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미분류 2002-10-23   686

[지구촌 시민사회와 이슈 22호]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안녕하세요?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죠? 오늘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양자협정의 흐름 속에서 최근 협정타결을 앞두고 있는 한-칠레 무역협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다자간 투자협정의 무산과 자유무역협정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은 WTO체제에서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EU(European Unions)처럼 자유무역협정의 모든 회원국이 자국의 고유한 관세 및 수출입제도를 완전히 철폐하고 역내의 단일관세 및 수출입제도를 공동으로 유지해 가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NAFTA(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자유무역협정의 각 회원국이 역내의 단일관세 및 수출입제도를 공동으로 유지하지 않고 자국의 고유 관세 및 수출입제도를 계속 유지하면서 무역장벽을 완화하거나 철폐해 가는 방식입니다. 자유무역협정은 기본적으로 WTO의 최혜국대우 및 다자주의원칙을 벗어난 양자주의 및 지역주의적인 특혜무역체제입니다. WTO체제의 성립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양자간, 지역간 무역협정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은 다자간 투자협정(Multilateral Agreement on Investment: MAI)의 무산이었습니다.

WTO내의 서비스협정(GATs)은 개별국가들이 허용하는 부문에서만 ‘자유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적재산권협정(TRIPs)은 제3세계 국가들이 국내규제와 체제를 그것에 조응하도록 바꾸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유예해주고 있다는 점, 또한 투자조치협정(TRIMs)은 비록 해외투자자들을 차별하는 ‘무역관련 투자조치’들을 금지시키고 있지만, 그것은 상품교역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들-수량제한, 국내생산품사용의무부과 등-로만 한정되었습니다. 즉, 자유로운 ‘투자설립의 권리(rights to establish investments)’까지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국적 자본은 이러한 제한들을 없애고 보다 ‘자유’로운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려고 하였는데, 이는 1995년 미국의 주도하에 개발도상국은 배제하고 OECD 내부에서 다자간 투자협정이 논의되는 배경이었습니다. 의무는 없고 오직 투자자의 권리만을 보장하는 다자간 투자협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투자자 및 투자의 개념이 매우 넓게 정의되고 있습니다. 투자자는 개인, 법인, 민간기업, 공기업 등 모든 주체들이 포함되고, 주식, 채권, 지적 재산권 등 모든 형태의 자산이 투자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 기존의 투자협정과는 달리 투자자는 투자설립 전(前) 단계(pre-establishment)부터 보호받게 됩니다(이것은 정부가 해외직접투자에 대해 그것이 자국의 국민경제에 필요한지, 민중적 이해에 부합한지를 심사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다자간 투자협정은 내국민대우와 최혜국 대우를 보장하여 해외투자자들과 국내투자자들 사이에 어떠한 차별도 금지합니다. 따라서 정부는 자국의 필요와 이해를 고려해서 투자자들에게 제한을 가하는 정책을 할 수 없습니다.

▲ MAI는 해외투자자의 기업활동에 대해 어떠한 조건을 붙일 수 없는데, 즉 일정 비율 이상의 내국인의 고용이나 국내 부품의 사용 혹은 이윤의 재투자 등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 해외투자자를 위한 정치적 보호수단으로서 ‘점진적 철폐'(rollback) 및 ‘현상동결'(standstill)을 요구하여 개별국가가 한번 자유화·개방화의 과정으로 진입하면 결코 되돌아 올 수 없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직접 제소할 수 있는 반면에 초국적 기업의 노동착취, 환경파괴, 투기활동 등에 대해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민중들의 제소권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다자간 무역협정은 1) 투자자의 권리를 정부·지역사회·시민·노동자 그리고 환경의 권리보다 우위에 놓고 있으며, 2) 해외투자자에 대한 민중들의 민주적 통제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으며, 3) 해외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직접 제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주권을 침해하는 ‘초국적 자본의 권리 헌장’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자간 무역협정은 1998년 4월에 조인될 예정이었지만, 그 내용이 공개되면서 지구촌 시민사회의 격렬한 저항이 전개되었고, 1998년 10월 프랑스가 협상 참여를 거부함으로써 일단 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WTO 뉴라운드출범을 위한 회의도 지구촌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국제연대 속에서 저지되자 선진국들은 다자간 무역협정의 내용을 이어받은 지역간·양자간 자유무역 및 투자협정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한국-칠레의 자유무역협정의 현황

우리 나라는 1998년 7월 말 현재 62개국과 양자간 투자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이중 49개의 협정이 발효 중에 있습니다(그러나 자유무역협정은 아직 체결되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시애틀 뉴라운드의 출범 실패 이후 “새해에는 WTO, APEC 같은 다자체제에만 매달리지 않고 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 등 쌍무협정을 통한 교역자유화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투자협정과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정부는 1998년에 미국과 일본에 대해 양자간 투자협정의 체결을 제안하였고, 자유무역협정 또한 활발하게 추진되어 우선 한-칠레, 한-멕시코, 한-호주,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 등이 논의되고 있고,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투자자유협정 이외에 자유무역협정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1999년 9월 뉴질랜드 정상회의에서 협상개시가 선언된 뒤 재작년 12월까지 4차례 공식협상이 진행됐으나 농산물 예외범위 문제와 작년 12월 칠레선거 등의 이유 때문에 그동안 소강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올해 들어 양국간에 새로운 양허안을 제시하면서 협상이 다시 본격화 되었는데, 현재 제네바에서 열리는 양국 간 6차 협상에서 타결될 전망입니다. 지금까지 주요 합의내용을 보면, ▲ 칠레측이 한국측 수입품목인 사과와 배를 관세자유화 예외품목으로 인정하되 우리나라도 칠레측 수입품목인 냉장고와 세탁기를 관세자유화 품목에서 제외하고, ▲ 한국의 자동차에 대해서는 일부 농산물에 대한 칠레측의 추가요구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발효 즉시 무관세화하며, ▲ 칠레산 포도에 대해서는 한국이 포도를 생산하지 않는 계절(11-4월)에만 관세를 낮추는 계절관세를 부과하되 매년 점진적으로 관세를 낮춰 10년 안에 계절관세를 없애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복숭아 등 일부 과실류에 대해 10년 안에 관세를 철폐하고 쇠고기, 닭고기 등에 대해 매년 일정 물량을 저관세로 수입해 달라는 칠레측의 요청에 대해서는 아직 막판 절충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투자협정/WTO반대 국민행동에 따르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은 우리나라 농업부문에 큰 타격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4분의 1 내지 20분의 1 정도 가격인 칠레 과실들이 무관세로 수입될 경우 우리 농업의 직접 피해액만 2조 125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였습니다(농촌경제연구원이나 농협조사부가 추정한 피해액만도 2조원 가량이었습니다). 특히 칠레 농업은 돌, 유니프루티 등 미국계 다국적 청과기업이 전체 수출물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의 내용이 향후 미국, 호주 등과의 투자협정 또는 무역협정에 영향을 미칠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식량안보가 세계화 논리에 따른 통상정책으로 위협받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추상적인 예상보다도 북미자유무역협정 이후 남미국가들의 모습 속에서 자유무역협정의 위험성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FTA의 교훈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다자간 무역협정의 무산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NAFTA의 교훈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NAFTA는 현재 중/남아메리카와 카리브해까지 확대하기 위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형성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중입니다). NAFTA는 부속협정의 형태로 ‘환경보호위원회’와 ‘노동위원회’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어떠한 기능과 역할도 수행하지 못한 채 노동탄압과 환경파괴가 자행되어 왔습니다.

NAFTA 체결 후 미국에서는 거의 40만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으며, 남아있는 노동자들은 예전에 비해 약 77%의 임금을 받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NAFTA 체결 이후 100만명이 추가로 극빈층이 되었습니다. 또한 지난 5년 간 미국에서의 공장 폐쇄 400건 중 90%가 노조와의 협상을 도중에 결렬시키고 불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나는 등 노동권이 전혀 보호받지 못하였습니다. 환경파괴는 어떻습니까? 미국-멕시코 국경 지역에 집중된 초국적 기업들의 공장과 사업장들로 인해, 이 지역은 막대한 환경오염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오염과 화학물질의 방출은 이 지역 주민들에 대한 간염과 장애아 출산을 증가시켰습니다. 그리고 NAFTA가 체결된 후 15개 미국 벌목 회사들이 멕시코에 사업을 시작하여 천연자원이 가장 풍부한 지역 중 하나인 게레로에서는 지난 8년 간 40%의 숲이 없어졌습니다. 또한 NAFTA에 의한 멕시코의 빈곤화와 대량실업은 미국으로의 (불법) 이민을 급증시켜 많은 인권침해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NAFTA의 조항에는 다자간 무역협정에 포함되어 있던 투자자의 국가 상대 고소 조항이 있습니다. 이를 이용하여 실제로 기업이 국가를 고소하여 막대한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지난 1996년, 멕시코의 산루이스포토스 주가 미국계 폐기물 처리 회사인 메탈클라드사 시설이 수자원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 후 쓰레기 폐기 시설의 재개를 승인하지 않자, 메탈클라드사는 NAFTA 조약 11장을 위반했다고 멕시코 정부를 고소하였고, NAFTA 심사부는 멕시코 정부에게 1,670만 달러를 보상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또한 지난 1997년 미국의 화학약품회사인 에틸사(Ethyl Corporation)는 캐나다 정부가 유해한 독소를 지닌 가솔린 첨가제 MMT의 수입과 운송을 금지하자 이 정부를 상대로 2억 5,100만달러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MMT는 옥탄(Octane)가를 높이고, 자동차 엔진의 녹킹(Knocking)을 줄이기 위해 가솔린에 첨가되는 망간성분의 화학물질로서 미국 환경보호기금(Environmental Defense Fund : EDF)은 MMT가 유독 캐나다에서만 사용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으며 미국 환경청(EPA)는 가솔린에 MMT를 혼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MMT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솔린첨가제 MMT를 금지한 캐나다 정부에 대해 NAFTA 조약 11장을 위반했다고 소송을 걸었고, 캐나다 정부는 MMT를 금지하는 환경법안을 폐지하고 소송 취하를 위해 에틸사에게 1,300만 달러를 지불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유무역협정은 초국적 자본과 기업에게 무한한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무소불위한 힘을 주게될 것입니다. 현재 NAFTA에는 ‘환경보호위원회’와 ‘노동위원회’가, WTO 내에도 환경단체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무역환경위원회’가 설치되었지만 유명무실화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조항들을 자유무역/투자협정과 WTO에 포함시켜야하는 노력에도 주목해야합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갖는 위험성, 즉 현재 세계화를 강화하고 공고히 하고있는 WTO 및 투자협정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있는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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