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09-08-12   1072

아웅산수찌에 대한 버마 군부의 판결을 보며


지난 5월 미국인 예토(John William Yetaw)가 인야호수를 건너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 자택에 무단으로 침입한 사건이 발생한 후 별다른 이유 없이 3개월 이상 끌어오던 가택연금 위반에 관한 법정 평결이 종료됐다. 무단가택침입 사건이 발생한 후 군부는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아웅산수찌를 배제하기 위해 그녀에게 실형을 선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절대적이었고, 그 전망은 적중했다.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아웅산수찌의 가택연금 연장은 군부가 의도한 전략의 종착지이며, 무단가택침입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군부는 어떠한 방법이라도 동원해서 그녀의 정치적 활동을 제한했을 것이다.

아웅산수찌의 판결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가택연금기간이며, 또 다른 하나는 국민들의 태도이다. 당초 아웅산수찌의 실형기간을 5년 정도로 예상했으나 군 최고지도자 땅쉐(Than Shwe)의 특별 명령에 따라 징역 3년과 강제노동형을 유예하고 18개월 가택연금이 결정됐다. 다시 말해 18개월이 지나면 아웅산수찌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지만, 그 기간 동안 군부는 그들이 의도하는 대로 군부정권을 항구화할 수 있는 정권을 출범시키고 이에 따른 법과 제도를 정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내년 3-4월에 총선을 실시한다는 정보가 유력할 경우 정권이양과 출범은 내년 내에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군부가 판단하여 18개월 이내 만족스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경우 아웅산수찌에 대한 가택연금을 연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총선이 완료된 상황에서 아웅산수찌의 가택연금을 연장하는 결정은 더 이상의 당위성을 찾을 수 없고, 정권이양기간 내에 권력배분의 상대적 피해자에 의한 내분이 조장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반쪽짜리 총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쇄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군부의 부담은 더욱 클 것이다. 결국 군부는 아웅산수찌가 가택연금에 처해져 있는 기간 동안 새 정부를 구성하고 정권을 완전히 이양해야할 것이다. 반세기 가까이 군 지도자 중심의 사유화된 정치권력을 향유해온 버마 군부가 18개월이라는 상대적인 단시일 내에 총선의 후유증을 해결할 사후대책을 마련하고, 군 인사의 원내 진출에 관한 지침 등 갖가지 시행착오를 돌파하며 제도화된 정권을 창출할 수 있을까?

아웅산수찌가 인세인(Insein) 감옥에 수형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삼삼오오 인세인 감옥 주변에 앉아 있는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누구도 그녀에 관한 화제를 입에 올리거나 구호를 외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구금 기간이 소위 ‘8888’항쟁 21주년 기념일과 겹쳐져 새로운 민중봉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졌지만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대신 해외에 거주하는 버마국민들은 아웅산수찌의 수감부터 평결이 완료된 현재까지 버마군부를 강력히 비난하며, 아웅산수찌와 정치범들의 조건 없는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고국의 민주화를 바라는 이들의 소망과 그것을 위한 열의를 평가절하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지난 20년간 있었던 시위가 군부 노선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필자가 만난 운동가들 중 일부는 정권의 도덕성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계승해야하기 때문에 시위를 멈출 수 없으며, 단기적으로 군부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인내를 갖고 먼 미래를 내다봐야한다고 역설했다. 또 어떤 운동가는 작년 초 군부가 석방한 일부 정치인들은 그들의 요구에 부흥한 것이라며 시위의 성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와 국민들이 선뜻 반정부 시위를 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극악무도한 형법체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예토의 경우에도 총 7년의 실형 중 1년의 강제노역이 부과되었는데, 일반적으로 강제노동은 탄광, 산림벌채, 보석채굴 등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 수반되며 노동과정에서 어떠한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국외에서 군부정권의 만행을 고발하는 용기와 군 당국이 자행하는 가혹한 형법체계의 두려움에서 갈등하는 버마국민은 현 상황을 대변한다. 아웅산수찌는 그녀가 쓴 책에서 암흑의 시기를 살고 있는 “두려움”(Fear)을 이겨내는 것이 진정한 인간발전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필자가 보기에 미얀마에는 아웅산수찌가 말한 군부에 대한 국민의 두려움과 국민에 대한 군부의 두려움이 상존하는데, 후자의 경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위가 더 높아지는 것 같다. 일례로 7월 30일자 미얀마의 빛(New Light of Myanmar)에는 국민들의 시위를 두려워하는 군부의 입장이 역설적 기법으로 게재되었다.

아웅산수찌가 국내외적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된 이유는 그녀의 민주화 운동 치적과 굴복하지 않는 저항정신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다른 민주화 운동가와 차별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군부통치의 두려움을 이겨낸 버마국민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군부도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


장준영(부산외대 미얀마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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