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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0.01.18
  • 496


국제개발협력기본법 제정과 시민사회의 과제

지난해 우리나라 대외원조사업은 두 가지 사건을 계기로 커다란 전환기를 맞았다. 한국 정부가 OECD 개발원조위원회의 스물네 번째 회원국이 된 것이 그 첫 번째다. 국제사회가 인간 중심적 원조를 위해 원조 효과성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 공여국의 지위로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은 지구촌의 좋은 이웃으로 살기 위한 기분 좋은 첫걸음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이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동시에 아직 여러모로 서툰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원망이라도 사지 않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형적으로 반도이기는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섬과 같이 고립된 나라에서 반세기 이상을 살아온 한국 사람들이 '세계시민'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와 한계가 있다. 아직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과 가난에 대한 경시가 그것이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보다는 '우리보다 어떠어떠하다'는 식의 비교를 앞세워 차별화하며 다른 나라를 바라보던 냉소적인 시선이 개발협력이나 국제 관계에 고스란히 반영되리라는 우려를 쉽게 떨칠 수가 없다.

아쉽게도 한국 정부는 훌륭한 공여국이라고, 국제개발협력 사업에서 인권적 접근의 원칙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아직 한국 정부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인프라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전환기를 맞는 계기는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의 제정이다. 양적·질적 개선을 추구하고 분산 추진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외원조기본법이 3년 넘게 국회에서 표류하다 12월 29일 국제개발협력법이라는 명칭으로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통과된 기본법이 학계와 시민사회의 일관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부처간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여전히 비효율적 분산체계를 유지하고 있음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본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도 유상과 무상원조의 이원화된 집행은 비효율성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근본적으로 국제사회가 동의한 국제개발원조사업의 취지를 몰각하고 자원외교와 같이 자국 경제를 위한 수단으로 오용될 가능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일단 기본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시행령을 손보는 과정만을 남기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시민사회는 올해부터 기본법에 의거한 대외원조사업의 수행을 꼼꼼하게 감시해야 한다. 사업 대상의 선정과 절차 곳곳에서 국익을 앞세우는 관행이 많이 남아 있는 등 체제 정비나 문제에 대한 근본적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 ODA가 확대되는 것이 오히려 아직까지 돌출하지 않았던 문제를 출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시민사회는 개발협력 사업에 필요한 충분한 전문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초보자 격인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첩첩산중인 것이다. 개발원조 관련 학과와 강좌가 몇몇 대학에서 열리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학계의 연구는 광범위한 국제개발학의 분야와 지식 정보의 측면에서 비교해 보자면 시민사회단체의 ODA 감시 사업만큼이나 초보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 분야는 시민사회단체의 활동뿐 아니라 지역 전문가와 개발 전문가들의 긴밀한 협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곳이다.

경제 위기와 유례없는 실업난, 비정규직들의 대량해고 등 서민들의 등허리를 휘게 하는 조건속에서 2010년 대한민국은 G20 5차 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다. 세계를 이끌어 가는 G7과 신흥 경제국이라 일컬어지는 13개 나라의 정상들이 모여 국제적인 의제를 논하는 회의를 G7이 아닌 대한민국에 유치한 것에 대해 정부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홍보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체제의 정착, 신흥개도국을 위한 금융안전망 구축, 저소득국에 대한 지원, 기후변화 등의 의제를 다루게 될 "부유국들의 세계살림 걱정모임"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에 대한 판단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단발적인 회의의 개최가 곧 "한국적 가치"를 세계가 재평가하는 계기는 아닐 것이며 국제사회리더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정초부터 언론에서 우리가 자주 접하는 단어는 "국격"제고이다.

사람의 품격도 마찬가지이지만 나라의 품격이 거리를 단장하고 국제 회의를 개최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올라가고 멋있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국제금융기구 출자지분을 GDP 대비 1.95% 수준으로 상향조정하고(2011년), ODA예산을 지난 해 10억달러에서 2015년 30억 달러로 늘린다고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을 존경하게 되는 것은 아니며, 유수 국제회의와 체육대회를 자주 유치한다고 "국가브랜드" 가 제고되고 이미지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이 국가의 품격을 브랜드화 시켜 상품가치가 있다고 믿어서라기보다는 국민들이 스스로 한국 국민임에 자부심을 느낄 때 국격이 제고되는 것이다. "글로벌 시민의식"은 해외여행을 자주 다닌다고 해서 함양되는 것이 아니고 이해관계를 떠나 평화와 인권, 타문화에 대한 존중이 수반되어야 함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격 제고 사업은 대외적으로 한류와 한글을 홍보하는 한편 대내적으로 국제이해교육이 확산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90년대 동남아 지역에 진출했던 한국 기업이 자행했던 낯 뜨거운 인권 침해와 노동탄압, 현지 문화에 대한 몰이해를 기억해야한다. 같은 시기에 이주노동자들이 처했던 비인간적인 노동조건과 저임금 때문에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것은 아주 오래된 과거가 아니며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현재형 일상이다.

개발도상국의 경제인프라와 사회인프라가 한국의 대외원조사업으로 구축되고 이 나라들이 스스로 빈곤을 떨치고 잘 사는 나라가 되도록 한국이 ODA 를 확대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또 앞선 기술과 경험을 전수하는 것도 마땅히 지구촌 이웃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이 좋은 취지로 시행하는 사업들로 수원국의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 대규모 공사로 인한 환경과 생태파괴도 없어야 하며, 비자발적 이주로 인해 현지주민이 사회경제적인 불이익을 당해서도 안된다.

아시아는 한국과 함께 지난 10년 전의 외환 경제 위기와 2년전 미국발 경제 위기의 후유증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아시아의 이웃들에게 한국이 건네야 할 것은 우월한 과거의 행적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에 공감하고 손을 내밀어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의 제정과 ODA의 확대를 환영하면서도 한편 살얼음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다. 2004년에 그랬던 것처럼 아프간 재파병이 아시아의 이웃들에게 갈 지원을 대신하는 것은 아닌지. 2010년 중점 지원국이 된 베트남의 국민들이 하노이의 홍강이 청계천이 되는 것에 동의하는지, 한국경제발전 공유사업(KSP)으로 받은 컨설팅이 적절한 것인지 따져보고 수원국의 국민들에게 원치 않는 선물 보따리를 안기는 것은 아닌지. 2010년에 많은 밤을 꼬박 밝히면서라도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양영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국제연대위원회 준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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