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09-10-05   805

‘MB노믹스’와 ‘탁시노믹스’

사회적 신자유주의와 포복형 권위주의


신자유주의로 규정되던 ‘MB노믹스’의 ‘변화’가 얘기되고 있다. ‘비지니스 프랜들리’를 강조하던 이명박 정부가 민생과 서민을 위한 경제를 강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어찌보면 매우 ‘합리적’이다.


경제의 정상화를 위해 성장 중심의 경제가 수반하는 ‘눈물의 계곡’이 불가피했고, 그 ‘계곡’을 어느 정도 넘어섰다고 판단되자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분배의 정치를 시도하는 위기 해결 경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대표적인 케인즈주의 학자가 현 정부의 총리로 임명된 것은 ‘분배의 정치’로의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지난 1998년 경제위기 국면 속에서 한국에서 50년 만에 여야 정권 교체가 실현되자 이를 두고 ‘위기를 매개로 한 공고화’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지금의 국면에서 일각에서는 위기를 매개로 한 보수적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우려한다.


물론 어느 한 정치학자가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 간의 권력 교환의 안정화’라고 정의하면서 이를 시계추 운동에 비유했을 때, 이 ‘시계추 효과’의 원리는 집권세력의 경제적 수행 능력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이었다. 진보든 보수든 경제 관리에 실패했을 경우 ‘정적’에게 권력을 내놓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의 궤도 수정은 ‘정치사업’으로서 손색이 없는 기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궤도 수정이 그동안 낮은 포복으로 진행되던 국가권력의 자유권 침해 문제에 대한 반성없이 진행될 경우 이는 ‘MB노믹스’의 ‘탁시노믹스화’라고 아니할 수 없다.


탁신의 타이애국당은 2001년에 기존 집권세력인 민주당의 신자유주의노선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등에 업고 제 1당으로 급부상했다. 국내 경제와 세계 경제와의 관계, 서민 경제와 자본주의, 이 두 개의 트랙을 동시에 발전시키겠다는 탁시노믹스(Thaksinomics)는 과거에 찾아 볼 수 없었던 케인즈주의 처방을 동원한 포퓰리즘 노선이었다. 구체적으로 탁시노믹스의 친서민 정책은 농가 채무지불유예, 저가의 기초의료서비스 공급, 농촌개발기금 후원 등이 실행되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탁신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호응의 일환으로 민영화와 FTA를 추진하였다. 이러한 복합노선(dual track)의 탁시노믹스는 ‘사회적 자본주의’, ‘불교사회주의’, ‘사회적 화합’ 등과 같은 담론의 지지를 받으며 급부상하였다. 급기야 두 번째 맞는 총선에서 탁신의 타이애국당은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다수의 지배를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탁시노믹스의 정치는 ‘사회적 화합’이라는 그럴듯한 이념과는 달리 남부지역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테러, 마약소탕을 명분으로 한 비사법적 처형, 언론과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규율 등 비자유주의적 양태를 점차 강화하기 시작했다. 선거에서의 승리라는 절차적 정당성을 등에 업고 이른바 ‘포복형 권위주의'(creeping authoritarianism)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이렇듯 ‘포복형 권위주의’ 양상과 같이 진행된 탁시노믹스의 정치적 효과로 인해 시민사회, 지식인과 사회운동세력 내부가 분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수도인 방콕의 유권자들은 탁신이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도시로부터 세금을 걷어 농촌에 쏟아붓고 있다고 비난했고, 포퓰리즘의 최대 수혜계층인 농촌 유권자들은 탁신의 비자유화 경향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반면 지식인과 사회운동진영도 탁신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과거 군사독재에 빗대면서 맹공을 퍼붓는 세력과, 탁신의 친서민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이들을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는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특히 직접민주주의와 직접행동을 강조하는 공동체주의자들은 탁신의 ‘정치적 상술’에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고강도의 공세를 폈다.


반면 일부 탁신 지지세력은 직접민주주의를 시대착오적 것으로 간주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갖고 있는 탁신을 매개로 한 공화주의적 정치변혁을 꾀하였다. 마침내 이러한 인식의 격차는 반탁신진영이 탁신을 권좌에서 내쫓은 반헌정 쿠데타를 지지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한 반면, 탁신 지지세력은 군부가 휴지조각으로 만든 1997년 헌법의 복원과 탁신의 복귀를 요구하는 직접행동에 나섰다.


탁시노믹스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수용과 사회적 약자의 역량 강화라는 다분히 상충되어 보이는 두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사회적 신자유주의'(social neo-liberalism)에 가깝다. 그러나 타이 사회운동은 의회에서의 다수의 지배를 배경으로 ‘포복형 권위주의’와 함께 진행되는 사회적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조직화에,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지적, 실천적 합의에 실패했다.


이제 한국 사회로 눈을 돌리자면 ‘MB노믹스’의 ‘합리적’ 변화로부터 탁시노믹스와 같은 ‘포복형 권위주의’와 짝을 이룬 ‘사회적 신자유주의’가 연상케 됨을 숨길 수 없다. 그러기에 타이에서와는 달리 한국의 사회운동이 사회적 신자유주의와 다수의 지배라는 두 얼굴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는 패러다임을 조직해낼 수 있느냐에 아시아 사회운동은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박은홍(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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