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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06.08.01
  • 448
무늬만 국제연대 활동가인 제게 동티모르는 특별한 기억으로 다가오는 곳입니다. 1999년 8월에 치러진 독립 주민투표 당시 민간선거감시단 자격으로 약 보름간 동티모르에 머문 적이 있거든요. 그런 제게 두어 달 전 동티모르에서 들려온 소식은 당혹스럽고 착잡한 것이었습니다. 25년에 걸친 인도네시아의 침략과 군사점령 하에서 인구의 4분의 1이 희생되면서도 독립의 꿈을 놓지 않았고, 결국은 그 꿈을 이뤄냈던 동티모르 사람들. 도대체 그들의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고난과 희생 끝에 되찾은 ‘독립’

16세기부터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동티모르는 1974년 포르투갈의 청년 장교들이 파시스트 정권을 몰아낸 뒤 식민지 해방을 약속하면서 독립의 꿈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호시탐탐 동티모르를 노리던 인도네시아가 75년 12월 7일, 1만 여 명의 육·해·공군을 동원해 전면적인 침략을 단행함으로써 이 꿈은 물거품이 되죠. 아름다운 동티모르의 바다는 붉은 피로 물들었고, 그 짧은 기간동안 전체 인구 70만 명 중에 약 6만 명이 살해된 뒤, 동티모르는 공식적으로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병합되었습니다.

그 당시 강대국들은 인도네시아 침략의 든든한 후원자, 방조자 역할을 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공산화 도미노를 막기 위한 교두보로서 인도네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을 높이 산 미국은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자카르타를 방문해 동티모르 침략을 ‘허가’해주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도 79년 2월에 세계 최초로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합병을 승인해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영국은 전투기를, 네덜란드는 전함을, 프랑스와 캐나다는 탱크와 헬리콥터를, 이스라엘은 기관총을 인도네시아에 판매했습니다. 그 무기들이 동티모르 민중 학살에 쓰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 딱 감고 무기 수출에만 열을 올린 거죠.

79년까지 인도네시아 군대가 전개한 포위섬멸작전으로 저항운동은 거의 궤멸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타난 지도자 샤나나 구스망이 조직을 다시 추슬러 민족해방군을 창설하고, 전선운동조직을 재편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 밖에서는 주제 라무스 오르타(1996년 노벨평화상 수상)와 마리 알카티리를 중심으로 한 망명 활동가들이 온갖 냉대와 모멸을 견디며 국제사회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가톨릭 교회와 성직자들은 민중들이 독립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정신적인 기둥 역할을 했습니다.

90년대로 접어들어 국제사회의 여론이 급격히 불리해지자, 인도네시아는 결국 99년 5월, 독립 여부를 동티모르인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주민투표 실시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8월의 독립투표에서 98.5% 투표율에 78.5%의 찬성으로 동티모르의 독립이 결정되었습니다. 2002년 5월 20일, 동티모르는 ‘티모르 레스테(Timor Leste)'라는 이름으로 21세기 최초의 독립국가로 탄생하게 됩니다.

신생 독립국 티모르 레스테에 대체 무슨 일이

이제 2006년으로 되돌아와, 한동안 잊혀졌던 동티모르는 반란과 폭동이라는 우울한 단어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되살아납니다. 겉으로 알려진 사건의 발단은 승진, 보수에서 차별을 당했다고 여긴 서부지역(서티모르가 아닙니다) 출신 군인 600여 명이 2월부터 파업을 벌이고, 정부가 이들을 강제전역시키자, 4월 28일부터 정부군 및 경찰과 해직군인들 사이에 유혈사태가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뒤, 국방, 내무장관이 잇따라 해임되고, 호주를 비롯한 뉴질랜드, 포르투갈, 말레이시아 4개국 2,700여 명의 다국적군이 파견되었습니다. 결국 6월 26일 마리 알카티리 총리까지 사임한 뒤 7월 8일 주제 라무스 오르타 외무장관 겸 임시조정장관이 새 총리로 지명되면서 사태는 외형상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몇 가지 의문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로 남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군인들의 유일한 요구사항이 왜 하필 알카티리 총리의 사임이었을까요? 반란군이 대통령의 요청으로 순순히 무기를 반납하고 대통령은 이들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한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대통령과 총리가 함께 파병 요청을 하기 전까지는 군대를 파견하지 않겠다’던 오스트레일리아는 왜 갑자기 태도를 바꿔 1,300명이나 되는 군대를 서둘러 파병했으며, 왜 다국적군은 적극적으로 반란군을 진압하거나 질서를 회복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들 말입니다.

이에 대해 동티모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진실은 다른 곳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사태는 마리 알카티리 총리를 겨냥한 ‘외부세력을 등에 업은 권력 내부의 쿠데타’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외세를 등에 업은 권력다툼의 내막

먼저, 군대 내의 출신지역에 따른 차별이 진짜 원인이었는가를 짚어보지요. 지금의 동티모르 군대는 총사령관인 타우르 마탄 루악을 비롯해 대다수가 과거의 민족해방군 출신들입니다. 독립운동 당시 동부지역에서 민족해방군의 세력이 더 컸었고, 상대적으로 서부지역은 친인도네시아 민병대 세력이 세긴 했었지만, 민족해방군 내부에 지역, 인종간의 갈등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군대에도 지역갈등의 징후는 없고요. 그렇지만 군 내부에서 알카티리 정부에 대한 쿠데타 시도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루악 사령관조차도 작년 4월과 올 초, 쿠데타 제안을 받고 거절한 적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짐작해보면, 군 내부의 지역 차별은 처음부터 실재한 것이라기보다는 알카티리 총리를 몰아내고자 하는 그 ‘누군가’에 의해 부추겨지고 왜곡, 과장된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 ‘누군가’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동티모르 정부의 권력 내부, 구체적으로는 과거 독립운동을 같이 한 동지들 간에 갈등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동티모르의 정치 형태는 4권 분립(대통령,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체제입니다. 2001년 8월의 제헌의회 선거에서 전체 88석 중 55석을 차지한 집권당의 알카티리 총리가 헌법상 정부수반으로서 국정을 주도하고, 샤나나 구스망 대통령은 대외관계에서 상징적인 역할만을 하는 체제입니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 지도자로서의 기득권을 내놓았다 해서 한 때 구스망 대통령을 칭송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요, 사실 구스망 자신은 강력한 대통령제를 원했다가 뜻대로 안되자 아무런 권한이 없는 대통령직에는 관심이 없다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려고도 했다죠.

아무튼, 국정운영권을 쥔 알카티리 전 총리는 재임 기간 중 ‘문 뒤에서 향연을 벌이는 부자들’이 없는 점진적인 개발정책을 취했습니다. 동티모르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노리는 오스트레일리아, 미국과도 거리를 유지하려 했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개발자금을 거부하기도 했죠. 이런 알카티리를 가리켜 구스망과 그의 지지자들은 ‘앙골라 공산주의자’라 부르곤 했습니다(알카티리는 아프리카에서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그에 반해 구스망 대통령은 확실한 친오스트레일리아 노선을 걸었습니다. 그의 수십 년 동지이자 이번에 총리로 지명된 오르타와 함께 말이지요.

오스트레일리아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미국’을 스스로 인정하는 나라입니다. 미국도 그걸 인정하고 있고요. 1999년 독립선거 이후 친인도네시아 민병대의 난동으로 동티모르가 쑥대밭이 되어 유엔 산하 다국적군이 구성될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가장 많은 군대를 파병하면서 동티모르의 후견인을 자처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지요. 그런 오스트레일리아가 바라는 것은 단순합니다. 바로 티모르해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채굴권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동티모르를 발판으로 동남아시아 역내 주도권과 영향력을 유지, 강화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바로 알카티리 정부는 걸림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호주 최대 일간지 <더 오스트레일리안>의 외신부장 그렉 쉐리던은 이렇게 단언합니다.

“만약 알카티리가 총리직을 유지한다면, 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1,300명의 군인들과 50명의 경찰관, 수백 명의 지원인력, 수많은 구호물자를 쏟아 붓고도 이 재앙에 가까운 마르크스주의자 총리를 제거할 만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국익을 증진시킬 능력이 없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강대국 틈에 낀 약소국의 운명

이와 같이 확실한 증거만 없을 뿐, 오스트레일리아가 ‘반알카티리 쿠데타’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동티모르 권력 내부에서 쿠데타를 실행에 옮긴 그 ‘누군가’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구스망과 오르타? 아니면 제3의 세력? 글쎄요…….

어찌 됐건 알카티리는 이제 총리직에서 물러나 정적제거 음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반란군은 총을 내려놓고 복귀를 준비하고 있으며, 내각은 새로운 인물들로 채워졌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이 장갑차를 타고 순찰하는 거리에서는 총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 과거의 끔찍했던 학살과 약탈의 공포를 떠올리며 집을 떠났던 15만 명의 난민들은 다시 하나 둘 집으로 돌아와 예전처럼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20만 명의 생명을 역사의 제단에 바쳐가며 동티모르가 그토록 갈망했던 ‘독립된 나라에서의 평화로운 일상’일까요? 오늘의 동티모르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약소국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 이 칼럼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 2006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최재훈 (경계를 넘어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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