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06-09-20   674

<아시아 생각> 한국 시민사회의 동아시아 연대운동

한국 사회운동권에 ‘아시아연대’가 새로운 키워드로 부각되고 있다. 그 아시아연대의 중심대상지는 ‘동아시아’(동북아+동남아)이다. 서남포럼의 추산에 따르면, 동아시아연대를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시민사회단체는 100개에 육박한다. 참여연대는 2004년 창립 10주년을 맞아 아시아연대활동의 활성화를 주요사업으로 상정했으며, 올해부터는 국제연대위원회의 아시아연대사업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인권재단도 아시아연대를 주요 역점사업으로 삼고 동남아 인권문제에 대한 조사와 활동가교류프로그램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밖에 ‘함께하는 시민행동’ ‘버마행동’ ‘국제민주연대’ 등 20여개 단체가 버마(미얀마)의 인권침해를 규탄하고 관심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으며, ‘바스피아’도 아시아 여성과 아동의 권리보호를 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인권운동단체뿐만 아니라 노동운동계의 아시아연대도 활발하다. 대표적으로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 한국위원회’는 아시아레이버넷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아시아의 노동정보와 동영상을 영어나 아시아 언어로 게시하는가 하면 한국과 동남아의 단위노조간 자매결연을 통한 풀뿌리연대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 밖에 환경운동, 여성운동, 소수자운동, 평화운동, 문화운동, 학술운동 등의 분야에서도 많은 단체들이 동아시아연대활동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홍콩,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아시아 각지의 초국적 단체들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활동가들도 한국의 동아시아연대운동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동아시아연대운동은 동아시아를 담론의 대상에서 실천의 영역으로 구체화하는 작용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리랑’의 김산처럼 한국 독립을 위해 중국혁명에 뛰어든 실천방식이나 안중근처럼 동양인의 정체성에 입각해 일본의 침략을 질타했던 논리에서 간파되듯이, 한국 사회 동아시아연대운동의 기원은 해방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해방이후 한국전쟁과 냉전으로 동아시아의 지역적 연대 구상과 실천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못했다. 아마도 한국사회의 동아시아연대 이니셔티브는 90년대 이후의 산물일 것이다. 90년대 이후는 한국인 자본의 동아시아 투자와 동아시아인의 한국 유입이 두드러진 시대이다.

88년부터 한국인기업들은 ‘값싸고 온순한 노동자’를 찾아 인도네시아에 대거 진출하기 시작했다. 90년대에 이르러 베트남과 중국이 주요투자지로 추가되면서 자본의 동아시아 진출이 러시를 이루게 된다. 이런 가운데 현지 한인공장에서 현지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소식이 전해지고 이에 따른 현지 노동단체들의 반발과 지원요청이 답지하면서 해외 한국기업의 인권침해는 운동단체들로서는 좌시할 수 없는 시급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참여연대가 95년부터 한국해외진출기업문제 특별위원회를 결성하여 동남아와 중국에 투자된 한인기업의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는 사업을 전개하였다. 참여연대의 활동은 한국 주도 동아시아 사회운동연대의 선구적 사업 중에 하나였다.

또한 90년대 이후부터는 한국자본주의가 아시아의 외국인노동자들을 끌어들여야만 가동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최근에는 동아시아 여성들이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거주하는 ‘동아시아적 인구재생산’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이러한 아시아 여성 및 노동자의 한국러시는 수백개에 달하는 외국인노동자 및 이주인권운동단체의 출현을 유발하였다. 요컨대 한국과 동아시아간 자본과 인구의 이동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경제적 변화는 결국 ‘동아시아 속의 한국’과 ‘한국 속의 동아시아’에 대한 성찰과 함께 공동실천을 자극하게 됐다.

한편 한국 경제의 위기상황도 동아시아 연대의 필요성을 제고시켰다. 97년에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이 함께 경제위기를 맞이하는 상황은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낳으며 각국의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을 고양시켰다. 특히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 진영이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이를테면 민주노총이 동남아지역의 노동운동에 대한 조사단을 파견하고 보고서를 발간한 것이나 아시아초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ATNC)에 관심을 갖고 참여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동아시아연대운동은 정치외교적 계기를 통해 가속화되었다. 그것은 바로 ‘위로부터의’ 동아시아지역협력의 심화이다. 아세안(ASEAN)+3(한·중·일)을 추진축으로 하는 정부간 지역협력은 경제위기 이후 날로 강화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간 동아시아지역 협력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사회운동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영향력 행사는 좀처럼 실현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아시아연대를 주장하면서도 주로 유엔 산하기구들을 협력의 대상으로 고려하고 아시아의 지역협력기관은 진공상태로 내버려두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동남아의 사회운동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 아세안을 상대로 압력과 교섭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방콕에 사무국을 둔 포럼아시아의 이성훈 실행소장의 말처럼 “한국에서 동아시아연대는 담론이고 동남아에서는 현실”인 셈이다.

한국시민사회의 동아시아연대운동은 역사가 짧고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이웃 국가들로부터 연대활동에 대한 요구는 늘고 있다. 한국이 서구에 비해 지리적으로 가깝고 한국 사회운동의 목표와 과제가 자신들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도네시아 사회운동가들은 2004년 총선시기에 한국의 낙천낙선운동을 ‘수입’하여 조직적인 캠페인을 전개한 바 있다. 그들은 양국 활동가의 교류방문이나 연수 기회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성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신을 한국 노동운동 ‘팬클럽 회원’이라고 표현하는 태국 여성노동운동가 렉(Lek)은 “팬클럽 회원들이 한국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아시아연대운동을 전개하면서도 동아시아에 대해 잘 모른다. ‘전태일평전’을 번역하고 있다는 렉은 한국 활동가들이 ‘형제’보다는 ‘큰형’처럼 행세하려 하거나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며 타문화에 대해 다소 폐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는다. 한국 노동운동의 ‘아시아 리더십’을 기대한다는 태국의 중견활동가 솜욧(Somyot)도 한국 노동운동이 아시아전체의 이슈가 아니라 국내적 관심사를 밖으로 들고 나오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한다.

동아시아연대운동은 우리 것을 알리고 고수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배워나가고 변할 것을 요구받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우리가 동아시아를 이미 알고 있다는 식의 생각이나 그들도 우리가 지나온 길을 그대로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은 서구의 근대화론을 답습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서로 배우려 하지 않으면 연대운동은 발전하기 어렵다.

태국서 ‘임을 위한 행진곡’ 울려퍼지다

방콕에는 태국노동자박물관(Thai Labour Museum)이라는 아주 흥미로운 장소가 있다. 비록 태국가이드북에는 빠져있으나 화려한 왕궁과 흥청대는 술집에 가려진 태국의 이면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박물관은 노동사의 측면에서 고대, 근대, 현대의 태국사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곳의 관리는 태국사회운동가들에게 널리 알려진 노동자밴드 파라돈(Paradon)이 맡고 있다. 이 때문에 박물관을 방문하면 덤으로 민중가수들을 만나고 그들의 음반을 구입하며 사인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도 가질 수 있다.

태국노동자박물관의 6개 방 중에서 하나는 태국노동가요사에 관한 기록영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이 영화에는 노동가요 4곡이 소개되는데 마지막 곡이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에 태국어로 가사를 붙인 ‘솔리대러티’(Solidarity:연대)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운동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영어로 소개한 뒤에 한국 노동자들의 시위장면과 함께 원곡이 흘러 나온다. 곧바로 대만판·홍콩판에 이어 태국어로 된 노래가 연주된다. 처음 이곳을 찾는 한국인 관람객들에게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한류의 시초가 4·19혁명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1960~70년대에 서구와 제3세계에서 들불처럼 번진 학생시위의 원조가 바로 4·19혁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래에 있어서 한류의 원조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런데 태국의 노동자밴드가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에는 아시아 연대에 대한 희구가 담겨있다. 1990년대에 한국을 찾은 태국노동정보센터소장 솜욧은 한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처음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노래 테이프를 태국으로 가져가 계층의 연대를 통해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내용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기 시작했고, 마침내 노동자밴드 파라돈의 공식음반에 수록됐다.

그 뒤 이 노래는 각종 집회와 기념식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애창되면서 널리 유행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태국으로 건너가 노래의 운율이 비장한 원본을 탈피하고 경쾌하게 변형됐다.

그래서 태국의 노동자들은 이 노래를 들을 때 활기찬 율동을 섞곤 한다. 솜욧은 “이 노래를 활동가교육 때 즐겨 불렀다”면서 “그것은 한국의 광주항쟁과 노동운동의 역사를 되새기며 국제연대의식을 고양시키려 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숌욧의 이야기는 동아시아 연대에서 한국 사회운동의 책임성과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 이 칼럼은 경향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전제성(전북대 정치사회학부 교수,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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