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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대위원회    국경을 넘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합니다

  • 칼럼
  • 2006.12.08
  • 505
올 7월 새로 이전, 개장한 인천시립박물관에 ‘김보섭의 화교 이야기’라는 사진전이 열렸다. 사실 여기에 전시된 사진들은 김보섭의 새 작품들은 아니다.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주최하는 국제 심포지엄 ‘화교, 세계화의 주역’(2006.10.20)을 위해 지난 1995년에 전시했던 사진들을 다시 모아 전시한 것이다. 글로벌 시장경제 속에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오랫 동안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었다고 할까 더 솔직하게는 다소 천시되기까지 해 왔던 화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화교경제권, 화교네트워크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화교가 경제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한국에서, 동북아의 허브라는 경제적 목표 하에, 각 지역 지자체들이 화교경제 유치에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런 맥락 속에서, 인천뿐 아니라 부산, 목포, 대구에서까지, 화교는 지역문화의 콘셉트로 새삼스레 ‘발견’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시 불려나온 십여 년 전의 사진들을 둘러보면서, 마음 한 켠에 어딘가 씁쓸했다. 10년 전 작품전시회 도록 『청관(淸館)』발문에 쓰여 있듯이, 그의 사진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오마쥬’이지,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다는 화상네트워크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금간 시멘트 벽, 녹슬은 함석 지붕, 오래된 미닫이 문, 때묻은 부엌……. 그 빛바랜 동네, 주름 패인 노인들의 얼굴은 시간의 풍화를 묵묵히 버텨 온 그들의 가난한 삶의 역정을 소리없이 전해준다. 한 때 제물포항의 대외 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했다는 이 청국 거상(巨商)의 후손들은 청일전쟁(1894)과 러일전쟁(1904)의 패배라는 시련을 거치면서, 중화제국의 몰락과 함께 쇠잔해 갔다. 사진 속 회색 동네, 한 때 번영과 활력으로 들썩였던 청관 거리는 간데없고, 그들의 고된 삶의 흔적만 덩그마니 남아 있다.

그런데 이런 몰락한 청상(淸商)의 이야기가 그의 작품전의 전부는 아니다. 사진전의 매력은 그것을 바라보는 한국인 작가 김보섭의 시선에 있었다. 이국 땅에서 평범하고 고요하게 진행되는 그들의 일상 속에서 작가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더 나아가 작가는 인천 화교들의 고향인 산동성까지 찾아가 그들의 삶의 뿌리를 담고 싶어했다. 한국의 이국인이자 유일한 소수민족인 화교를 다룬 그의 작품들을 보면, 그들의 주름진 삶 구석구석에 ‘우리’가 묻어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고되고 해맑은 삶의 자국은 우리의 삶 속에 패인 주름이다. 낯선 복장과 생활 소품들을 한 이국인의 표정은 어느 틈엔가 친숙하고 편안한 이웃이 되어 인천인의 생활세계로 귀환한다. 그들은 우리가 겪었던 세월을 함께 겪어왔던 것이다. 식민이라는 시련의 세월을 그들도 같은 땅에서 우리와 함께 거쳤고, 전쟁, 분단, 냉전의 어두운 터널을 우리와 같게 혹은 다르게 공유해 왔다. 시간에 풍화되어 화석화되어가는 옛 청관에 대해 작가가 갖는 애잔한 심경은 그저 타인에 대한 동정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요사이 차이나타운을 살리자는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지역 내 화교 주민들에게 여러 모로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의들이 혹 지역 내 화교를 대상화하고 소외시키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최근 지역문화론이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로 동원되면서, 지역 내에 살아있는 문화적 숨결들을 오히려 덮어버리지는 아닐지. 당연히 차이나타운을 살리기 위해서는 화교 상권을 살려야 하고 그런 면에서 경제논리를 떠날 수 없다. 다만 거기에 결락되어선 안 되는 것은, 차이나타운은 화교가 이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삼기 위한 정신의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석화되어가는 청관의 역사를 복원하고 그것이 지역 내 생활 속에서 자유롭고 발랄하게 숨쉴 수 있게 해야 한다. 요즘 자주 회자되는 문화혼종성(hybridity)은 사실 어려운 말이 아니다. 차이나타운은 인공도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화교의 삶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과 하나로 뒤얽혀 흘러 온 여정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흔적을 기억하는 것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정체성(identity)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백지운(인천문화재단, 연세대 중문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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