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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07.11.03
  • 978
필리핀에서 지낸 지 두어 달 쯤 됐다. 마닐라에 머물며 아시아엔지오센터 연수에 참가하고 있다. 연수는 주로 필리핀시민사회단체를 방문해 활동을 소개받고 필리피노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이뤄진다. 이런 기회를 통해 조금씩 한국과는 또 다른 사회를 알아가고 있다. 필리핀을 통해 한국을 다시 보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도 된다. 필리핀에 온 뒤 내내 나를 붙잡는 의문이 하나 있다. 사회 전체가 가난으로 휩싸여 있는데도 초연하고 행복한 필리피노들을 발견해서이다. 절대빈곤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가난을 넘어서게 하는 또 다른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필리핀은 생각보다 참 가난하다. 한 달 전 쯤 마닐라의 대표적인 빈민지역 중 하나인 바세코에 들어가 3일간 지낼 기회가 있었다. 바세코는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온 사람들로 형성된 마닐라 만 옆 도시빈민 밀집지역이다. 마침 내가 간 때는 우기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길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데다 아무데나 버린 오물들이 빗물에 뒤섞여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각종 쓰레기와 오물이 가득한 거리, 슬리퍼도 신지 못한 채 오물에 찬 거리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10평도 안되는 집에 7-8명 이상의 가족이 지내고, 그나마 이런 집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최소한의 의식주도 해결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그들의 처지는 비참하다. 더구나 이런 환경에 노출된 어린이들의 모습은 더욱 안타깝다.

가난의 흔적은 필리핀에서도 가장 열악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바세코에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만난 한 영어학원 선생은 8년을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남편과 아이까지 세 식구가 생활하기가 힘들어 사설영어학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런 말도 했다. 필리핀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직업이 없다고. 필리피노의 유일한 희망은 이곳을 떠나 해외로 나가는 것뿐이라고 했다. 해외로 탈출하는 것이 마지막 보루라고 말하는 그나마 먹고살만한 필리피노의 말에서 필리핀 사회에 퍼진 빈곤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느껴진다. 차라리 마르코스 시절은 이렇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네들을 보면서 더 이상 정치도 그 어떤 사회적 여건도 빈곤의 문제 앞에서 우선일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빈곤의 정도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놀라운 점은 많은 필리피노들이 밝고 태연하다는 것이다.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국제통계로도 필리핀의 행복지수는 최상위권을 다툰다. 또 이 사회는 아직 스트레스란 용어가 일반화되지 않았다. 아이러니다. 도대체 이런 절대빈곤 앞에서도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해 하는 걸까, 과연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진다.

몇 명의 필리피노에게 물었다. 필리피노들이 어떻게 빈곤을 감내하는지, 더구나 행복할 수 있는지. 2년째 바세코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한 대학원생은 필리피노가 행복한 건 끈끈한 그들의 가족관계 때문이라고 했다. 가족과의 정서적인 유대, 물질적 지원이 힘든 조건에서도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 영어학원 선생은 그것이 필리피노의 천성적인 스타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필리피노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들의 행복감 이면에 혹시 부당한 현실을 용인하고 현재의 삶을 합리화는 의식이나 문화는 없는지도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필리핀은 1960-70년대 만해도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경제적으로 2위의 국가였다. 또한 1986년과 2001년 두 차례의 민중혁명을 경험한 국민들로 민주주의 대한 의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빈곤, 소수 엘리트층의 지배구조,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를 묵인하고 현실을 용인하는 것은 잘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필리핀 사회가 스페인, 일본, 미국으로 이어지는 긴 식민의 역사, 전체의 90%를 차지하는 가톨릭의 영향, 710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된 국가, 뭘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열대기후 등 우리와는 다른 조건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온 그들만의 문화의 독특성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다른 역사와 전통, 문화로 형성된 필리핀의 문화와 가치, 의식을 존중한다. 동시에 왜 이런 문화를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다. 그것은 이들의 보다 나은 삶은 위해서이고, 또한 내가 찾는 행복의 조건, 건강한 사회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정지인(아시아NGO센터 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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