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을 국경너머로] 주요 원조 공여국 연재⑤ 영국

질 높고, 혁신적인 원조로 유명한 영국의 개발 원조 모델

2006년 5월 31일, 이탈리아와 미국에 의해서 이루어진 OECD DAC(개발원조위원회) 동료 평가 (Peer Review)에 의하면, 영국은 급변하는 개발 협력 세계에서 많은 국가들에게 대표적인 양자원조의 모델로 손 꼽히고 있다.

많은 식민지 경험으로 인한 오랜 역사와 그로 인한 연륜과 체계적인 시스템과 방대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 그리고 동료평가에서도 장점으로 언급된, 분명한 법적 권한과 잘 짜여진 행정 체계로 원조 프로그램을 전략적으로 조직하는 점, 또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국민들의 원조에 대한 이해를 증가시켜 국민들의 합의와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1997년에 이루어진 대대적인 제도적인 개혁 노력 등 영국의 원조는 여러 모로 양적 질적 대외원조의 선진화를 추구하고 변화를 꾀하는 현재의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질 높고, 혁신적인 원조로 유명한 영국의 개발 원조 모델

그렇다면, 여기서는 어떠한 면이 영국으로 하여금 이러한 명성을 얻게 하였는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원조의 양에 있어서, 영국은 2005년, 미화 108억달러로 세계 제 3위의 원조 공여국이며, 이렇게 많은 양의 원조를 다루기 위한 충분한 수의 직원과 사무소로도 유명하다. DFID(국제개발부, Departmen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는 런던과 이스트킬브라이드에 두 개의 본부를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에 64개의 지역 사무소를 가지고 있다. DFID가 보유한 직원 수는 2,500명이 넘는데 중요한 사실은 이들 중 절반 이상이 현지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은 2001년 4월 이래로, 조건부 원조를 모두 폐지하고, 비구속성(Untied) 원조를 실시하고 있다. 2001년의 조건부 원조의 폐지는 이듬해 6월 제정된 국제개발협력법(International Development Act)과도 연관이 깊다. 그 전까지 영국 대외 원조의 기본을 이루었던 1980년에 제정된 개발협력법(1980 Act)은 빈곤퇴치에 중점을 두지 않았고, 영국 대외 원조와 영국산 물품과 서비스의 연계라는 조건부 원조에 관심을 두었었다. 따라서 2002년에 새로 제정된 법은 영국 대외원조의 목표가 경제적 이익 추구에서 빈곤 퇴치로 완전히 넘어왔음을 보여 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영국은 전체 원조의 90% 이상을 저소득국에 배분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볼 때 가장 많은 수혜를 입는 지역은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이다. 영국은 다른 국가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분쟁 지역의 평화 구축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고, 대표적으로 시에라리온, 앙골라, 수단, 콩고 등지에서 일하고 있다. 인도주의적 구호에 있어서도 영국은 이 분야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는 국가다.

효과적인 파트너쉽 구축에 있어서도 영국은 타 공여국의 모범이 된다. 세 차례의 백서에서 영국은 지속적으로 파트너쉽과 공동 행동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영국 정부가 자신들의 국제 개발 목표가 DFID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으며, DFID 외 다른 영국 정부 부처, 수원국 정부, 국제 기구, NGOs, 학계, 민간 부문들과의 광범위한 공동 협력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자각에서 나온다. 파트너쉽에 대한 영국 정부의 신뢰와 실질적인 행동은 영국의 다자기관 이용에서 엿볼 수 있다. 아래는 1997년 백서에서 인용된 도표이다. 이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국은 전체 원조의 절반 가량을 세계은행, 유엔, EU 등의 다자 기관을 통해 공여하고 있다. 영국은 백서에서 다자 기관에 많은 원조를 할당하는 이유로, 다자 기관이 국제사회의 빈곤퇴치에 대한 헌신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다자 기관과 양자 기관이 상호 보완적이라는 점을 들었다.


환경과 같은 국제적인 문제에 민감한 영국의 태도도 배울 만하다. 2006년 백서에서 영국은 특별히 ‘기후 변화에 대한 공동 대응’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이를 위해 영국 정부는 UN, EU, 다자 개발 은행들과 함께 기후 변화 영향에 대한 개도국의 인식 제고와 개도국의 기후 변화에 적응 노력을 지원할 것을 약속하며, 자연재해 발생에 따른 복구에 엄청난 비용이 소모되므로 재해 발생 전에 대비하는 노력에도 지원을 확대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국은 영국 대외 원조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내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백서는 전 세계의 상호 의존과 국제 개발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촉구하고 있으며, 또한 영국의 아이들이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주요한 국제 문제들에 대한 지식이 생기도록 개발 사안에 대해서 모든 아이들이 교육 받을 것을 주장한다. 특별히 1999년 전략 보고서를 통해, 공교육 부문, 미디어, 비즈니스와 노동 조합, 종교계를 주요 핵심 분야로 잡고, 개발의식교육 운동을 벌이고 있다. 영국 국민들의 대외 원조에 관한 태도와 행동을 조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DFID는 고정적으로 대외 원조에 관한 여론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ODA 모범 사례를 담고 있는 소책자 배포를 통해 ODA 결과를 국민들에게 홍보함으로써 지지를 받아내고 있다.

영국 대외 원조의 행정 체제의 변화: 법적 제도적 틀의 구축

영국이 현재의 모범적인 공여국의 모습을 가지기까지는 많은 변화와 튼튼한 행정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들이 있었다.

실제적인 영국 원조의 역사는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 가지만, 여기서는 공식적으로 영국이 밝히고 있는 대외 원조 행정 체제의 변화만 살펴보겠다.

영국 원조의 역사는 구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영국의 책임감에서 시작된 식민지 개발법(Colonial Development Act)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61년 원조 프로그램의 기술협력 분야를 위한 기술협력부(Department of Technical Cooperation)가 신설되었고, 1964년에는 첫 독립 대외 원조 기관인 해외 개발부(Ministry of Overseas Development)가 생겼다. 1970년에 이 부서는 사라지고, 외교부로 통합되어 외교부의 기능적 역할을 하는 해외 개발 행정부(Overseas Development Administration)로 격하되었다. 1974년 5월에 정부는 이를 다시 독립 부서인 해외 개발부로 바꾸었지만, 1979년 이 부서는 또 다시 외교부 산하의 해외 개발 행정부로 넘어왔다.

1997년은 영국 대외 원조 역사에 획을 긋는 중요한 시점이었다. 1997년에 들어선 영국 노동당 정부는 집권과 동시에 해외 개발 행정부를 국제개발 원조 전담 부처인 국제개발부 DFID로 바꾸고, 「국제개발에 관한 백서(White Paper on International Development)」를 발간하였다. 영국은「세계 빈곤 퇴치: 21세기의 도전」이라는 1997년 백서에 이어, 2000년도에는「세계 빈곤 퇴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세계화 구상」이라는 두 번째 백서를 발간하였으며, 최근 2006년 7월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거버넌스 구상」이라는 세 번째 백서를 발간하였다. 각각의 백서는 빈곤 퇴치라는 큰 목적 아래 그 목적을 이루는 구체적인 목표들을 잡고 있다. 첫 번째 백서에서는 개발의 도전에 대항하여 파트너쉽 구축, 정책의 일관성, 대외원조를 위한 대중의 지지 구축을 강조했다면, 두 번째 백서에서는 세계화의 도전에 대항하여 효과적인 정부와 효율적인 시장 구축, 인간 개발, 민간 자본에 초점을 두었다. 2006년 백서는 우리 세대의 도전에 대항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국가의 구축, 안전, 일자리와 공공 서비스의 제공,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국제적 협력, 21세기에 맞는 국제 시스템 구축에 중점을 둔다.

더 효과적이고, 튼튼한 원조 행정 체계 구축을 위해서 영국이 강조하고 있는 점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이와 관련해서 국무총리, 재무부 장관, 국제 개발 장관 등에 의한 고위급의 정책 지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1997년 백서의 내용 중 중요한 요소이다. DFID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서 각 부처들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일하고, 무역, 분쟁 방지, 부채 탕감, 새천년개발목표(MDGs) 실행을 위한 합동 공공 서비스 협정(Joint Public Service Agreement)의 목표들도 각 부처들과 함께 정하고 있다.

2002년 영국은 의회와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국제개발협력법을 제정하였다. 이를 통해 1997년 DFID 설립 이래 지속된 ODA 정책에 대한 개혁이 완성되었고, 이 법이 영국 ODA 정책의 기초가 되고 있다.

영국 ODA 현황

여기서는 가장 최근까지 조사되고, 평가된 영국 ODA의 현 상황을 되짚어 보고 영국 원조의 최근 특성을 알아보기로 하자.

2000년에서 2004년까지 영국의 ODA의 양은 30% 증가했다. 2004년 기준으로 볼 때, 영국은 78억 달러를 지불하여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양의 ODA를 제공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2005년에 프랑스를 누르고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양의 ODA를 제공하는 국가가 되었다. 2005년에 영국의 순 ODA 양은 108억이었고 2004년에 비해 35% 증가했다. 또한 ODA/GNI(국민총소득) 비율은 0.36%에서 0.47%로 상승했다. DFID가 직접 지원하는 국가는 전 세계 150여 국가에 이른다.

영국 원조의 목표는 빈곤 퇴치에 있으며, 부문별로 보면 부채탕감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 DFID는 저개발국,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영국의 원조효과 제고 사항을 보면, 영국은 파리선언과 2006년 국제개발 백서에서 원조 효율성에 합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영국은 파리 선언의 이행을 위해 다른 국가들과 함께 일하며, DAC의 모니터링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영국은 2013년까지 원조예산을 0.7%로 늘리기로 결정하고, 개발 재원을 모으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는 일과 국가 차원에서의 장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원조를 하는 일에 있어서 다른 원조 공여국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원조의 효과성을 위한 중기계획을 보면, 2010년까지 달성할 국가와 지역, 국제 협력 수준에서의 목표치를 잡고 있다. 영국은 결과 중심 접근법에 근거한 공여국 사업 모니터링과 상호 책임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고, 원조의 조화를 장려하고 있다.

2006년 백서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향후 5년간 영국이 중점을 둘 부분은 바로 공치(Governance) 분야이다. 영국은 빈곤국가의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 역량 있고, 책임감 있고, 투명한 정치를 하게끔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DFID는 수원국의 거버넌스의 질을 측정하는 틀을 만들고, 여기서 나오는 결과에 따라 원조의 양을 결정하게 된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도 경주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단기 사업보다, 장기적으로 그 나라의 빈곤을 감퇴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 나라 거버넌스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일임을 믿고 있기에 양자원조의 50% 가량을 빈곤국의 공공 행정 서비스에 투자하고 있다.


영국 사례가 주는 시사점

모범적인 원조 국가로서 영국의 사례가 한국에 던져 주는 시사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파트너쉽의 강조이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도 파트너쉽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고, 작년부터 지속적으로 민간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이런 저런 많은 만남과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타 정부 부처와의 정책 협의는 미비하며, NGO 지원액은 늘었다고는 하지만, 국가와 시민 사회간의 튼튼한 파트너십을 기대하기에는 여전히 턱없이 적다. 한국 개발 협력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한 순간에 증폭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KOICA가 마음대로 예산량과 직원 수를 늘릴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타 정부 부처, NGOs, 국제기구, 학계와 연구소 등과의 파트너쉽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하겠다. 영국 DFID가 엄청난 규모의 재정과 직원 수를 보유하고도, 파트너쉽에 가장 큰 중점을 두는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참된 국제개발협력은 한 기관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사회 전체가 하나의 목표 아래 효과적으로 단결하여 움직일 때라야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의 국제 개발협력 체제 구축도 한국이 본받고 따라가야 할 부분이다. 영국은 대외원조를 재경부나 외교부의 경제적, 정치적 실익에 의해서 유동적으로 변하는, 시장 개척이라는 물고기를 위한 낚싯밥으로 사용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얻기 위한 선물용으로 생각하는 원조 이념에서 벗어나, 국제 사회에서 가장 큰 사안으로 떠오른 빈곤 퇴치라는 목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단기 사업의 양을 없애고, 백서를 통한 국가 차원의 장기적 목표와 전략을 세우고, 치밀한 계획 아래 세부 목표를 정하고, 세운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2002년 6월에 제정된 국제개발협력법도 이러한 튼튼한 국제 개발의 협력 체제 구축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러한 참된 원조의 리더십 모델이야말로, 기대되는 새로운 원조 공여국으로 떠오르는 한국이 따라가야 할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외원조의 목적 또한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OECD DAC의 개발 원조의 목적 세 가지인 정치적, 경제적, 인도적 목적을 그대로 따고 있는 한국과는 달리, 영국은 대외원조의 전반적 목표가 빈곤퇴치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영국은 개발 원조가 필요한 이유를, 세계 인구의 1/5이 절대 빈곤 속에 살며 천만의 아이들이 5세 전에 사망하고, 1억이 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이러한 인류의 고통과 가능성의 낭비가 비단 양심의 문제가 아닌, 영국 자체의 이익에 위반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고, 영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전쟁, 국제 범죄, 난민, 마약, 에이즈 같은 세계적인 문제들은 가난한 국가들의 빈곤에 의해 심화되기 때문에, 빈곤 퇴치야말로 영국을 포함한 세계 모두를 위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의 개발원조는 철저하게 경제적 이익을 대외 원조의 목표로 잡았던 일본의 개발원조 모델을 따라 했기에, 단기적으로는 갑작스런 전환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시행 착오를 겪어 지금에 이른 영국 원조 모델을 보고 배운다면, 짧은 시간에 참된 국익과 세계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써의 책임감을 위한 한국형 선진 원조 모델을 쉽게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박수연(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ODA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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