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13-11-08   2347

[서평] 인도네시아의 한국인-한국의 인도네시아인 만나기

[화제의 책] 인도네시아 속의 한국인 – 한국 속의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의 한국인-한국의 인도네시아인 만나기

양영미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장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제화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경제활동과 직업 때문에 혹은 결혼을 이유로 다른 나라로 이주해 살아간다. 최근 서로 다른 사회·문화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한국인 이주민 그리고 국내 외국인 이주민들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8개국의 12개 주제를 통해 한국-아세안 문명교류사를 기록하는 방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국과 해당국의 전문가가 공동으로 연구하고 집필하는 이 프로젝트의 결실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 속의 한국인 – 한국 속의 인도네시아]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기획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적 차원에서 한국과 인도네시아 사이의 문명교류의 궤적을 찾아내는 한편, ‘개별국가의 국민이자 아시아인’으로서의 양국 사람들의 정체성을 확인함으로써 향후 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는 한 축이 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적인 연구조사 결과물인 이 책은 전체로써 한 사회를 분석하기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미시적 교류에 초점을 맞춘다. 사람들 사이의 교류라는 것이 주변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이웃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게 읽히고 생생한 재미가 살아있다. 특히 이 책의 부제 ‘투자와 이주를 통한 문화교류’에서 알 수 있듯이 인도네시아에 스며든 한인 투자와 한인사회, 그리고 한국 내 인도네시아인들의 이주노동과 국제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최초로 인도네시아에 상륙했던 한국인 인삼 상인, 진취적 자세로 열대의 나라에서 목재 등의 자원개발에 진한 땀을 흘렸던 재인도네시아 한인 기업인들, 그리고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으로 한국에서 인도네시아 공동체를 일궈낸 사람들의 사정은 그동안 듣지 못했던 우리 이웃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속속들이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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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인도네시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인도네시아> 전제성, 유완또 공저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교류, 그 시작
서로 다른 국가 사이의 민간 교류 역사를 짚어보기 위해 먼저 공식적인 외교관계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은 그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주기에 필요하다. 이 책 역시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민간 투자와 인적 교류의 시작을 살펴보기 위해 양국의 외교관계가 싹트기 시작한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는 것으로 서두를 연다.

근대 이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교류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비슷한 시기인 1945년 독립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독립 직후 양국이 취한 노선에는 거리가 있었다. 독립국가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이 된 수까르노는 1955년 아프리카의 지도자들과 함께 비동맹 국가들의 모임인 아시아아프리카회의를 주창했다. 반둥회의로 보다 널리 알려진 이 회의는 과거 식민지 종주국들의 각축전에서 피식민지국가들이 비동맹이란 독립적 행보를 선언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이 되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비동맹 노선을 주창한 나라 중 하나인 만큼 반둥회의를 이끌어 가는데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한국전쟁 직후였던 당시 한반도에는 반둥회의에 대한 입장조차도 갈릴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비동맹 국가들의 블록에 호응한 반면 남한은 인도네시아는 물론 비동맹국들의 독자적 노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중에 개국 공신인 수까르노가 친미반공 수하르토 정권에 패배한 1966년에서야 비로소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초기 외교관계는 이처럼 당시 세계 근대사의 역동적 흐름 속에서 한반도가 처한 이념적 상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한-인니 급증하는 경제협력, 그리고 시민사회의 우려
수교이후 시작된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제협력관계는 최근에는 필자의 표현대로 황금기를 맞고 있다. 한국은 인도네시아 제4위 규모의 무역상대국이 되었으며,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중요한 동남아시아 파트너 국가가 되었다.
특히 한국 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매우 활발한데, 이는 한국 정부가 최근까지 인도네시아에 경제협력뿐 만아니라 개발협력에서도 우선적 지위를 부여하고 많은 원조를 제공했던 사실에 기인한다. 정부의 조력 덕에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 투자를 하거나 인도네시아를 거점으로 사업을 벌이게 되었고, 사업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정착한 한국인들은 인도네시아 내에 최대 외국인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지금은 약 1500개에 달하는 한국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으며 이들은 80만명에 가까운 현지인들을 고용하는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제철소건설, 바이오 디젤을 위한 팜올리브 농장경영 등 대규모 사업에 적극 진출하다 보니 무차별 개발이나 묻지마식 진출로 현지 주민들의 불만도 늘어나는 실정이다. 국제연대를 통해 양국 시민들간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해온 시민사회 입장에서 이는 우려되는 지점이다.

한국 속의 인도네시아 – 처음 듣는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
그렇다면, 역으로 얼마나 많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한국에 이주해서 살고 있을까? 인도네시아 이주민 중 가장 많은 수는 이주 노동자이고 그 뒤를 잇는 것은 결혼이주여성들이다. 다문화의 역사적 경험이 일천한 한국에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은 흔히 임금체불이나 불법체류 문제에 당면해 있다. 인도네시아 이주민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은 이러한 이슈들을 일반화해서 다루기보다 인도네시아 이주민들이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그 과정과 속살을 살아있는 이야기들로 소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네팔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된 밴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 Down)’의 시도가 바로 그렇다. 이들은 ‘월급날(pay day)’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임금체불 문제를 자신들의 말과 이야기로 생생하게 살을 붙여 세상에 알린다. 필자가 강조하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바로 이처럼 임금체불이라는 ‘사회문제’ 너머에 감춰져 있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임으로써 시작된다.
또한 이제껏 한국인들이 추측해 왔던 것과 달리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한국행 이유가 ‘코리안 드림’만은 아니라는 점은 흥미롭다. ‘한류가 좋아서, 한국 노래가 좋고 한류 드라마가 재미있어서, 한국인들의 감수성에 공감하고 즐길 수 있어서’라는 이유로 한국행을 결심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주 한인들이 판박이처럼 ‘아메리칸 드림’만을 위해 도미하는 것은 아니듯 인도네시아 이주민들 역시 높은 임금이나 일자리 기회만을 쫓는 게 아니라 가치추구적이며 탈물질적인 이유로 한국을 찾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언급은 인도네시아 이주민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한 뼘 더 넓혀준다.

인도네시아와 어떻게 만나야 할까
우리는 아시아의 한 부분이면서도 이제까지 아시아보다는 서구에 더 큰 관심을 가져왔다. 정작 이웃인 아시아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대해서는 관광과 투자의 대상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과 섞여 살아가고 있다. 1천만 명 가까운 한국인들은 해외에서 한인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으며, 국내에도 100만 명이 넘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들과 서로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다른 국적의 이웃들에게 편견 없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인들의 아시아에 대한 편견과 무시하는 태도는 듣기 민망할 정도이다.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현지 노동자들이 부지런하지 않다고 비웃거나 비인간적인 처우를 일삼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일반 여행객조차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들을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쉽게 무시하는 ‘추한 한국인(Ugly Korean)’ 사례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똑같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소통의 노력을 한다면 서로간의 편견과 거리도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연스러운 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서구와 아시아 국가에 대한 확연한 시각차를 가진 한국인의 사고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조금 늦은 시도이지만 정치학자인 필자의 이러한 문화인류학적 외도는 의미가 있다. 늘 서두르고 성마른 한국 사람들의 아시아인들에 대한 태도가 조금 더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으로 바뀔 것이 기다려진다.

한-인니 사람간의 소통을 위해 남겨진 과제
필자는 책에서 여러 가지 제언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더 나은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입지전적 한국인의 성공담이나 한인사회의 폐쇄성, 한국인들의 고질병이나 다름없는 자민족 중심주의를 버리고 일방적이기보다는 상호성을 가진 소통을 권한다. 자신들만의 소비 권역을 형성하고 현지사회와 열린 관계가 드문 한국인들에게 생활편의중심이 아닌 현지어를 습득해 볼 것을 진지하게 권하고 있으며, 자카르타의 한국문화원에는 한류홍보와 더불어 인도네시아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것도 제안하고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국어만으로 연구해야하는 장벽을 허물고 영어나 현지어로 한국에 대해 연구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것이 연구 확대에 도움을 줄 것이며, 무엇보다 양국의 관계를 경제나 주요 정치이슈 중심으로 이해하기보다 문화와 역사를 포함하는 전 방위적으로 상호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시아 속에서 한국인이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아시아 공동체의 일원으로 잘 살 수 있는 방법이란 이러한 상호 이해의 노력에서 출발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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