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미분류 2002-07-24   1851

[지구촌 시민사회와 이슈 9호] 인권과 유엔, 그 도전의 역사

안녕하세요? 중복도 지난 여름의 한가운데입니다. 많이 덥습니다.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유엔과 인권문제에 대해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와 올해 열린 58차 유엔 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음에는 개발(발전)권에 대하여 알아볼 예정입니다.

1993년 비엔나 세계 인권대회(World Conference on Human Rights, Vienna, 1993)

세계인권선언 20주년을 맞아 열린 테헤란 세계인권회의 이후 25년 만에 열린 비엔나 세계 인권대회는 1990년대 초 탈냉전과 인종, 민족, 종교간 갈등과 분쟁, 이로 인한 대량 학살과 난민발생, 빈곤 등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인권규범의 재확립을 위한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는 1990년 12월 유엔 총회결의를 통하여

◎ 세계인권선언 채택 이후 인권분야에서 진보를 검토·평가하고,

◎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와 시민,정치적 권리와 발전(개발)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며,

◎ 현재의 인권기준 및 인권제도의 개선방법을 검토하고,

◎ 인권관련 유엔활동의 효율성을 위한 권고를 하며,

◎ 유엔의 인권관련활동에 필요한 재정확보를 위한 권고를 위해 개최되었습니다.

4차례의 준비회의와 아프리카와 중남미, 아시아 지역에서 지역별로 준비회의를 통하여, 특히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나 오월광장 어머니회(아르헨티나 실종자가족 단체)같은 인권단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993년 6월 14일부터 25일까지 171개 정부대표, 11개 유엔인권기구, 10개 유엔전문기구, 24개 국가인권기구, 800개 NGO 등 7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본회의(정부간 회의)와 NGO포럼, 부대행사들이 열렸습니다.

주요쟁점 : 인권개념에 대한 논쟁과 인권보호 관련 상설기구 설치

§ 인권의 보편성(universality)과 불가분성(indivisibility)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의 주요 쟁점은 인권의 개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지역별 준비회의에서도 드러났는데, 특히 아시아지역회의의 반응은 격렬하였습니다.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싱가폴, 시리아, 예멘 등 아시아 지역국가들은 국가주권의 불가침과 내정간섭 금지의 원칙, 그리고 역사, 문화, 종교 등의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권의 보편성과 불가분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확고히 하였습니다. 이러한 국가들은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선진국이 인권문제를 매개로 제3세계에 대하여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였지만, 이들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행되었던 인권침해를 은폐하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주권침해와 인권개념의 적용에 있어 특수성을 강조한 점에서 이러한 나라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인권의 불가분성은 정치적 권리나 경제적 인권의 사이에 선택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닌 통합적인 권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서 개발도상국들은 경제발전이 선행되어야만 시민.정치적 권리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의 경험에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경제발전을 명분으로 한 인권침해가 공공연히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인권의 불가분성은 선진국 중심의 세계체제에서 후발 국가들이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판단되어야할 문제이며, 더욱이 금융자본의 횡포가 잦은 ‘세계화’시대에는 인권의 문제가 더욱 전지구적인 문제로 고려되어야만 하겠습니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 새로운 인권보호기구를 설치하는 문제 역시 중요 쟁점이었습니다. 이들 문제 중 현재 내년창설을 앞두고 있는 국제형사재판소 창설안은 유엔 국제법 위원회가 계속 검토하도록 제안하는 것으로 합의되었지만, 인권문제 고등판무관안은 많은 정부들의 반대에 부딪쳐 합의를 이루지 못하다가 유엔총회에 권고하는 수준에서 타협을 이루었습니다(이후 유엔 총회 결의로 인권고등판무관실이 신설되었습니다).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 한국 NGO들이 ‘유엔 세계인권대회를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회의에 참가하였고, 심포지움 등 자체 행사를 통하여 국가보안법과 종군위안부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등 조직적인 국제연대사업을 전개하였습니다(이를 계기로 이후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은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몇몇 단체가 유엔 협의자격을 획득하는 등 유엔을 통한 국제연대 사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 비엔나 세계 인권대회의 성과와 한계

비엔나선언과 행동계획(Vienna Declaration and Programme of Action: VDPA)은 인권의 보편성과 불가분성을 거듭 천명하고 유엔 인권제도의 개선과 강화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소홀히 취급되어 온 빈곤을 인권침해로 규정해냈으며, 개발도상국이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개발(발전)의 권리를 확인하였고, 여성과 아동 등 약자들의 보호에 정부가 일차적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비엔나 인권대회는 정부대표간 입장의 충돌이라는 딜레마로 인하여 대회의 의미가 축소되었습니다. 앞서 인권개념에 대한 논쟁에서 알 수 있듯이 제3세계국가들이나 중국과 같은 국가는 자국의 인권문제로 인하여 정부대표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더욱이 NGO 참여는 이러한 점에서 매우 거북한 상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NGO들을 배제하거나 입장이 비슷한 국가들간의 단합과 거래가 발생하게 됩니다.

실제로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의 경우, 사전 준비회의 과정에서 정부대표들은 NGO들의 배제와 회의자체에 대한 보이콧 등의 모습을 보여주어 회의개최 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한계는 회의 내용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행동을 결의하거나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하는 대신, 현실의 개선을 위한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수준의 권고를 하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배경이었습니다. 특히 가장 첨예한 갈등과 협상이 일어난 최종 선언문을 작성하는 문안기초위원회에서는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NGO들은 문안기초위원회의 회의를 방청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정치적 협상과 NGO배제의 움직임은 해마다 열리는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테러’와 ‘안보’에 짓눌린 인권 : 58차 인권위원회

9.11테러이후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팔레스타인 침공이 진행 중이던 올해 3월 16일 6주간의 일정으로 개막된 제 58차 유엔 인권위원회는 아랍지역의 인권침해 문제, 고문.감금과 양심적 병역거부 등을 포함한 시민.정치적 권리 등 총 21개의 의제로 진행되었습니다. 58차 인권위원회는 ‘테러’, ‘안보’, 그리고 인권이 그 핵심쟁점이었습니다.

메리 로빈슨 인권고등판무관은 보고서를 통하여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에 대한 대처 또한 세계인권선언과 보편적 가치, 국제인권협약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과 인도, 러시아와 중국은 각각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반대입장을 보였습니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은 ‘테러’의 근본적 원인은 빈곤과 이슬람에 대한 편견임을 지적하고, 개발권의 보장과 팔레스타인지역 등에서 그들의 정당성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테러와 인권에 관한 논쟁은 민족의 자결권과 팔레스타인 등 아랍지역의 인권침해 문제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문제에 대하여 인권고등판무관의 긴급파견이 결정되었지만, 이스라엘의 비자발급 거부로 그 활동이 무산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한국시민사회단체는 이번 58차 인권위에서 민변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여성연합 등이 참가하여 ‘인권으로서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간담회를 개최하였고, 민변은 테러방지법안에 대해, 여성연합은 종군위안부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 인권위원회의 파행적 운영과 민주주의의 후퇴

이번 58차 인권위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를 위한 정부조치에 대한 결의안과 고문방지 국제협약 선택의정서(고문 의혹이 있는 구금장소에 대한 국제조사단 불시방문 허용- 한국은 반대) 채택이라는 성과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58차 인권위는 재정문제를 이유로 회의일정이 축소되어 많은 NGO들이 예정된 발언기회가 대거 취소되는 파행을 겪었습니다. 특히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이사국이 아닌 옵서버로 참여하면서 야기된 역학관계를 이용, 인권후진국들의 막후 로비와 표거래가 난무하는 정치적 거래가 판을 쳤습니다. 심지어는 대테러 조치에 의한 인권침해 방지에 대해 멕시코 대표가 결의안을 제출하였다가 스스로 철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사태는 미국의 압력과 결의안 내용의 희석을 위한 알제리,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파키스탄 등의 방해로 인한 것이라고 국제사면위원회, 휴먼라이츠 워치, 국제법률가 위원회 등이 비난하였습니다.

유엔 인권회의의 딜레마 : 회의 주체인 정부 자체가 비판의 대상

인권문제는 그 사안 자체가 정치적인 데다가 정부의 책임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 주제여서, 정부대표들은 사실상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냉전이후 세계질서에 있어 ‘국익 이외의 문제’에 대한 국가(정부)들의 무관심과 이해타산적 외교방식은 많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유엔에 있어 인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디게 진보하였습니다. 이러한 진보가 가능했던 것은 정부들의 무책임과 첨예한 대립 속에서도 인권의 지평확대를 위한 NGO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이러한 성과들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늘 부릅뜬 눈으로 인권지킴이를 자처하는 지구촌 시민사회의 긴밀한 연대는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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