알 진키’라는 이슬람주의 반군들도 포함돼 있는데, 이들은 2015년까지도 온건파 반군으로 분류돼 미국의 자금과 무기 지원을 받아 왔다. 이밖에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던 ‘자이쉬 알 이슬람(이슬람군대)’이라는 이슬람주의 반군도 있다. 

 

여기에다 모두가 잘 아는 이슬람국가(IS)까지 뒤엉켜 다양하고 복잡한 세력들이 오늘날 시리아에서 서로 물고 물리며 싸운다. 정부군과 반군이 싸우고, 쿠르드족과 이슬람국가가 싸우며, 다시 이슬람국가와 반군이 싸우고, 반군과 반군끼리 갈라져 싸운다. 그렇다. 앞서 시리아의 비극을 군사적인 방식으로는 절대 끝낼 수 없다고 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저 멀리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오늘의 시리아는 선과 악, 적과 아를 구분하기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4일 시리아 정부군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독가스 공격에 쌍둥이 아기들을 모두 잃은 아버지가 비통해 하고 있다.  ⓒAP=연합

 

시리아의 미래, 시리아 국민이 결정하도록 해야

 

따라서 결국 시리아 전쟁의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해법은 군사적 방식의 정반대 편에 있다. 우선 그 출발점은 모든 적대 행위의 중단이다. 그를 위해서는 미국과 러시아, 터키, 이란 같은 외세 열강들이 각자가 미는 세력들에 대한 군사적 지원과 개입을 일절 중단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더 많은 개입은 더 많은 죽음과 고통을 낳을 뿐이다. 그다음으로 시리아의 미래는 시리아 국민이 결정하게끔 놔두어야 한다. 물론 국민을 상대로 갖은 악행을 저질러온 아사드 정부의 존재를 인정할 것인지에서부터 이슬람국가의 퇴치에 이르기까지 넘어야할 산들은 첩첩산중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 산을 곧장 넘어갈지 에둘러 갈 지를 결정하는 건 시리아 국민들의 몫이어야 한다.  

 

얼마 전 이들리브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조직한 시위를 통해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인 자이쉬 알 이슬람의 철수를 이뤄낸 사례에서 보듯이, 지금도 시리아에는 항쟁 초기부터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와 새로운 사회질서 구축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활동가들과 지역사회의 역량이 상당부분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600만 명에 달하는 해외의 난민 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리아 전쟁의 해결책과 그 이후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경험과 활동력을 축적해온 단체와 개인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외부에서 쥐어준 무기를 들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전쟁이 계속되는 한 그들이 설 자리는 없다. 그러나 일체의 군사적 적대 행위가 중단되고 그들의 목소리가 총소리를 대신하는 순간, 바로 그때가 새로운 시리아의 첫 날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더디고 힘들어도 꼬인 실타래는 하나하나 풀어가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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