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을 국경너머로] 주요 원조 공여국 연재⑥ 호주

자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거꾸로 가는 ODA

911 이후 네덜란드를 비롯한 OECD 국가들 가운데 국가안보를 개발의제의 중심에 두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시각에서 안보(치안)를 모든 개발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일명 ‘실패한 국가’들에 대한 사전예방적 개입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구호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신간섭주의적 기조 속에서 국가안보 중심의 ODA정책은, 빈곤퇴치를 통한 인류의 공존과 평화라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도리어 공여국의 이익과 목적에 충실하게 작용함으로써 수혜국 사람들의 인권과 개인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호주의 ODA정책은 이런 가능성이 단순히 우려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실망스러운 실태

호주는, 2001년 911사건과 2002년 발리 폭발 사건을 계기로, 동남 아시아와 태평양 군도에서의 분쟁과 테러가 자국에 대한 안보위협임을 내세워 스스로 이 지역의 보안관 역할을 자처하고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신간섭주의적 대외정책에 따라, 호주의 ODA는 지리적으로는 이해관계가 밀접한 동남아시아와 태평양군도에 집중하고 있으며, 정책적으로는 수원국의 거버넌스 개선에 그 비율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규모 면에 있어서는, 지난 10여 년 동안 예외적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1996년 현 정권이 들어선 이래 ODA규모가 급강하였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1975~6년에 GNI대비 0.45%의 규모에서, 1985~6년에는 0.43%, 1995~6년에는 0.32%, 2000~03년에는 GNI대비 0.25%수준으로 낮아졌다가, 이후 증가세를 보이면서 2005~6년에는 0.28%로, 2006~7년에는 약 0.3%로 증가하여, 현재 OECD 22개 회원국 가운데 19위를 기록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도 국제사회의 합의와 노력에 훨씬 못 미치지만, 그 내용적 측면은 더욱 실망스럽다고 할 수 있다. 즉 최근에 ODA가 증가세로 바뀌게 된 것은, 신간섭주의 정책에 따라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의 반테러활동에 대한 지원과 남태평양 군도의 치안유지를 이유로 파견한 자국의 군경과 관료들에 대한 엄청난 지원경비가 ODA예산에서 충당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 ODA의 80%가 자국의 사기업과의 계약으로 집행되고 있어 개도국에 대한 실질적 원조보다는 경제적 부메랑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호주의 ODA 일반은 2005년 OECD 평가 보고서에서 “호주의 ODA프로그램은 남반구의 개도국들을 실망시켰으며 원조 프로그램이 명백히 호주의 간섭주의 외교정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라고 지적된 바와 같이 수원국 시민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책: 호주의 국익에 부합한 이웃정권 만들기

호주는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침략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탄압했을 때, 자국과 티모르 섬 사이에 매장된 석유자원에 대한 기득권 유지를 위해 공식적으로 인도네시아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고 동티모르의 진상을 은폐하는 데에 앞장선 바 있다. 이렇듯, 호주의 대외정책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이익에 충실하게 운영되어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ODA정책에 있어서도 호주원조국(AusAid)은 그 목적을 개도국의 빈곤감축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원하되, 호주의 국가이익에 부합한(in line with Australia’s national interests) 것이어야 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ODA를 빈곤퇴치의 목적보다는 자국의 이익에 충실한 정치적 경제적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보여준다. 호주 정부가 추구하는 자국의 이익이란 개념은 지역적 안보 위협에 대한 개입과 이로 인한 부메랑효과로서의 경제적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솔로몬제도의 치안유지를 위한 지역원조단(RAMSI: Regional Assistance Mission to the Solomon Islands)이나 파푸아뉴기니와의 협력강화프로그램(ECP: Enhanced Cooperation Program)과 같은 호주의 거대 원조 프로그램은 수원국의 “거버넌스 개혁”이라는 명분 하에 군대 혹은 경찰력의 배치를 시작으로, 수원국의 재정과 사법부분에 대해 공식적으로 개입하고, 종래에는 호주의 경제적 이익을 환수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911과 발리폭발사건 이후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거버넌스 부분에 대한 ODA예산 배분은 36%로 급등하였으며 전통적인 ODA 부분인 보건과 교육, 인프라부분을 합한 것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2001-02년 대비 2005-06년 부문별 원조 배분비율 변화 추이, The Reality of Aid 2006 보고서

문제는 호주 정부에게 있어서 ‘굿 거버넌스’가 무엇인가인데, 아래 구성표에서 볼 수 있듯이 호주는 거버넌스 가운데 47%를 호주의 국방부와 연방경찰청이 주관하는 ‘사법제도’ 부분에 할당한 반면 ‘민주적 절차의 증진’에는 2%만을 배정하고 있다. 호주 외교통상부는 이에 대해서 ODA가 지역안보와 자유시장원칙에 기초한 경제통합이라는 호주의 지역전략 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빈곤에 대한 해결책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그러한 경제성장은 치안의 확보, 재산권을 포함한 투자환경의 개선 그리고 시장개방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정책이다.

2006년 3월 의회에 제시된 ‘원조백서(White Paper on Australian Aid to Parliament)’에서도 빈곤 감축을 위한 기초전략으로서 경제성장에 대한 독려와 이를 위한 지역 내 강력한 거버넌스의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호주원조국 총재는 2005년 ‘호주전략정책연구소’의 연설에서 불안정한 국가는 무기나 마약, 인간 밀매와 같은 범죄의 인큐베이터이며 잠정적으로 테러리즘의 육성지라고 선언함으로써, 직접적으로 원조 프로그램과 테러와의 전쟁의 연관성을 공식화하였다. 그에 의하면 자국에 대한 이익 없이 순수한 선행을 베푸는 시대는 끝났으며, 대신 ODA는 호주의 국가이익에 우호적인 전략적 환경을 만드는 데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호주에게 있어서 굿 거버넌스란 호주의 지역전략에 적합한 통치형태로 ‘시장 친화적 정부 개입’과 ‘테러와의 전쟁’에 동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접근이 수원국 사람들의 일상적 인간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이다.


거버넌스 원조 예산 구성, 호주원조국 2005년

대상국가: 이해관계가 긴밀한 정치적 불안정 국가

지역적으로 ODA예산 가운데 40%가 태평양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주로 솔로몬제도나 파푸아뉴기니와 같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에 집중하고 있는데, 여기에 인도네시아까지 포함하면 이 지역에 대한 원조 규모는 전체 ODA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지역적 집중 역시 ODA와 안보문제를 공식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2001-02년에 전체 ODA의 36%가 이 지역에 할당된 반면 2005-6년은 50%가 넘게 배정되었다. 반면, 빈곤문제가 가장 심각한 아프리카대륙에는 3%만이 할당되었다. 특히, 유엔경제개발이사회가 지정한 최빈국에 대해선 0.05%만을 제공하였다. 이는 OECD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국제사회는 최빈국에 대한 ODA를 늘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ODA정책임에 합의하였고 이를 위한 노력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는 이해관계가 분명한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안보문제에 ODA를 집중함으로써, 정치적으로는 신개입주의적 접근을 정당화하고 경제적으로는 부메랑 효과를 누리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2001-02년 대비 2005-06년 지역별 원조 배분비율 추이, The Reality of Aid 2006년 보고서

집행기관: 국방부와 연방경찰청을 중심으로

ODA의 초점이 안보로 옮겨감으로써 호주에서는 유래 없이 총리실을 비롯해 재무, 관세, 이민, 문화부 등 여러 부처의 장관들과 고위급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원조정책의 개발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국방부와 연방경찰청과 같은 개발과는 무관한 부처가 가장 핵심적인 ODA집행기관으로 나서고 있다. ‘안보’라는 하드코어 한 문제를 다루기에 외교통상부의 부속 부서에 불과한 호주원조국은 그 위상과 역할이 턱없이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결국 ODA예산의 대부분을 다른 부처에서 안보와 거버넌스라는 부분에 집행함으로써, 호주원조국은 매년 발행하던 ODA프로젝트 목록서조차 2001년부터는 출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호주 ODA에 대한 전반적인 조정은 결국 의회에 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의회의 ODA에 대한 인식수준이 국제사회의 합의나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호주의 시민사회단체 AID/WATCH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의회의 71%가 원조를 통해 호주의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였으며, 64%가 ODA프로그램을 통해서 국내산업의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바람직한 ODA정책과 집행을 위해서 원조담당부서를 영국에서와 같이 외교통상부의 관할에서 벗어나 각료급을 수장으로 한 독립적 부서로 개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호주의 시민사회단체들은 개발원조 예산이 국가안보 예산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면서 안보정책과 원조정책은 구분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사법제도 부분에 지원된 ODA는 사실상 거버넌스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배치된 호주의 관료와 군인, 경찰 그리고 컨설팅에 참여한 호주의 회사에게 되돌아가고 있고, 호주식 경제 시스템과 거버넌스가 수원국의 사회적 문화적 기술적 상황에 적합하지도 않다고 정부 정책을 비난하고 있다. 무엇보다 호주의 ODA는 거버넌스의 개혁에 있어서 수원국의 시민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 당사자 그룹의 의견과 참여를 차단하고 오히려 수원국 사람들의 인간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민들이 스스로 정부에 대해서 정책의 투명성과 국민에 대한 책무감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인간개발과 역량강화에 투입되어야 할 ODA가 호주식 경제시스템과 안보개념에 적합한 반인권적 정부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현 호주 총리는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원조보다 무역이 중요하다는 강한 신념(2005년 APEC회의 연설 중)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어서, 호주의 ODA정책과 관행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신(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 솔로몬제도의 치안유지를 위한 지역원조단:2003년 6월 솔로몬제도 총리의 요청으로 솔로몬제도에서의 종족분쟁으로 인한 치안유지를 위해 호주를 중심으로 한 태평양국가들이 결성. 호주는 2차 세계대전 이래 최대 규모인 2,225명의 군경을 ODA기금으로 솔로몬제도에 배치

* 파푸아뉴기니와의 협력강화프로그램:2004년 7월에 파푸아뉴기니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호주가 강압적으로 체결한 것으로, 파푸아뉴기니의 굿 거버넌스를 촉진한다는 목적으로 호주의 경찰력 230명과 관료 65명을 파푸아뉴기니 정부 부서에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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