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08-04-07   793

<아시아 생각> 필리핀 활동가가 생각하는 아시아연대

성공회대에서 1년간 아시아 NGO연구과정을 마치고 참여연대에서 한 달 동안 인턴으로 활동했다. 한국어를 잘 못해 사람들과의 교류가 다소 어려웠지만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한국인을 직접 사귀면서 한국에 대한 인상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인들은 수줍으면서도 친절하고 공손했다. 한국인의 수줍음은 아마도 언어장벽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만 이런 점이 내게 큰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때로는 그저 미소나 목례를 교환하는 것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 2008년 2월, 참여연대 제14차 총회에서 제시카

성공회대에서 공부할 당시, 동네에서 여러 친구들을 사귀었다. 중국음식을 배달하던 친구, 동네 세탁소를 운영하던 친구,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던 이웃 아저씨와 아줌마도 있었다. 이들과는 쉬운 영어와 한국어, 손짓으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루는 세탁소 아주머니와 10 여분 동안이나 더듬더듬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헤어질 때쯤 서로를 잘 이해했다는 충만한 느낌은 인상적이었다. 그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그는 지금쯤 내가 필리핀으로 돌아가리란 것을 떠올릴 것이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는 이유는 언어 장벽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돕는 것에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아시아 연대는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가. 이 질문과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아시아란 무엇인가?’, 즉 아시아의 정체성이다. 아시아 연대는 아시아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공부한 아시아 활동가 중에는 아시아라는 정체성마저도 서양 제국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아시아의 정체성을 말할 때 먼저 우리는 각 아시아 국가들이 갖는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다양성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광범위한 개념이지만, 어떻게 하면 아시아 연대를 할 수 있는지 아시아 활동가의 한 사람으로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심으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아시아의 민주주의 과제


아시아 민주주의 모델은 여전히 개념을 만들어가는 단계에 있다. 서양의 민주주의 모델은 실패작으로 보이고, 아시아는 선거 민주주의와 굿 거버넌스에 관해서 순탄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많은 국가들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소수 엘리트 민주주의가 행해지고 있으며 일반인들은 선거공간에서나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수준이다. 시민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약속하는 공약은 시종일관 깨지거나 힘을 가진 정치인들에 의해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말레이시아는 아직도 민주적인 선거시스템을 이루기 위해 투쟁하고 있으며 반면, 필리핀,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은 민주적인 선거체계로 전환되었다. 물론 그 선거개혁은 미완성이고 정치 개혁은 더욱 그렇다. 중국의 민주주의는 그들의 모델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관망하는 정도이다. 싱가폴이나 브루나이 같은 국가는 시민 사회 단체의 정치적 압박을 받지 않고 있는데 이는 시민의 자유라는 화려한 수사보다는 경제적 안정이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가져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시아 각국에서 진정한 민주적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계급제도는 철폐되어야 하고 동시에 개혁에 대한 전체론적 접근이 필요하다. 대다수의 빈민과 소외된 자들의 이익을 대표하지 못하는 자들이 계속 선출되는 이상, 현실은 매우 어두울 것이다. 높은 선거비용과 일부 특권층을 위해 작동되는 선거는 불공평한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민주적인 선거체계를 갖추지 못한 국가의 유권자는 부패한 정치가에게 투표권을 행사하기 쉽다. 불균등한 민주적 권리가 작용하는 선거의 장은 오직 엘리트와 힘을 가진 자에게만 유리할 뿐이다. 설령 일반 국민들이 투표에 의해 그들의 의사를 표명하더라도 소수의 정치적 기득권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결과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정부가 정착한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으며 민주적 변화의 움직임은 위협받고 있다. 민주적인 시민참여가 이어지지 못한 채 시민참여는 오히려 견제 받고 있다. 민주적인 정부 체계의 작동원리인 ‘견제와 균형’은 결여되어 있거나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태국이나 필리핀의 활동가의 경우는 권력감시자로서의 과제와 동시에 급변하는 정치적 환경 앞에서 활동가 집단의 독자적인 의사결정이나 전략수립을 유보한 채, 공동대응을 해야 하는 때도 많다. 또한 진보세력의 분열도 문제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엘리트권력에게 힘을 더해주는 셈이다.
 


인권이 왜 중요한가


사회운동단체와 NGO가 인권에 주목하는 이유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인권유린과 폭력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40년대 서부식민지에 대항하는 해방운동, 60년대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평화운동, 70년대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진행된 독재권력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 이어져왔다. 이러한 운동의 역사가 말해주는 시대적 책무를 민주주의와 인권존중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지도자들이 이해하고 따르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많은 아시아 국가의 정부는 인권에 대해 서구적 개념으로 파악한다. 즉, 아시아적 가치를 존중하기 보다는 오히려 해체시켜 재정립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인권과 아시아의 가치관 논쟁에 대한 내 의견은 이렇다. 


인권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아시아의 가치와 문화에서 인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정부가 정치적 신념이나 민족, 성적선호, 자유로운 표현과 연대활동을 이유로 국민을 죽이고 있다면 인권은 실종된 것이다. 아시아는 아시아가 갖는 핵심적인 가치에서 인권을 물려받았다. 다만 문제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있는 몇몇 소수에 의해 인권의 가치가 잘못 해석되는데 있다. 인간 존중의 가치를 왜곡하는 것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잡으려는 욕망 때문이며,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변명으로서의 서부의 개념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사회운동가들은 인권신장과 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국가의 민주주의 상황은 인권옹호활동을 지체시키고 복잡하게 만든다. 많은 국가에서 인권침해를 교묘하게 벌이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론 무장저항단체가 인권 학대를 범하는데도  비난없이 그냥 넘어가고 있다. 이는 인권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받는 중요한 도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정부가 이미 서명하고 비준한 인권 협정과 조약에 책임을 지도록 지속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시민들은 더 많이 알고, 주장하고, 자신의 인권을 최대한 향유해야 하며, 이를 위한 우리의 노력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부의 몫이다. 이것은 여전히 정부의 책임이고 시민사회단체와 NGO도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힘을 보태야 한다.  즉, 정부 시스템과 정치영역이 올바로 기능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시스템들이 제대로 기능할 때, 비 정부 기구와 사회 단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우리의 노력은 국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데 있어 더 많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아시아 활동가로서 우리는 각자의 나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동시에 버마 같은 다른 아시아 국가의 민주주의 투쟁에 연대하고 지지해야 한다. 단순한 연대성명이 아닌 의미 있고 전략적인 정치적 지지로 격려했던 지난 경험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직접 대면을 통해서만 회의하고 교류하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 우리는 웹사이트와 전자우편으로 국경을 넘어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각종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연대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연대란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질 때 가능하고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시아에서의 진정한 연대를 바란다면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보다 많은 독창성과 지속성과 인내심으로 함께 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 제시카 우마노스 소토 (참여연대 인턴, 성공회대 아시아NGO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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