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08-01-08   588

<아시아 생각> ‘사회적 아시아’를 향한 상상

한국 진보, 국가주의·민족주의를 넘어라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이 스쳐간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공고화’를 둘러싼 갈등이 전개되고 있다. 태국에서는 군부쿠데타로 민주화의 과정이 ‘역전(逆轉)’되었던 반면에 2007년 12월 총선에서는 다시 쿠데타로 쫓겨난 탁신당이 ‘국민의 힘당’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단 다수당으로 재부상하였다. 한국에서는 ‘신보수정권’ 시대의 개막이라는 형태로 민주화에서 또다른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아시아 민주화의 최대의 문제는, 많은 아시아 나라들에서 민주주의 이행을 통하여 정치적 경쟁구조로서의 선거민주주의가 등장했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권력분점이나 경제적・사회적 독점의 해체나 완화로 이어지지 못함으로써 민주주의가 새로운 독점적 질서의 변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독재 하에서 사회경제적 하위주체들은 새로운 ‘민주주의적인 정치적 형식’ 하에서 새롭게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주변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 하나의 현상으로, 많은 아시아 나라들에서는 인종적・사회적 균열선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때로 더 큰 정치적 폭력에 의해서 다양한 사회경제적 하위주체들과 소수자들이 배제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 경험하고 있듯이 민주화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결합되면서 소득분배의 악화, 양극화의 심화, 계급적 불평등의 심화 등을 동반하는 민주주의의 왜곡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위기와 위협을 의미하고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민주화’ 혹은 필자의 표현으로는 ‘민주주의의 사회화(socialization of democracy)’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는 민주주의를 사회와 일체화시키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 즉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형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구성원들의 요구(demands)와 권리(rights)를 더욱 폭넓게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민주주의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형식 속에서 존재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력의 독점을 사회적경제적 하위주체들에게 평등한 방향으로 탈독점화하고 평등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의 아시아’에 대응하는 ‘민중적 아시아’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

이러한 민주주의의 사회화는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재 민주주의 발전의 병목지점을 돌파하고 진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과제가 한국민주주의 자체를 분석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관점을 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지평에 확대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사회화를 위한 실천이 일국적 차원 뿐만 아니라 아시아적 차원에서도 시도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사회적 아시아(Social Asia)’의 논의를 제기하고 있다.

사회적 아시아는 개별 아시아 사회 내에 존재하는 시민사회 및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힘에 기초하여 아시아 민중들의 사회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아래로부터의 연대에 기초하여 구성되는 새로운 초국경적 아시아의 성격과 지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시장 자율보다는 시장에 대한 공적・정치적 규율, 국가안보가 아니라 인간안보, 경제정책에 의한 사회정책의 희생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에 의한 경제정책의 조정, 생태적 지속가능성 등 시민사회적 가치와 지향을 실현하기 위한 초국경적 차원의 사회적 규율질서를 형성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별 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나 민중들의 요구를 시장논리에 의해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시아적 질서를 그러한 요구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재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기존에 개발독재에 싸우면서 나타난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정신이 일국적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아시아를 형성하기 위한 ‘정신적 에토스’로 표현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자본이 주도하는 아시아의 초국경적 통합이 진전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자본의 아시아’가 구체화되어가고 있다. ASEAN+3와 같은 형태의 신자유주의적 아시아통합도 진전되고 있다.

초국경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인 것이 분명하다. 단지 어떤 성격이 초국경화냐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어떤 성격의 아시아’를 구성할 것인가하는 자본과 노동자계급, 자본과 시민사회, 자본과 민중의 투쟁이 전개되고 있을 뿐이다. 지구화 시대에 일국적 차원에서 전개된 민주주의투쟁은 이제 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아시아’가 아니라 민중이 주도하는 아시아를 형성하기 위한 초국경적 진보에너지로 확장되어야 한다.

현재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 사회적 아시아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아시아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에 부응하는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민영화, 작은 정부, 금리의 시장연동성 증대, 복지 축소, 생활기본재의 상품화 등)이 민중복지의 확대가 아니라 축소, 그리고 민중들의 삶의 더 많은 부분이 공적 서비스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기제에 의해서 충족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조건들이 공공재로서 확보되고 최소한의 노동권리가 사회적 권리로 확보되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해진다.

이러한 사회적 아시아를 위한 노력을 예를 통해서 드러내보자. 한국의 노동운동은 세계적으로 역동적인 노동운동의 나라이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주로 일국적 이슈에 집중되어 있고 글로벌 이슈를 대면하는 경우에도 일국적 노동기준의 약화의 문제와 관련될 때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노동운동, 나아가 많은 아시아의 노동운동은 일국적 노동문제만이 아니라 범아시아적 차원의 노동규범과 사회규약을 위한 초국경적인 실천 속에서 만나야 한다.

나아가 아시아 차원에서 사회적 최저선(minimum)을 형성・실체화하려는 노력을 행할 수 있다. 아시아 차원에서의 최소한 사회적 규약(social charter)를 실현하려는 노력도 행할 수 있다. 또한 투기적 금융자본의 60% 이상이 동아시아 몰려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시민사회가 이러한 투기자본에 대한 국제적 규제장치를 만들려는 노력을 공동으로 행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들은 ‘실체없는’ 초국경적 권력을 향해서가 아니라 결국 국민국가에 대항하여 초국경적 규범과 규칙을 강제하는 노력으로 나타나겠지만, 국민국가적 이슈 그 자체에 집중하는 운동과는 구별될 수 있다.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과 한국의 과제

이러한 아시아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의 사회화’는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실현하고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 위에서, 그리고 그것과 병행하면서 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의 형성노력은 아시아적 차원의 인권레짐, 더 낮은 수준에서는 인권헌장 등과 같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적 차원의 민주주의와 인권 규범을 구속력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내부적 인권발전을 넘어서서, 아시아적인 인권규범을 만들려는 노력을 국가적・시민사회적 차원에서 진행하고 이를 구속력있는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도 진행할 수 있다.

예컨대 2002년 7월 1일자로 발효된 로마규정을 기초로 설립된 ICC(국제형사재판소)의 경우, 그것이 관할권을 갖는 ‘반인도주의적 범죄(anti-humanitarian crimes)’는 국민국가의 사법적 관할권을 일정하게 제약하고 그것을 초국경적인 사법적 정의기구에 종속시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대단히 불완전하고 미국 등 강대국들은 이를 무시하고 있지만, 이는 초국경적인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반인도주의적 범죄에 해당하는 ‘정치학살’같은 경우 아시아 공동의 민주주의적 의제로 만들 수도 있다. 현재로 민주화 이행 이후에도 필리핀에서는 수백명의 정치학살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학살은 심지어 사회운동가들에게까지 행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의 정치학살에 대응하는 아시아 의원단 네트워크 같은 경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며,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산재하는 인권 및 민주주의 관련단체들이 최소한 이러한 정치학살, 그것이 어렵다고 한다면 운동가들에 대한 정치학살(인도네시아의 무니르 사건 처럼)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초국경적인 공동기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아시아의 인권규약을 만들려는 노력이 여러 군데서 이루어져 왔다. 1998년 광주에서는 아시아 인권워크숍이 열려서 아시아의 인권단체들이 아시아 인권헌장을 합의하기도 했다. 아시아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노력이 진전되어져 왔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을 어떻게 아시아의 국가적 차원의 구속력있는 합의사항으로 만들어갈 것인가하는 점이다. 이것은 사실 시민사회 캠페인이 강력하게 전개됨으로써 비로서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적 인권헌장이 개별 국민국가의 국회를 통과하려는 범아시아적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행위자들이 국가 행위자들에 대해서 효과적인 압력을 조직하는 중장기적인 노력을 공동의 의제로 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압력과 영향력의 정도가 강한 나라에서부터 선도적인 모범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많은 민주화 이행국가들은 불안정한 이행과정을 겪고 있다. 민주정부들은 구세력들의 저항에 포위되기도 한다. 남유럽의 경우 신생민주주의국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초국가적인 지역(region)의 수준에서의 인권레짐에 대해서 적극적이었으며 그것은 역으로 신생(新生)민주주의를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던 전례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초국경적인 혹은 범아시아적 차원에서의 인권레짐 혹은 민주주의 레짐의 형성노력은 개별국가에서의 민주주의의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한국의 역할을 고민해보게 되면, 위와 같이 아시아 차원의 인권레짐과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야 할 것이며, 동시에 개별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발전을 위한 연대적 지원노력을 적극화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민주주의가 선진화되어 있는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은 국내적 이슈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어, 이러한 아시아적 차원의 새로운 노력을 고민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아시아 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노력들이 선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한 최근 한국단체들, 태국의 쿠데타를 비판하기 위한 시위 등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러한 노력은 미약하다.

만일 한국의 시민사회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발전에 대해서 적극적인 연대의지를 갖게 되면, 아시아의 많은 후발 민주화의 국가들의 반민주주의적・반인권적 주제들을 우리의 문제들로 수용하면서 협력하고 지원하는 초국경적 연대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다층적인 차원에서 아시아의 많은 신생민주국가들에 대하여 민주주의와 인권발전을 위한 기술적・경제적・정치적 지원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민주주의 지원에는 민주주의를 회복하도록 하기 위한 지원, 민주주의의 운영을 위한 기술적 지원에서부터 최근에는 ‘민주적 가버넌스(democratic governance)’ 지원이나 인권 지원(Human Rights Aid),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지원,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지원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차원을 포함할 수 있다. 각 영역에서 핵심적으로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진전시키기 위해서 아시아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인권활동가들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인적 지원도 포함될 것이다. 다양한 수준에서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발전이 가능한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힘이 강화되기 위한 다양한 협력과 연대노력들이 가능할 것이다.

탈민족주의・탈국가주의적인 인식을 위하여

이러한 초국경적인 아시아적 실천과 연대적 지원이 대중적 기반을 가지려면, 또한 실효성을 가지려면, 탈국가주의적・탈민족주의적 인식이 활동가 수준에서 나아가 일반 대중 수준에서 확산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아시아 민주화라고 하는 새로운 상황은 우리가 일국적 차원에서 가지고 있던 저항성을 어떻게 탈국가주의적 저항성으로 변화시킬 것인가하는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탈국가주의의 과제는 아시아의 모든 나라 및 개별 사회의 민주진보세력에게도 적용된다.

아시아의 시민사회 세력 내부에도 사실 여전히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사고가 내재해있다. 동북아시아의 경우만 보더라도, 일본, 한국, 중국의 시민사회가 국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 를 어떻게 성찰할 것이며 동아시아의 민중연대와 시민사회 연대가 넘어설 것인가하는 것이 심각하게 고민되어야 한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과거와 현재도 아시아의 지역에서 패권국가 혹은 준(準)패권국가로부상해가고 있는 점, 한국도 이제 경제적 패권국가로 전환되어가고 있다는 점 때문에도, 특별히 이러한 탈국가주의적・탈민족주의적 인식의 지평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시아에는 다양한 성격의 아시아주의가 존재한다. 중국의 중화(中華)주의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의 상기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패권적’ 아시아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아시아”사회적 아시아’를 지향하는 새로운 아시아주의가 필요할 수 있다. 한국 및 아시아의 민주진보세력이 지향해야 하는 아시아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아시아를 민주적 공동체와 사회적 공동체로 사고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 새로운 아시아의 경제적 착취자가 되어가는 상황에 놓여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의 피억압자가 새로운 경제적 억압자로 전화되어 갈 수 있고 실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지구화의 흐름은 한국의 시민사회와 민중진영에 대해서 과거의 피억압자가 어떻게 억압자로의 경로를 피할 수 있는 것하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과거의 피억압민족이 준(準)제국주의적 민족으로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세계무역 12대 대국’이 되고 한국의 ‘다국적’ 대자본이 글로벌 경영이 전면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과거 피억압민족의 경험을 성찰적으로 파악하고한국이 과거의 제국주의적 민족의 경로와 다른 경로를 밟을 수 있도록 한국의 진보주의가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한국시민사회와 민중진영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편협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려는 운동은 한편에서는 ‘자폐적 민족주의’를 담지하는 우파에 대한 투쟁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운동 그 자체의 혁신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민주진보운동이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운동이 아니라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성찰적 운동으로 전개하는 것은 우파의 국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국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는 운동으로 재구성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진보가 민족주의적・국가주의적 진보에서 세계주의적 진보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새롭게 강화해야 한다.

조희연(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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