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14-01-12   4505

[아시아생각] 캄보디아의 선거권위주의체제와 노동탄압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캄보디아의 선거권위주의체제와 노동탄압

정연식 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지난 1월 3일 캄보디아 프놈펜 남부 공단 지역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 중인 노동자들에게 군부대가 무차별 총격을 가해 다섯 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다치는 유혈 참사가 일어났다. 놀라운 점은 노동자들의 시위에 이례적으로 공수부대가 동원되어 무력으로 이를 진압했다는 사실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왜 이처럼 극단적인 대응을 선택한 것일까?

 

직접적인 원인의 하나로 지목할 수 있는 것은 사용자들이 정부에 가한 압력이다. 지난해 12월 25일에 시작된 파업으로 일주일째 조업이 중단되는 상황이 이어지자 사용자 연합체인 캄보디아의류생산자협회(GMAC)가 1월 2일 정부에 강경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그 직후에 공수부대가 투입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강경 진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한국 업체들이 주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충격과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 업체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파업에 참여한 8개 노조와 야당인 캄보디아구국당(Cambodian National Rescue Party) 대표 삼랭시(Sam Rainsy)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계획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캄보디아 기자회견
▲ 캄보디아판 ‘광주 사태’와 관련해 한국 봉제 기업들이 강제 진압 요구에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10일 서울 외교부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한국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는 시위 장면.

 

노조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부정하는 처사로 국제노동기구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 탄압 기업으로 낙인찍혀 주문자 기업들로부터 제재당할 가능성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손해배상 소송을 한국 기업들이 주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한국의 이미지가 실추될 수도 있다. 따라서 손해배상 소송은 청구하지 않는 것이 옳다. 설령 승소한다 하더라도 노조들로부터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받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무리수를 두는 것은 노동자들과 야당을 협박하여 최저임금 추가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과 저임금 추수형 자본

현재 캄보디아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는 40만 명 정도이고 그 가운데 35만 명이 외국 자본이 장악한 봉제업에 고용되어 있다. 봉제업은 캄보디아의 핵심 산업으로서 2012년 한 해 수출액이 5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전체 수출액의 60%에 해당한다.

 

한국 봉제 기업은 50여 개가 진출해 있으며 약 1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전력 부족 등 열악한 인프라와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캄보디아에 자본을 투입한 가장 큰 이유는 값싼 임금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법정 최저임금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이익률이 감소했다. 지난해 3월 최저임금이 월 61달러에서 75달러로 인상되었는데 1년이 채 못 되어 80달러로 인상되었고 올 4월부터 95달러로 인상한다는 노사정위원회의 발표가 있자 저임금에 크게 의존하는 기업들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월 95달러도 생계유지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그간의 살인적인 물가 상승으로 인해 95달러로 인상된다 하더라도 실질임금은 여전히 감소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특히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주거 비용으로 임금의 30% 이상을 지출해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현재 노동자들의 삶이 어떠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많은 노동자들이 영양실조로 인해 작업장에서 쓰러지는 일이 빈번하게 보고될 정도로 현재의 최저임금으로는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상태다.

 

영국계 노동 NGO인 LBL(Labour Behind the Label)은 현재 캄보디아의 1인당 최저생계비가 150달러라고 보고한 바 있고, 지난해 말 정부가 발주한 노동 문제 용역 보고서조차도 적정 최저임금을 157~177달러로 제시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캄보디아구국당은 최저임금 월 150달러를 공약으로 내세워 노동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다. 따라서 현재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월 160달러는 터무니없는 요구가 결코 아니다. 최저임금이 95달러로 발표되자 캄보디아 최대 노조인 캄보디아의류노동자민주연맹연합(CCAWDU)을 포함한 5개 노조가 지난해 12월 25일 전격적인 파업에 들어가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낮은 임금을 좇아 캄보디아로 들어간 봉제기업들 입장에서 월 160달러는 두 배로 인상된 금액이며 올해 평균 15% 인상된 베트남의 평균 최저임금을 넘는 수준으로 아마도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액수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 기업들은 조업 중단으로 인한 당장의 손실도 문제였겠지만 어떻게든 최저임금의 추가 인상을 막기 위해 노골적으로 국가의 폭력적 개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여기에 한국 기업들이 앞장을 선 것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즉각 그 요구에 응했다.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만큼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캄보디아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봉제 기업들의 협박도 무시할 수 없었겠지만 그 외에도 중요한 이유가 있다.

 

개발독재 국가의 폭력과 노동 탄압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가 자본을 보호하는 것은 체제에 내재된 속성이다. 그러나 자본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도 않거니와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그렇지만 캄보디아의 개발독재 정권에게 폭력은 가깝고도 흔하다. 훈센(Hun Sen) 정권은 노동을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전형적인 개발독재 정권이기 때문이다. 이미 세 차례나 노조 지도자들이 살해되었고 파업 현장에서는 공권력의 폭력이 끊이지 않았다. 스바이링(Svay Rieng)주 바벳(Bavet)시에서는 시장이 파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총질을 해 세 명에게 중상을 입혔지만 역시 기소되지 않았다.

 

노동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자본이 이익을 추구하는 곳에서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국가의 폭력이 동원된다. 특히 권력층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불법 벌목과 부동산 개발 현장에는 어김없이 폭력이 등장한다. 작년 5월에는 프놈펜 도심 재개발 지역 주민들을 강제 퇴거시키는 과정에서 14세 소녀가 군경의 총격에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지만 아무도 기소되지 않은 채 사건은 종결되었다. 오히려 항의하는 주민들과 시민운동가들이 체포되어 구금되었고 이를 보도한 라디오 방송국 사주는 실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불법 벌목 현장을 찾은 사회운동가 한 명이 현장에서 군경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도 있었다. 추모 집회에는 경찰이 나타나 참가자들에게 몽둥이 세례를 퍼부었다. 그야말로 폭력이 일상화된 정권이다. 따라서 이번 파업에 국가의 폭력이 동원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시민 저항과 독재 정권의 위기

이번 유혈 사태의 특징은 무장한 공수부대가 투입되었고 투입된 지 이틀 만에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감행했다는 점이다. 또한 프놈펜 외곽에서는 탱크와 장갑차들이 대규모로 이동하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훈센 정부가 완전 진압을 목표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번 파업이 야당과 연계된 혹은 야당이 주도한 반정부 시위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실제 야당은 구랍 15일부터 매일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벌이며 총리 하야와 재선거 실시를 요구하고 있었다. 특히 22일에는 2만 명을 상회하는 군중이 집회에 참가했고 29일에는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참가 인원이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교원노조도 월 급여 250달러 관철을 위해 1주일 후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평일인 30일과 31일에는 시위대가 프놈펜 중심부 도로를 점거하고 정권 타도를 외치자 헌병대가 동원되어 진압에 나서는 상황에 이르렀다. 야당인 캄보디아구국당은 폭력 진압을 비난하며 5일 100만 명이 모이는 반정부 집회를 개최하겠다며 압박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훈센 정권은 공수부대 투입이라는 초강경 대응책을 들고 나온 것이며 그 시기는 5일 이전이어야 했고 대상은 노동자들이었다. 반정부 시위의 중심에 노조가 있고 불법 파업이라는 딱지를 붙여 폭력 진압에 어느 정도 면죄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만 놓고 보면 훈센 정권의 계산이 맞아떨어졌다. 학살로 얼룩진 현대사 속에서 깊게 뿌리내린 폭력에 대한 공포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캄보디아구국당은 희생자가 더 나올 것을 우려해 5일로 예정되어 있던 반정부 시위를 취소했다. 노조 지도자들은 모두 피신 중이며 야당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파업 선동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민주주의의 내재적 모순과 민주주의의 퇴행

훈센 정부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부이지만 지극히 비민주적인 정부다. 소위 선거 권위주의라 불리는 정치 체제다. 선거 권위주의 체제는 주기적으로 선거를 치르고 그 결과에 따라 정부를 구성하기 때문에 마치 민주주의 체제인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주기적 선거 자체가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선사하고 선거 승리는 ‘편안한 독재’를 보장하는 합법성과 정통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포기할 의사가 추호도 없는 권위주의 정권은 필요하다면, 혹은 습관적으로 선거 과정을 불법과 탈법으로 뒤틀고 심지어 결과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선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선거는 평화적 정권 교체라는 본원적 기능을 상실한 요식행위로 전락하여 권위주의 정권의 장기 집권을 돕는다.

 

2013년 7월에 치러진 캄보디아 총선은 선거 권위주의 체제의 본질과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선거였다. 관권 개입, 유권자 명부 조작, 불공정한 선거구 획정, 심지어 집계 조작 등 온갖 교묘한 수단이 동원되어 결코 공정한 선거라고 볼 수 없는 선거를 통해 훈센 정부는 수명을 재차 연장했다. 부정선거를 의심하는 가장 뚜렷한 근거는 야당이 요구하는 독립적 기구를 통한 조사에 대해 훈센 정부가 결사반대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선관위가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훈센의 인민당이 68석, 캄보디아구국당이 55석을 얻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의심스러운 집계 결과를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양당의 득표율 차이가 4.37%에 불과해 조사 결과에 따라 승패가 뒤집어질 가능성도 있어,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의 미미한 착오와 실수라는 익숙한 변명만으로는 부정선거 의혹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캄보디아구국당은 6개월째 등원을 거부하며 부정선거 조사를 요구해왔지만 훈센의 인민당은 선거 불복 프레임을 덧씌우며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그동안 미숙한 정치적 판단으로 인해 동력을 상실했던 캄보디아구국당은 이제 노골적인 정권 퇴진 운동으로 선회했고 이에 노동자들이 적극 동조하면서 최근의 대치 정국이 전개되었다. 상황이 훈센 정부에 불리하게 전개되는 듯하자 훈센 정부는 가장 익숙한 해법, 즉 폭력으로 대응하면서 유혈 참사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원칙적으로 모든 구성원에게 동등한 정치 참여의 기회를 보장한다. 여기에는 민주주의 파괴도 불사하는 비민주적 구성원들도 포함된다. 이들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게 되면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절차와 가치를 무시하며 무자비한 폭력 행사를 포함해 초법적 그리고 탈법적 행위를 일삼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면 되지만 이들이 선거 과정과 결과를 왜곡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면 현실적으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즉 민주주의는 선거 권위주의를 배태할 가능성을 그 원칙 속에 품고 있다. 그 가능성은 구성원 절대다수가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불가침의 원칙으로 확립하고 내면화한 사회에서만 사라질 수 있다. 최근 다수 국가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퇴행 현상은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의 내재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새롭게 대두된 과제는 선거 권위주의 체제의 민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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