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미분류 2002-11-20   835

[지구촌 시민사회와 이슈 26호] 도하개발의제(DDA : Doha Development Agenda)와 한국 농업

안녕하세요?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지난 주 13일에는 여의도에 8만여 농민이 모여 ‘우리쌀 지키기 전국농민대회’를 열었습니다. WTO와 한-칠레 무역협정 체결 등 가시화되고 있는 한국농업의 위기를 체감한 날이었습니다. 이번 호에는 이렇듯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는 WTO 도하개발의제의 농업협정 협상이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농업분야의 합의내용

도하개발의제 농업분야의 선언문에는 농업협정 제 20조에 따라 2000년부터 시작되어 진행중인 농업협상을 바탕으로 시장지향적인 무역체제 수립을 위해 시장접근의 실질적 개선, 수출보조의 점진적 폐지를 목표로 하는 감축, 무역왜곡적인 국내보조의 실질적 감축을 목표로 하는 협상을 추진하되, 이것이 진행중인 농업협상의 결과를 예단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명시하였습니다. 또한 농업협상 과정에서 식량안보, 농촌개발, 환경보호 등 비교역적 관심사항(Non-Trade Concerns : NTC)을 유념하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우대조치(Special and Differential Treatment)를 모든 협상에 고려해야함을 명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도하선언에 따라 19개의 주요협상 의제를 채택하였는데, 시장접근물량 관리방법, 관세, 감축대상국내보조, 수출보조, 수출신용, 수출제한, 국영무역, 식량안보, 식품안전, 농촌개발, 지리적 표시, 허용보조(Green Box), 생산제한직접지불(Blue Box), 특별긴급관세(SSG), 특혜적 무역협정, 환경, 소비자 관심사항과 표시제도(Labeling), 식량원조, 분야별 자유화가 그것입니다. 이와 같은 농업협상의 내용은 시장접근, 국내보조 분야의 “실질적(substantial)” 개선(감축) 및 수출보조 분야의 “단계적 폐지를 목표로 하는(with a view to phasing out) 모든 형태의 수출보조 감축”이라는 표현에서 보이듯이 논쟁의 소지를 그대로 남겨 두어 앞으로 난항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농업분야 협상진행과정

선언문에는 2003년 3월 31일까지 관세, 보조금 등의 감축방식, 감축 폭 및 이행기간 등에 대한 세부원칙(Modality)을 결정하고, 제 5차 WTO 각료회의 전까지 이 세부원칙에 따른 각국별 이행계획서 제출(2003년 9월), 2004년 12월 31일까지 농업협상을 타결한다는 시한을 설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 5차 각료회의부터 2004년말까지는 이해관계국과의 협상을 통한 이행계획서 검증단계에서 우리나라의 개도국지위 유지 여부와 2004년으로 예정된 쌀 관세화유예 여부 재협상은 시기적으로 이행계획서 검증을 위한 협상과 동시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정에 따라 현재 협상감독기구인 무역협상위원회(TNC: Trade Negotiations Committee)가 설치되어 농업, 서비스, 비농산물, 규범, 환경, 지적재산권, 분쟁해결 등 7개 분야에 대한 협상그룹을 만들어 분야별로 작업일정 수립하여 내년 3∼4월부터 분야별로 구체적 논의가 개시될 예정입니다.

현재 도하개발의제협상의 논의동향을 살펴보면, 농업의 경우 미국과, 케언즈그룹 등 농산물 수출국은 수출보조의 폐지, 국내보조의 대폭 감축, 시장접근(관세·비관세장벽)의 대폭 개선을 주장하면서 추진하는 반면에 유럽, 일본, 한국 등 농산물 수입국은 점진적 자유화를 추진하는 한편 식량안보, 농촌개발, 환경보호 등 비교역적 관심(Non-Trade Concerns)의 반영을 주장하여 이해관계에 따른 입장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특별긴급관세제도(SSG) 역시 수출국들은 사용국가가 적고 운용상 결함이 많다고 하면서 철폐를 요구하지만, 수입국들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며, 국내보조분야에서 허용보조(Green Box)의 경우, 수출국들은 허용보조의 요건이 느슨하여 허용보조의 남용되고 있다며 요건을 엄격히 하면서 허용보조 전체 혹은 직접지불에 대해 상한 설정을 주장하지만, 수입국들은 요건이 엄격하면 비교역적 기능을 추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범위를 확대하고 요건을 신축적으로 완화해야한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 쌀수매같은 감축보조금의 경우 현재 보조금의 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어느 한 품목에 대한 보조를 줄일 경우 다른 품목에 대한 보조를 늘릴 여지가 있습니다. 이를 막고자 수출국들은 품목별로 나누어 각각 감축하고 감축폭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입국들은 농업이 식량공급 기능외에 환경보전, 농촌의 활력 유지, 전통문화 보전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현행 협정에는 이러한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지만, 수출국들은 다원적 기능이 농업에 대한 지원 감축과 무역자유화를 방해하는 논리로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현행 협정으로 다원적 기능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한국 농업의 먹구름

현재 쌀협상의 문제는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의 결과로 우리나라의 쌀은 2004년까지 수입제한(관세화유예)을 유지하고, 2005년 이후 개방여부는 이해관계국(미국 등)과 협상을 통해 결정하도록 되었습니다. 따라서 도하개발의제와는 별도의 협상과제이지만, 도하개발의제의 농업협상이 일정대로 진행될 경우 이행계획서 검증에 관한 양자협상과 쌀 협상이 2004년 중복되어 있어 전체가 하나의 패키지로 묶여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품목간의 조정을 통해 쌀협상의 신축성은 확보될 것이나 개방의 폭은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한국과 동일하게 최소시장접근물량에 의한 시장개방방식을 채택하였던 일본이 1999년 4월 이러한 방식을 포기하고 관세에 의한 시장개방을 도입하여 우리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도하개발의제 세부원칙협상 단계에서는 수입국간 공조체제를 활용하여 보조금 및 관세감축 원칙에 신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식량안보 등 농업의 비교역적 관심사항을 협상과정에 구체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고, 쌀 재협상에 대비해서는 쌀산업의 구조와 경쟁력, 농가소득과 식량안보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한 입장과 협상전략을 수립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발표한 쌀산업 종합대책안을 보면 그 의지와 의도는 이와는 상반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종합대책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시장 기능에 의한 생산 감축 유도를 통해 벼 재배면적을 현재 108만 3천 ha에서 2005년까지 95만 3천 ha로 약 12%감축, ▲ 2005년부터 추곡 수매제 보완을 위해 약 800만석 가량의 공공비축제(시가매입, 시가방출) 도입, ▲ 고품질 쌀 재배면적을 2002년 50%에서 2005년 80%로 확대, ▲ WTO 쌀재협상에 대비해서 국내외 가격차를 줄이고 소득감소에 대해 일정 부분 소득보전, ▲ 논농업 직불제 보조금 단가를 농업진흥지역에만 인상하고, 비진흥지역의 경우 보조금 단가를 동결하여 비진흥지역의 벼 재배면적 감축 유도, ▲ 쌀값 하락으로 인한 소득감소에 대한 소득보전직불제는 도입시기를 추후 논의하고 내년부터 논농업 직불제 보조금 지급상한선을 2ha에서 5ha로 확대, ▲ 쌀 민간 유통 활성화를 위해 지원확대, 양곡거래소 설립, 품종, 가공일자, 산지표시 의무화 등을 통해 품질 정보 제공

이와 같은 정부 대책은 신자유주의적 개방을 대세론으로 규정하면서 쌀시장 개방을 기정사실화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2004년 WTO 쌀재협상에서 쌀개방을 전제로 한 대책으로 쌀을 시장기능에 내맡겨 쌀 가격 하락을 유도하고 재배면적을 축소하겠다는 쌀포기 정책임에 다름아닌 것입니다. 쌀 가격하락으로 인한 소득감소분에 대해 직접지불제를 통해 소득을 보전하겠다고 하나 이 또한 미비한 상태이고, 무엇보다도 장기적 식량수급에 대한 전망과 식량자급에 대한 구체적 의지 없이 마련된 졸속 대책이라 하겠습니다.

한편, 최근에 체결된 한-칠레협정으로 인한 파장도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우르과이라운드협정 이후 작부체계가 식량작물 중심에서 상업작물 중심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과, 포도, 키위 등 과실부분의 세계최고 경쟁력을 가진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은 과수농가 뿐 아니라 전 농가, 나아가 한국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것은 자명한 것입니다. 97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경제에서 농업관련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2.9%로 제조업의 비율 22.2%보다 높으며, 농업관련산업은 총 생산액 55조원으로 자동차 및 가전, 전자제품의 26조원보다 훨씬 높습니다.

이미 94년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이후 과일, 축산물 등 어느 품목 하나 회생 기미 없이 침몰되고 있습니다(작년 미국산 오렌지의 수입으로 과채류 전반이 대폭락한 사례는 좋은 예입니다). 즉, 한-칠레 협정으로 인하여 무차별 수입, 가격하락, 소수품목집중, 과잉생산, 가격폭락, 영농포기, 농업파탄, 농촌공동체 붕괴로 이어지는 상황이 다시금 연출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무역협정은 칠레:과일-캐나다:곡물의 거래처럼 본래 산업내부에서 상호보완성이 전제되어야 하나 한국과 칠레는 오히려 자본과 기술집약적인 축산, 과일, 채소류 등의 관계에서 경쟁관계에 있습니다(과일 강국인 미국도 자국의 과일산업 보호를 위해 칠레의 FTA 제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농업은 특정 계급, 계층을 위한 산업 이전에 국가의 식량안보와 균형적인 지역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산업으로 획일적인 세계화 논리에 의한 통상정책으로 저울질되어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정부는 개방논리를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인식하에 정책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난주 있었던 농민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과 요구가 울려 퍼진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 2004년 WTO 쌀 재협상에서의 관세화 유예조치 관철, ▲ 식량자급계획 수립, ▲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국회비준 거부, ▲ 농업통상협상권 농림부 이관 및 농민대표 참여, ▲ 농가부채 특별법 재개정, ▲ 실질적 농가소득 보장대책 마련, ▲ 재해보상법 제정, ▲ 쌀값 보장을 위한 특별대책 마련

내년부터는 협상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꾸준한 관심과 모니터링, 대안을 위한 정책적 노력들이 더욱 절실할 때입니다. 다음주에는 농업분야에 이어, 스크린 쿼터 문제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던 문화분야 협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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