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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0.10.18
  • 1913


5.18기념재단은 2000년에 광주인권상 시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국제연대를 추진한지 10년 만에 국내에서 가장 포괄적인 국제연대 프로그램을 갖춘 단체가 되었다. 해마다 아시아 인권운동단체의 대표에게 상금과 함께 수여하는 광주인권상 뿐만 아니라, 아시아 인권단체들에게 운영자금을 지원하고, 국제인턴활동가를 장기간 받아들이고 또한 보내는가 하면, 아시아 활동가들을 초청하여 인권문제에 관한 단기연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5.18 피해자가족들을 모시고 아시아 인권단체들을 방문하고, 아시아와 국내의 인권운동가들과 학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대규모 토론회인 광주아시아포럼을 5월에 개최하는 등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규모의 측면에서 단연 국내 최고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그 적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필자는 그간의 국제연대가 양적인 성장과 실험의 과정이었고 이제 그렇게 10년이 흘렀으니 그 적실성을 따질 때가 되었다고 본다.
 
 
5.18의 국제적 의미는 무엇인가?

재단의 국제연대활동은 최근 한국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그러하듯이 아시아연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덕분에 상당수 아시아인권운동가들에게 5.18이란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이 친숙해 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공감하는 5.18과 광주는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폭력에 맞선 광주시민들의 용감한 저항과 시민정신,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것으로 그 역사의식이다. 국가폭력의 잔혹성은 아시아의 도처에 서려있다. 폭력에 맞서는 결사항전도 각지에서 전개된 바 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곳에서 그러한 용감한 저항은 민주화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국가폭력을 과거에 묻어두지 않고 진상을 조사하고 가해자들의 책임을 묻고 피해자들을 보상하고 나아가 기념하고 교육하는 ‘기억의 정치’를 지속시켜온 경우는 드물다.

광주를 찾은 아시아의 활동가들은 아르헨티나나 남아공까지 멀리가지 않아도 가까운 한국에서 5.18기념재단 사업과 같은 선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폭력과 반폭력 항쟁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광주처럼 진실을 찾고 정의를 구현하고 그것을 기억하고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하곤 했다. 바로 그것이 5.18이라는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이 이웃나라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분투하는 활동가들에게 매력적인 이유이다.

몇 년 전 5월에 광주를 찾을 때 톨게이트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도시, 광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란 용어가 5.18정신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맥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일반개념으로 넓혀가면서 5.18의 선명하고 구체적인 내포가 흐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5.18 다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국가폭력에 대한 항쟁, 폭력피해자들에 대한 연대, 그리고 (인도네시아 인권운동단체들의 구호로 표현하자면) “망각에 대한 저항”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국제연대도 5.18의 이러한 핵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특수성이 더욱 빛을 발하는 방향의 연대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아시아의 인권운동가들이 한국 사회운동에 바라는 바는 각양각색이고 종종 추상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5.18과 관련된 희망사항은 하나의 구체적인 요구로 집약된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피해자보상, 기념사업으로 이어지는 국가폭력에 대한 진실과 정의의 추구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5.18기념재단의 국제연대는 아시아 각지의 역사 속에 가해진 국가폭력의 진상을 조사하고, 반폭력 시민저항행동의 역사를 발굴하며, 책임자처벌과 기념사업 추진의 방안을 공동 모색하는 연대활동을 핵심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5.18의 근본성격에 기반을 두는 활동이어서 뿌리가 튼실한 동시에 아시아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들에 도전하는 옹골찬 기획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역사는 국가폭력에 의한 ‘학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묻어두고 앞으로 나아갈 것만을 재촉하는 ‘불처벌의 역사’를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치부를 끈질기게 들추고 따지는 전위로서 5.18기념재단이 우뚝 서기를 바라며 그것이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광주가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국제연대를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복잡한 이웃효과 속에서 살고 있다. 캄보디아의 국가폭력은 광주에 대한 국가폭력을 자극했을 것이고 필리핀의 민주화는 한국의 민주화가 임박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이웃한 아시아의 민주옹호세력들과 연대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위한 국제연대를 기획하고 추진할 때 우리는 자칫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고 결과적으로 비현실적이고 비효과적인 국제연대활동을 낳을 수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한국의 특수한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듯이 타국의 민주화는 그 나름의 맥락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활동가들은 일반적으로 이웃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지식이 부족하면 독특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되면 적절한 연대의 매개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자민족중심주의는 역사적 단계에 맞지 않는 제안으로 연결될 수 있다. 민주화에 막 돌입한 나라에서 과제로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정당을 결성하고 선거를 치르고 의회를 구성하며 그 의회의 견제를 받는 새로운 민주국가를 여하히 건설할 것인가 인데, 그런 나라의 활동가들에게 의정감시를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를 논제로 꺼내면 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한국 활동가들은 근원적 갈등에 대한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종교간, 종족간 갈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곤 하는 상황에 처해있지만 우리는 이에 대한 첨예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지지 않는 국제연대를 모색할 방법은 무엇인가? 그 출발은 진지한 경청과 세련된 대화이다. 아시아로부터 인턴들이 파견되고 단기연수생이 방문하고 발표자들이 온다. 그들에게 듣고 배워야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방식으로 함부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일반화는 과거 서양의 근대화 이론가들이나 작금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취하는 위험한 태도이다. ‘우리나라의 60-70년대랑 비슷하다’는 식의 생각과 발언도 금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길을 그대로 따를 것이고 우리는 그들의 미래에 관한 답을 갖고 있다는 착오적이고 오만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련된 대화를 해야 한다. 세련된 대화란 겸손하고 느긋하게 예의를 지켜가며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곤경에 처한 지역에 대하여 배우고  열심히 길을 찾는 친구들을 얻고 국경을 초월하여 함께 맞서야 하는 과제를 간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국제연대활동을 추진하는데 배움이 없다면 효과도 적고 아깝다는 생각도 들게 될 것이다.

5.18을 근본정신으로 삼는 국제연대가 자선사업처럼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아시아 각국의 인권운동은 대체로 우리보다 국제연대의 역사가 길고 국제화도 앞서 있다. 그래서 세계 각지로부터 지원의 손길이 닿고 있다. 우리도 그들처럼 원조를 제공하는 것으로 족한가? 그러기에는 우리의 지원은 규모가 조촐하고 반면에 우리의 열망은 더 깊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간의 금품으로 큰 시혜를 준 것처럼 행동하거나 할 바를 다 한 것처럼 자족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국가폭력의 피해와 그에 맞선 줄기찬 저항의 경험을 그들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힘이고, 그것이 우리가 그들과 연대하는 이유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폭력피해자들, 그 가족들, 그들을 옹호하며 진실과 평화를 추구하는 아시아의 활동가들과 진정한 친구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국제연대로부터 얻고자 하는 보상이어야 한다.
 

전제성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이 글은 5.18재단에서 발행하는 잡지인 <주먹밥> 29호(2010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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