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13-03-19   7021

[아시아 생각] 인도의 버스 집단 성폭행 재발을 막는 길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인도의 버스 집단 성폭행 재발을 막는 길

[아시아 생각] 제57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를 다녀와서

정경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공동대표

 

2013년 3월 4일부터 15일까지 뉴욕에서 제57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가 열렸다. 이번 회의의 주제는 ‘여성과 여아에 대한 폭력 철폐와 예방’이다. 총 131개 회원국이 참석하고 약 6000개의 NGO가 참가 등록을 하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무엇보다 석 달 전 인도 델리에서 23세의 여성이 버스에서 강간당한 후 사망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해 회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사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인권 문제로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투쟁이 있었다. 유엔이 주도적으로 이 주제를 제기하고, 국제적으로 이에 대한 관심을 높여 여성에 대한 폭력이 공공 영역에서 논의될 수 있었다. 특히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회의와 뒤이은 유엔 총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을 채택해 전 지구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와 관련해 유엔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러나 2003년 유엔 여성지위위원회는 이 주제와 관련한 합의문 채택에 실패한 바 있고, 따라서 이번 회의에서는 이를 위해 정부 사이의 합의를 강력히 촉구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여성의 70%는 육체적 폭력이나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 성폭행 피해자의 50%는 16세 이하의 소녀들이다. 수많은 여성들이 아버지, 남편, 오빠, 선생님, 동료나 상사로부터 신체적 폭력이나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 6억300만 명의 여성들이 가정 폭력을 범죄로 취급하지 않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회의 기간 동안 여아들의 조기 강제 결혼, 생식기 절단,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을 조롱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을 막으며 가정·교육·작업장에서 폭력을 정상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문화적 관습, 강간이 무기가 되는 분쟁과 분쟁 이후 사회에서 여성의 취약성 등이 토론되었다.

 

이 기간 동안 필자가 관심을 갖고 지켜본 분야는 군사주의와 관련한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였다. 군사주의와 젠더 폭력의 관계와 관련해서는 ‘여성·평화·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문 1325호’가 중요하다. 1325호는 분쟁에서 여성과 여아 보호, 모든 정책 결정에서 여성의 대표성과 참여 확대, 분쟁 및 성폭력 예방 그리고 분쟁 이후 과정과 유엔 평화 유지 활동에서 성 인지적 관점(gender perspective)을 포함하고 있다.

 

이번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회의에서는 군사주의와 관련한 여성 폭력 문제에 대한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었다. 먼저 3월 6일 코리아정책연구소, 연합감리교여성국, 여성을 위한 국제 기금 공동 주최로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한 여성들의 리더십'(Women’s Leadership to End the Korean War) 토론회가 열렸다.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가 유엔 안보리에서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 열린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기간 중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는 유일한 행사였다.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전쟁의 결과와 군사화가 여성들에게 끼친 영향을 점검하고 여성들이 왜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지,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조명한 회의였다.

 

이 토론회에서 뉴욕시립대학 스테이튼섬 캠퍼스의 김호수 교수는 한국전쟁, 해외 입양, 그리고 생모들의 삶을 소개하며 한국전쟁 발발 이후 혼혈자·혼외자에 대한 정부 시책으로 해외 입양이 추진됐다고 설명했다. 전후 한국의 개발과 해외 입양을 연결시켰고, 그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20만 명 이상이 해외 입양됐다는 것이다.

 

필자는 한국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한 한국 여성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비무장지대를 넘어 남북 사이의 화해 활동으로서 남북 여성 교류,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여성들의 공동의 이해를 찾는 동북아여성평화회의, 여성 평화 안보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 이행을 위한 여성 단체의 활동 등을 소개했다.

 

코리아정책연구소의 크리스틴 안은 재미 동포로 미국의 대북 정책을 검토하면서 미국이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해 리더십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탈북 여성의 비참한 현실을 이야기하며 한국전쟁이 끝난 평화로운 한반도를 소망한다는 자신의 꿈을 발표했다.

 

이 회의에서 연합감리교여성국의 이정옥 사무부총장은 한반도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공동 행동을 제안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2년 동안 매월 첫째 주 수요일에 공동 행동을 열고 서울과 미국에서 시작해 점차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자는 제안으로 행사 내용은 정보 공유, 행동, 시위 등 그 지역에 맞게 시행해 보자는 것이다.

 

둘째, 3월 4일 신일본부인회와 ‘전쟁 성폭력 반대 일본 네트워크’에서 주최한 ‘무력 분쟁에서 성폭력 근절’이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2000년 유엔 안보리 의장으로서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 채택에 주도적 역할을 한 초도리 대사,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여성 국제 전범 법정’의 의장이었던 인다이 사조르, 신일본부인회의 에미코 히라노가 발표했다.

 

아베 신조 수상이 취임한 후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연행을 부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여성 단체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최한 회의였다. 회의 참가자들은 8월 14일을 ‘분쟁 상황에서 성폭력을 반대하는 국제 행동의 날’로 제안하고 참여를 촉구했다. 초도리 대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 이행을 위한 국가 행동 계획의 채택을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1325호 국가 행동 계획을 채택하겠다고 일본 NGO활동가들에게 밝혔다고 한다.

 

셋째, 3월 4일 연합감리교여성국, 여성평화형성자국제네트워크 등이 주최한 ‘폭력, 경제와 전쟁: 이론에서 행동으로’ 토론회가 열렸다. 조지아, 콩고민주공화국, 온두라스 등 분쟁국 여성들이 이 토론회에 참가해 각자의 경험을 나누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선 자연자원을 둘러싼 부족과 종족 갈등으로 인해서 500만 명이 사망했다. 사망자의 다수는 여성과 어린이이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강간당했다고 한다. 또한 에너지를 둘러싼 조지아와 러시아의 분쟁으로 수많은 국내 난민이 나왔다. 국내 난민으로서 난민 여성 지원 활동을 하는 여성의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온두라스는 인구 10만 명당 82.1명이 살해당하는 세계 1위의 살인율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로 마약, 무기 밀매, 성매매 등이 성행해 인권이 취약한 나라이다. 온두라스의 넬리는 ‘마약과의 전쟁’과 연계된 미국의 정책, 군사주의, 여성에 대한 폭력 등을 구조적인 시각으로 설명하며 여성 인권의 문제를 군사화의 문제에서 바라볼 것을 요청했다.

 

또한 이 회의에서 베티 리어든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전쟁과 무력 분쟁에 통합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 이행을 촉구했다. 다양한 형태의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의 제한된 정치 권력과 연결되며, 여성들이 평화와 안보 정책을 포함해 모든 공공 정책 결정에 남성과 동등하게 참여하지 않는다면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감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325호의 보편적 이행이 무력 분쟁, 전투 및 전투 이후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가장 필수적인 수단임을 강조했다.

 

넷째, 3월 7일 국제평화연구소, 국제시민사회행동네트워크, 노르웨이 유엔 대표부가 주최한 ‘비전과 목소리: 여성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 한 참가자는 이라크 전쟁의 비참한 결과를 이야기하며 20세기에서 21세기로 가는 우리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기를 원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참가자들은 인간 안보, 인간 존엄, 인권을 고려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건설적인 비폭력 행위자가 될 것을 요청했다.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기간 동안 행진은 토론회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행사다. 참가자들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유엔 본부 주위를 행진한다. 이날은 눈이 많이 와 비행기가 연착하는 등 교통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여성들은 ‘여성 폭력 철폐’를 외치며 눈 속에서 시가행진을 했다.

 

정경란

ⓒ정경란

 

이러한 노력으로 제57차 연례총회 폐막식에서 여성 인권 증진을 촉구하는 공동 합의문을 채택했다. 이 합의문은 여성과 어린이들에 대한 폭력을 강하게 규탄하고, 여성 폭력 철폐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대응과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즉 성적 자기 결정권 존중과 여성의 부인과 진료권 보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폭력을 당한 생존자에게 심리 치료, 상담, 사회적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 제공과 함께, 여성 폭력 가해자 처벌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데이터와 증거 제공을 향상시킬 것을 제안했다.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2주의 기간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철폐하고 예방하기 위한 정부와 정부 사이, 정부와 NGO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시간이었다. 이 과정은 세계의 절반인 여성과 여아를 위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정부 간 합의를 통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철폐하기 위한 정부의 임무는 더욱 막중해졌다. 이제 정부가 행동해야 할 때이다.

 

또한 여성 폭력의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개발은 여성들의 진보에 의존한다. 평화·평등·발전을 위한 진정한 진보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여성과 여아를 위한 진보에 동참해야 하며 이들과 함께하는 진정한 진보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 폭력 철폐를 위한 길에 많은 남성이 동참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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