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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9.11.23
  • 740

신남방정책, '외교 슬로건' 을 넘어서야

[아시아생각]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특별해야 하는 이유

 

김형종/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한-아세안 대화 관계 수립 30주년 기념 특별정상회의와 제 1차 한-메콩 정상회의가 오는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부산에서 개최된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참석이 끝내 성사되지 못했지만 이번 특별정상회의와 관련해서는 여러 기대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통해 아세안과의 대화 관계를 4강 수준으로 격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앞두고 10개국을 모두 방문하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향후 한-아세안 관계의 비전도 채택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경제협력을 넘어 광범위한 협력 강화를 위해 신남방정책 2.0 비전도 모색 중이다. 

 

신남방정책이 내건 사람(people), 번영(prosperity), 평화(peace), 이른바 3P 원칙은 아세안 공동체가 지향하는 사람 중심과 사람 지향의 공동체 건설을 위한 평화, 번영, 진보라는 가치와 일치한다. 그러나 아세안 사례가 그러하듯 실제 신남방정책의 추진 과정은 핵심 가치의 실현과 거리가 멀다.  

 

아세안과의 평화협력은 방산협력 또는 무기 수출 강화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2019년 3월 발표한 <국제무기거래동향, 2018>에 따르면 지난 2014~2018년 한국은 세계 무기 수출국 11위로 동기간 무기 수출은 2009~2013년 기간보다 94% 증가했다. 한국의 주요 무기 수출 지역은 신남방정책 대상 국가들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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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리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 경찰이 22일 이륜전기차를 타고 경비를 서고 있다. ⓒ연합뉴스 

 

 

새로운 협력 모델과 대안적 동아시아 질서 모색해야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아세안 국가들과 방산협력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무기 수출은 아세안 국가들의 군비경쟁을 심화시킬 수 있다. 나아가 '치안유지'를 명분으로 사용된 한국산 무기로 무고한 민간인 피해를 야기할 수도 있다. 지난 2017년 필리핀 정부는 무장단체 IS 추종 세력 소탕을 이유로 민다나오 섬 마라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전투기와 헬기를 동원해 대대적인 폭격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 수십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소탕 작전에는 한국산 전투기 FA-50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통해 외교 다변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여전히 강대국 중심의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북미간의 대화와 관계 개선은 진전이 없으며 남북 관계도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신남방정책의 '조화로운 협력'을 표방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전략에의 편승과 이를 신남방정책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은 개발협력 등 경제적 요인을 함께 표방하고 있지만 그 본질이 대 중국 견제 전략에 지나지 않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대해 아세안은 인도·태평양이 갈등과 경쟁이 아닌 평화와 교류의 공간이 되어야 하며 아세안의 중립성과 중심성을 반영한 '아세안 전망(outlook)'을 밝힌 바 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선택적 상황에서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이른바 투트랙 전략의 비현실성은 이미 지난 사드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 아세안 국가들은 아세안 차원의 중립성을 표방하며 미중 어느 일방에의 편승을 거부하고 있다. 신남방정책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협력'하고 있다면 신남방정책에 대한 진정성에 대한 의심은 물론 전략적으로도 아세안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아세안과의 '조화로운 협력'을 통해 미중 간 갈등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지역의 평화를 견인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해서도 아세안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이번 김정은 위원장 초청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두 차례 개최된 북미정상회의는 그 성과를 떠나 아세안의 역할 가능성을 높였다. 한-아세안 대화에 북한이 합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아세안과 북한의 대화를 의미한다. 북한도 아세안 대화 상대국이 되기를 원하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도 관련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2000년 북한의 아세안안보포럼(ARF) 가입도 1차 남북 정상회담을 통한 화해 분위기 속에서 가능했으며 이는 남북이 동시에 참여하는 다자안보채널로 남아있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나아가 동아시아 차원의 비핵화 논의도 아세안과 함께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은 1995년 '동남아비핵지대화조약'에 서명했다. 북미간 협상이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세안과의 논의를 통해 동아시아 비핵지대화 등 다자안보체계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과 미국 등 당사국의 국내정치적 상황에 따른 변수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약속 이행에 대한 압력도 증대시킬 수 있다. 비핵화의 전제 조건은 핵 보유국가가 핵무기 선제 불사용(No first use)을 약속하는 것에 있는 만큼 지역적 차원의 비핵지대가 창설될 경우 강대국의 약속을 받기 수월할 것이다.  

 

'공동번영'의 가치도 화려한 경제 관계 전망 속에 자칫 일방의 번영만을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정부는 2020년 교역 규모 20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다. 현재의 추세를 고려하면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다. 우리의 무역수지 흑자 폭도 함께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에 대한 고려는 구체적이지 않다. 최근 인도네시아에 이어 말레이시아 그리고 필리핀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아세안 FTA가 이미 발효되고 사실상 RCEP 타결을 선언한 시점에서 개별 아세안회원국과의 FTA 추진은 오히려 FTA의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이른바 '동아시아 국수그릇(여러 나라와 동시에 FTA를 체결하면 각 나라마다 다른 원산지 규정 적용, 통관절차, 표준 등을 확인하는데 시간과 인력이 더 들어 거래비용 절감이라는 애초 기대효과가 반감되는 현상을 말한다)' 효과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무역으로 흑자를 기록하고 이를 개발 협력으로 되돌려 주겠다는 구상은 이미 오래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개발협력에서 민간기업의 무분별한 참여는 라오스 댐 붕괴 사고에서 보듯이 개발협력 분야마저 대기업의 이윤 추구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국제개발협력에서 협력대상국의 필요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그 수요는 권위주의 정부와 결탁한 대기업의 것으로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신남방의 공동번영을 통해 개발협력 공여국으로서의 책무성과 투명성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사람' 중심은 근본적인 목표와 지향임에도 불구하고 민간 인적 교류로 의미가 축소되는 듯하다. 테러, 마약 등 초국가적 범죄에 대한 대응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와 정부의 안보만이 아닌 개개인과 공동체의 안보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경제협력의 과정에서도 승자 독식이 아닌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들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도 공동으로 모색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는 아세안과의 협력에 있어 아무 문제가 아닌 듯 간주되고 있다. 로힝야 사람들의 박해를 외면하고 있는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 고문 및 외무장관이 한 대학에서 미얀마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예정이다. 아세안 헌장은 인권 증진과 민주주의, 법치 등의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다수의 아세안 국가에서 진행되는 권위주의화 속에 미국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모두 침묵하고 있다. 민주주의 퇴행 속의 정부 간 협력은 억압받는 다수와 소수 정치 엘리트층과 대기업간 연대에 그칠 수 있다.

 

신남방정책이 정권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외교 슬로건'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사람, 평화, 공동번영의 가치를 다시 새기고 새로운 협력 모델과 대안적 동아시아 질서를 모색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이번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이 특별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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