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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0.08.17
  • 1941

부패스캔들, 수사는 하지만 해결은 없다?

인도네시아 2009년은 선거의 해였다. 1998년 민주화 이행 이후 세 번째로 맞는 국회의원선거와 2004년 최초 직선제 대통령 선거 이후 두 번째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었다. 우선 인도네시아 민주주의는 세계적 차원에서 인구 및 국토면적에 비추어보았을 때 인도, 미국에 이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세 번째로 큰 민주주의 국가의 위상을 갖는다. 또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는 여타 다른 동남아 국가와 비교해 보았을 때 민주주의 이행과 공고화의 상대적인 성공사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가 20세기 후반을 지나 모든 국가에서 ‘따라 가야할’ 정치체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편성을 갖고 있지만, ‘어떤’ 민주주의 정치체제이어야 하느냐라는 맥락에서 특수한 측면도 갖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결사체민주주의, 심의민주주의 등등의 ‘어떤’ 민주주의냐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인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민주주의 논의에서 쉽게 간과되었던 지점은 ‘사회문화적 토양과 역사적 경험’의 요소이다. 민주주의가 정치체제(political regime)라는 측면에서, 정치체제란 국가와 시민사회 관계의 법제도적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기존 논의에서는 법과 제도를 잉태하는 사회문화적 기초에 대한 인식이 매우 많이 결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서구적 경험에서 ‘개인자유의 우선성’이라고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선택적 친화성을 갖고 있다면, 가족 및 종교, 마을 공동체성을 우선시하는 아시아적 경험은 서구와는 다른 민주주의 형태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특수한 사회문화적 기초에 바람직한 ‘어떤’ 민주주의 유형이냐를 논하기 이전에, 오히려 현실에서는 비민주주의 정치체제로부터 이행한 국가들에서 민주주의를 진전 또는 심화시키기 어려운 현실적 제약조건들에 부딪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롭게 형성된 민주주의 법.제도와 시민 의식 및 인식 사이의 괴리현상이라든가, 민주주의 기대와 정당정치현실 사이의 지체현상이라든가,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한 경제적 조건의 문제 등등 현실적 제약요소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 중의 하나는 권위주의적 정치유산으로서 구(舊)체제 지배엘리트 지속성으로 만들어진 정치적 관행의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1998년 민주화 이행 이후 인도네시아 정치체제는 ‘과두제적(oligarchic)’ 민주주의로서 그 한계를 지적받고 있다. 고전적 정치이론에 의하면 ‘과두성’과 ‘민주성’이 한 체제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 모순적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제3의 민주화 물결이후 제3세계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는 민주적 요소를 갖고 있으나, 구체제 지배엘리트의 견고성,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민주적 요소’와 ‘권위주의적 요소’가 혼재한 상태의 정치체제의 특징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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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소재 데모스(Demos: Center for Democracy and Human Rights Studies) 단체는 실증적 연구를 통해, 과거 권위주의체제의 지배엘리트들이 민주화를 통해 공적인 제도 영역 내에서 정치세력화를 성공함으로써, ‘과두제 민주주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하자면, 인도네시아에 적용된 ‘과두제 민주주의’란 민주적 정치기구들이 지배엘리트에 의해 포획된 체제를 말한다. 이러한 과두제 민주주의로 인해 민주주의 심화를 제약시키는 요소 중의 하나는 ‘부패구조청산’의 어려움이다. 제3세계 신생민주주의 국가가 민주주의로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부패구조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반부패와 민주주의는 상관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제와 다당제 의회민주주의에 기초한 인도네시아의 경우, 작년에 있었던 총선과 대통령 선거 정치과정을 통해 공직자들의 충원 절차를 민주적으로 이루어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2010년 초반은 2009년 조용한 총선과 대통령 선거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정세가 전개되었다. 작년 두 번째 대통령 직선제로 대통령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와 부통령 부디오노(Boediono) 정부가 지지율 59.44%로 올해 출범하였으나, 집권 100일 만에 매우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경험하였던 것이다. 자카르타를 시위로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일명 센츄리 은행(Bank Century) 스캔들로 명명된 부패스캔들이다. 이 사건은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의 여파로 부실 경영을 겪고 있는 센츄리 은행에 6.7조 루피아(7조 달러)의 공적자금을 긴급지급한 일로서, 이러한 결정에는 유도요노의 핵심측근 세력인 부통령 부디오노와 재정부 장관(Menteri Keuangan)이었던 스리 물리아니(Sri Mulyani)가 있었다. 당시 부디오노는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총재였고, 스리 물리아니는 재정안정위원회(KSSK: Komite Stabilitas Sistem Keuangan) 위원장으로 긴급자금을 지원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공적 자금을 지원할 만큼 센츄리 은행이 위기 상태였는가, 또 센츄리 은행의 부실이 인도네시아 경제위기에 미치는 영향이 과연 그렇게 컸을까, 그리고 그 공적 자금 규모의 면에 있어서도 너무 크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의혹의 핵심은 이 돈이 2009년 선거를 위해 현 집권당인 민주당(Partai Demokrat) 선거자금으로 흘러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주장에 있었다. 또한 그 책임선이 유도요노 대통령에게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국회 안과 밖에서 정치적 공방이 강도 높게 진행되면서, 국회 내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조사된 바 있다. 정부의 부패스캔들로서 국회 내 유도요노 정부의 반대 정치세력과 국회 밖 유도요노 반대 정치세력은 정치적 공세를 가했었다. 그러나 현재 이 사건은 작년 12월부터 약 4개월간의 뜨거운 정치적 공방으로 인해 대통령 탄핵 담론까지 형성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재정부 장관인 스리 물리야니가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장관직을 하차한 것 외에는 뚜렷한 사건 처리 없이 국회에서 법원으로 넘어간 사건이 되었고, 2010년 8월 이 사건은 정치적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측면에서 센츄리 은행 부패 스캔들을 통해서 지적하고 싶은 내용은 민주화 이행 이후 2002년 부패방지위원회(KPK: Komisi Pemberantasan Korupsi)가 만들어지고, 인도네시아는 ‘반부패 개혁’ 이슈를 국가적 차원에서 다루어왔고, 정치 이슈화하기도 하였지만 뚜렷한 민주적 해결 없이 매번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권력구조 안에서 부패스캔들이 논의되고, 조사되고, 수사되지만 사건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앞에서 지적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과두제성 때문일 확률이 높다. 민주적 기제와 기구들이 지배엘리트에 의해 포획되었기 때문에, 일정정도는 법과 제도에 따라 논의, 조사, 수사는 되지만, 물론 미흡한 논의, 미흡한 조사와 수사이겠지만, 결과적으로 판결, 심판, 집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 이행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인도네시아 부패방지위원회의 위력과 역할이 저조해진다는 것은 역으로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하여 제3세계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심화, 확대발전시키기 위해서 지배엘리트의 비순환성 즉, 구엘리트의 지속성, 구지배엘리트에 의한 민주적 기구의 포획성으로 표현되는 민주주의의 과두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관건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인식, 제도, 토양 등 매우 다양한 요소들의 상호결합으로 만들어진 정치적 결과물이기 때문에, 비약적인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변화과정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점진적인 내용적 변화를 위해서라도 ‘누구나에게 인정된’ 정통적인 민주적 법과 제도의 형식적 틀의 강화와 보전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경희(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이 글은 프레시안 [아시아생각]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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