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11-05-26   3948

[강좌후기] 방콕이 레드와 옐로우 셔츠로 뒤덮였던 이유

[강좌후기] 방콕이 레드와 옐로우 셔츠로 뒤덮였던 이유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민주주의의 어제와 오늘

참여연대 아시아강좌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민주주의의 어제와 오늘’ 의 첫 강의가 열렸다. 주제는 ‘태국의 민주주의’로 태국에서 22년째 살고 있는 정문태 기자의 강연이 있었다. 나는 수강자뿐만 아니라 앳된 모습의 고등학생들도 강연에 참석한 것을 보고 놀라면서도 흐뭇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보다는 이런 생생한 이야기가 시험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지언정 앞으로의 삶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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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태국의 진실

2008년쯤, 나는 한 주간지 표지에서 노란 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태국 사람들이 친탁신, 반탁신파로 나뉘어 공항을 점거하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는 정도로만 그 사건을 알고 있었다. 그 무렵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던 선배는 호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꼬박 호텔에서 여행의 반을 보냈다며 투덜거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 태국의 시위를 동남아의 민주주의 문제다 뭐다 해서 국내 언론에서 많이 다루었었다. 그러나 수많은 기사와 보도를 찾아봐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그래서 도대체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가?”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누구의 편도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정문태 기자는 태국 시위의 성격을 단호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바로 빨간셔츠와 노란셔츠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왕을 앞세운 노란셔츠나, 탁신을 지지하는 빨간셔츠 양측 모두 사실상 ‘거대자본의 대리전’ 양상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는 두 집단의 대표인 국왕과 탁신의 속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부처’라고 불리는 태국의 국왕은 입헌군주제 하에서도 군 통수권, 사면권을 갖고 있다. 특히 ‘불경죄’를 통해 자신을 보호함은 물론 상대 세력을 견제할 수도 있다. 태국 왕실은 아편거래 대금이라는 검은 돈을 통해 부를 축적했으며, 현재도 사우디 왕가에 이어 두 번째로 부유한 왕가로 꼽히고 있다.

탁신은 치앙마이에서 하원의원 출신인 사업가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예비사관학교 10기생으로 경찰에 입문한 탁신은 이후 사업가로 변신했지만 하는 사업마다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에서 제일가는 재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장사보다는 로비와 협잡에 능했기 때문으로 이를 통해 각종 사업에 대한 독점권을 취득하면서 거대 자본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탁신과 국왕의 대립

자본과 자본의 만남은 화합보다는 충돌을 만들기 마련이다. 2001년 총리로 선출된 이후 승승장구 하던 탁신은 자본만이 아니라 자신의 세력을 군부, 언론 등에 심으면서 국왕도 누려보지 못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 태국 국왕의 심기가 불편한 것은 당연했을 거 같다.

태국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군부’이다. 이들은 항상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워 쿠데타를 일으키곤 했다. 하지만 실제 군부의 쿠데타는 자본권력을 좇는 군부의 허울 좋은 변명에 불과했다. 태국의 군부는 탁신과 왕실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군부는 탁신보다는 자본과 명분을 모두 갖춘 왕실을 선택하면서 2006년의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었다. 2006년 쿠데타 이후 2010년까지 4년 동안 국방예산이 400%가 증액되었다. 반면 1998년 ‘똠양꿍 크라이시스’라고 불리는 태국발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부터, 군부 쿠데타 이전인 2005년까지 국방예산은 총 15% 만이 증액되었다.

태국의 진보 지식인층은 국왕과 손을 잡고, 태국 최대 빈민층은 재벌과 손을 잡은 형국이 되었다. 즉 태국의 옐로우 셔츠와 레드 셔츠의 대립은 이념과 개념이 없는 잡동사니 정치판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정문태 기자는 좌파의 역할을 우파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 시민사회에 그 대안을 알려 주는 것이라고 본다면, 지금 태국의 좌파는 양분되어 사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탁신을 지지하는 좌파 중에선 단계혁명론, 비교우위론 등 해괴한 논리를 들고 나오고 있는데, 정치개혁보다는 부패한 탁신을 지지하고 있는 이들은 양자택일론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문태 기자는 20여년간 태국에 거주하면서 직접 보고 들은 경험을 통해 현재 태국 정치 상황의 허구성과 그 기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중간 중간 왕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 우리는 이 대화 때문에 태국 입국을 금지당할 겁니다.”라고 말하며 참여자 모두를 웃게 만들었는데 어쩌면 이것이 태국 정치의 현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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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국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그렇다면 태국에서는 왜 이런 우스꽝스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태국의 인민들은 어찌하여 자신들의 계급을 배반하는데 동참하고 있을까? 정문태 기자는 이에 대해 언론과 학자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유달리 태국에 대한 오해가 많다. 국왕 권위에 대한 오해, 군부에 대한 오해,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오해 … 예컨데 식민지배와 관련된 부분을 잠시 생각하더라도 당시 인도에서 동진하던 영국과, 베트남에서부터 서진하던 프랑스가 태국을 완충지로 두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형태(‘중앙청’에 깃발만 달려 있었지)만 유지되었지, 아편 거래에 대한 징수권을 갖는 것 이외에 조세제도는 영국에 복속되어 있었다.

1940년대 태국은 일본군과 1시간 40분간의 교전만 있었을 뿐, 이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군사기지, 교통 통신에 대한 사용권을 일본에게 양도했다고 한다. 과연 이런 나라가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인지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올 것이라는 게 정문태 기자의 지적이었다.

 ‘중앙청에 국기만 내걸어’놓고라도 나라의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의 성급한 판단으로는 바로 왕실의 존재 때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헌법이라는 틀에 제약받기는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태국의 왕가는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이 왕정 철폐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왕실은 조세징수권 등 국가의 모든 기반시설을 내주고라도 허울뿐인 통치체제를 유지하려고 했을것이다.

나 역시 이 발언으로 태국 입국이 금지 당할지는 모르겠지만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왕실에 대한 비판이, 방콕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조금씩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있는 나야 ‘외국인’이고 ‘외부세력’에 불과하겠지만 그렇더라도 태국의 시민들이 부디 옳은 정치적 선택을 하기를 기원하게 된다.
작성자: 이승훈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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