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07-11-20   1155

<아시아 생각> 그들은 왜 도시로 몰리나

필리핀 남부통근철도사업 이주지역 이야기

필리핀 수도 메트로마닐라에서 남쪽으로 50㎞ (시간거리 2-3시간) 떨어진 카부야오란 지역에는 사우스빌(Southville)이라는 재이주 마을이 있다. 한국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자금을 지원 받아 필리핀 정부가 진행하는 남부통근철도 개선사업과 관련해서 이주된 7000가구가 넘게 살고 있는 곳이다.

왜 이주해온 주민들은 아직도 도시로 출근할까?

매일 아침 새벽, 특히 월요일 새벽 1시경에는 이 마을에 ‘지프니'(짚차를 개조한 대중교통 수단) 들이 즐비하게 서서 사람들을 기다린다. 한 대에 24명에서 30명을 가득 태우면 메트로 마닐라로 향하는 이 지프니는 25대 가량이지만, 가고자 하는 사람을 다 태우기에는 부족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3시간 가량 차를 타고 이 마을로 이주하기 이전에 직장이 있었던마카티로 향한다. 야심한 시간을 이용하여 이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은, 극심한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이 교통수단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매일 출퇴근하기에는 교통비 부담이 있어, 집안의 가장들은 도시에서 작은 방을 세 내어 살다가 주말에만 집에 돌아온다. 주말이면 북적북적 하던 마을이 주중이 되면 텅 비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5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이주했던 이 주민들은 왜 아직도 메트로마닐라로 힘겹게 매일 출퇴근을 하고 있을까? 철로변에서 위험천만하게 살던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넓은 동네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철도 개선 프로젝트는 메트로 마닐라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위험천만 철길 옆이 오히려 좋다는 주민들

▲ 경제개발 원조를 받아 교외지역으로 이주한 필리핀 마닐라 빈민들은 위험천만한 지역이어도 오히려 도시가 좋다고 한다. ⓒ천리
카부야오에 이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마카티나 마닐라 시의 철로 주변에 무허가로 살던 사람들이다. 아직도 철길 주위에 사는 사람들은 그 지역이 살기에 좋다고 한다. 낙후되기 그지 없고 위험해 보이는 철길 근처가 좋은 이유는, 그 지역에는 살아갈 수단이 있다는 것이었다.

건설노동자이거나 빨래를 해 주거나 노점상을 하더라도, 도시에는 일단 생계 수단이 있으며, 의료, 교육, 수도, 전기 등의 기초 시설에 대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건소가 있으며 도시의 공립학교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교육의 받을 수 있다. 불법이긴 하지만 주변에서 전기나 수도를 끌어 쓸 수 있으며,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자선 혜택을 받기도 수월하다.

2007년 3월, 카부야오에 있는 주민조직 코사리카(KOSARIKA)는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시 이주된 6800가구 중에 4000가구가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수도는 오전 15분과 오후 15분에만 제한적으로 공급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3445명의 학생인구에 대해서 초등학교, 중등학교를 포함해 56명의 선생님만 있을 뿐이라고 한다.

더욱이 아직도 80%의 인구가 메트로 마닐라에서 직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주장은아직 이주지역이 여러 서비스면에서 완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므로, 한국정부는 필리핀정부에게 공여되는 차관지급을 유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2007년 5월 한국의 재정경제부는 ‘철로변 거주민에 대한 적절한 이주대책의 마련과 이행이 이 사업에 대한 지원의 전제 조건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 국제개발기구 소속 이주전문가에 의뢰하여 이주현황과 이주단지의 생활여건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또한 한국정부는 이주단지의 생활 기반 시설 조성 등에 대한 의사가 있으나 수원국이 거부하고 있다는 입장을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 공적개발사업, 시행착오 겪는 일본 전철 밟을라

한국 정부는 2003년 12월 3500만달러 가량의 차관(연 2,5% 이자, 상환기간 30년) 지원을 약속한 이후, 정책 상에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프로젝트의 직접 영향을 받는 주민들에게는 환영을 받고 있지 못하다.

상당부분,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임은 필리핀 정부의 몫이지만, 공적개발원조의 기본 취지를 고려한다면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공적개발원조 사업은 국제적으로 2001년 UN이 상정한 MDGs(Millennium Development Goals)의 달성과 같이 한다. 이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의 빈곤 근절을 최우선목표로 삼고 있지만, 선진국들의 공적개발원조 사업은 타국에 대한 자국의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은 공여국의 후발주자로서 원조자금의 비율을 급속히 올리고 있지만(2006년 기준, 4400억 원, GNI의 0.05%), 무상원조에 비하여 유상원조의 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높으며(2006년 기준, 32%), 차관제공시 재화와 서비스 공급주체를 공여국이 제한하는 구속성 원조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2003년 기준 80.6%) 우려를 갖게 한다.

유상원조나 구속성원조 비율이 높다는 사실과 복지부문보다는 경제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높은 비중을 둔다는 점은, 이로 인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일본의 원조정책의 전철을 밟고 있지 않냐는 빈축을 사게 하고 있다. 원조 사업이 수원국의 외채 상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면, 원조 사업의 실제 수혜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경제개발이 실제 빈민들에게 어떤 영향 끼치는지 고민해야

철거 일시를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메트로 마닐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지역으로 이주되기를 바라며 정부와 협상해 보기도 하고 주민조직을 결성하여 대항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가 카부야오에 이어 두번째로 이주지역으로 제시한 곳은 시간거리 4~5시간이나 되는 카비테 지역이며 이미 2000가구 넘게 이주되어 있다.

경제개발을 통해 빈곤을 감소한다는 정책이, 실제로 빈민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정법모(필리핀대학 인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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