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12-09-18   7592

[아시아 생각] 한국의 노동 역사를 알려줬던 무니르 – 무니르 사이드 탈립을 추억하며

 

*한국은 아시아에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해있는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 해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각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뿐만 아니라 유엔과 인권, 개발과 인권, 기업과 인권 등 여러 분야에 대한 국제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올해 9월 7일은 인도네시아 활동가 무니르 사이드 탈립(Munir Said Thalib)이 살해된지 8년이 된 날입니다. ‘용맹’과 ‘총명’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 무니르는 노동운동, 국가폭력반대운동, 과거사청산운동, 안보기관개혁운동에 헌신함으로써 수하르토 독재의 몰락과 민주주의 진전에 기여했고 인도네시아 최고의 인권활동가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무니르는 2004년, 석사 학위 공부를 위해 네덜란드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이후 2005년, 당시 비행기 조종사가 유죄를 선고 받았으나 인권단체들은 조종사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며 실제 가해자는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전히 배후에서 무니르 살해를 조종했다고 믿어지는 묵디 뿌르워쁘란조노(Muchdi Purwoprandjono) 전 인도네시아 국가정보원(BIN) 부원장은 심판대에 오르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쓴 필자는 무니르가 네덜란드로 떠나기 전까지 함께 활동했던 인도네시아 활동가입니다. 지금은 무니르가 죽기 전 설립한 단체인 임파샬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지요. “활동가들은 주말에도 쉴 수 없어. 노동자들은 주말이 유일하게 쉬는 날이니 우리는 주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러 가야해”라고 말하며 1주일 내내 하루도 민중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선배 활동가 무니르를 추억하던 필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시아 생각] 한국의 노동 역사를 알려줬던 무니르 – 무니르 사이드 탈립을 추억하며

 

퐁키 인다르티 임파샬 인도네시아 사무총장 

 

“퐁키, 한국에서 오는 참여연대라는 단체를 만나는 걸 잊지마. 그들이 내일 우리를 방문할 거야. 엄청난 단체지. 인도네시아의 YLBHI(인도네시아 법률지원재단, the Indonesia Legal Aid Foundation)의 한국판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들이 내일 한국의 노동 운동에 대한 경험을 공유할 거야. 나는 내일 만남에서 왜 한국 노동 운동이 그렇게 강력한지에 대해 꼭 듣고 싶어. 나는 이 경험을 새로운 지식으로 쌓아갈 거야!”

 

나는 아직도 무니르를 기억하고 있다. 약 18년 전 무니르는 참여연대에서 세 명의 활동가가 우리 단체인 LBH Surabaya(수라바야 법률 지원 협회, Surabaya Legal Aid Institute)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1994년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우리 사무실을 방문한 것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외국에서의 한국 기업 활동을 모니터링 하고 국제 연대 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방문이기도 했다.

 

무니르는 나에게 참여연대를 비롯한 한국 단체들을 소개시켜준 이다. 그 당시, 나는 LBH Surabaya에서 노동 분야를 다루던 새내기 활동가였고 무니르는 나의 선배였다. 그는 나에게 노동 운동을 조직하는 것을 포함해 법정에서 어떻게 노동 사건들을 변호하는지, 어떻게 국내외 캠페인을 조직하는지 등에 대해 가르쳐줬다. 그는 1980~1990년대 한국의 노동운동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풀뿌리 단위에서부터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으로 동 자바(East Java)에서의 노동 운동을 조직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최대한 많은 학생들이 노동 운동 조직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한번은 그가 나에게 한국에서는 젊은 친구들이 한국에서의 정치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이 자신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 등 노동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데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대학생들이 노동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기업에 위장취업을 한다고도 이야기했다.

 

1995년,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사무실을 방문한지 1년 후, 무니르는 YLBHI의 부대표로 승격되었다. 나는 그를 대신해 Surabaya의 노동팀 팀장으로 일하면서 참여연대와의 관계를 이어갔다. 참여연대의 전제성씨가 수라바야의 노동 운동에 대한 주제로 2000년도의 박사 논문을 쓰기도 했다.

 

2001년, 나는 YLBHI의 노동팀 팀장으로 옮겨갔다. 나는 그곳에서 2004년 9월, 그가 살해당하기 전까지 그와 함께 일했다. 그는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Utrecht) 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 특별 정보 요원에 의해 살해 당했다.

 

8년이 지난 지금, 무니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대담하고 용감한 활동가였던 무니르는 안보 분야의 개혁과 인권 문제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비판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항상 전방에서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정부 관계자들이 무니르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고 인권활동가로서의 그의 활동 때문에 무니르가 살해당했다고 믿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수실로 밤방 요도요노 대통령은 2004년 말 무니르의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 위원회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무니르의 죽음은 인도네시아가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인지 아닌지를 인정받을 수 있는 역사적 심판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니르가 죽은지 8년이 지나도록 정부는 단 한 명의 가해자만 심판대에 세웠다. 그는 2004년 9월 6일 무니르가 탄 비행기를 운전했던 조종사였다. 그러나 주요 가해자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남부 자카르타 지방 법원의 재판관들은 2008년 12월 31일 묵디 뿌르워쁘란조노(Muchdi Purwoprandjono) 전 인도네시아 국가정보원(BIN) 부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여전히 무니르의 죽음과의 연관성을 의심받고 있는 인도네시아 국가 정보원 고위 관계자들은 경찰의 조사를 한번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다.

 

퐁키와 무니르

▲ 무니르(왼쪽)가 네덜란드로 떠나기 직전(2004년 9월 6일) 공항에서 필자 퐁키 인다르티(오른쪽)와 함께 찍은 사진.ⓒ퐁키 인타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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