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미분류 2009-02-06   2076

법관의 짐을 벗고 시민이 되는 두 법원장께 보내는 편지

<두 퇴임법원장께 드리는 편지>

법관의 짐을 내리고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오세빈 서울고등법원장님과 박용수 부산고등법원장님께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소장직을 맡고 있으며 건국대학교 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한상희와 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근용입니다.

저희 두 사람이 이렇게 외람되이 두 분께 편지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은, 오늘이 지나면 두 분은 지난 35년 동안 어깨에 지고 있던 큰 짐을 내려놓고 저희와 같은 시민들 속으로 돌아오시기 때문입니다.


법관은 판관으로서 신의 역할에 비유될 정도로 중차대한 직책임을 저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가를 중대한 판결을 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인권과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약자들의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돌이켜 보면 두 분께서는 그동안 법관으로서 적지 않은 부담 속에서 한 평생을 보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 분께서는 이제 퇴임에 즈음하여 이런 역할에 충실했는지 되돌아보시면서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책망하시고 계실 줄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언론매체를 통해서 접한 바로는 오세빈 법원장님께서는 후배 법관 등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유신정권과 군사정권, 그리고 외환위기에 이르기까지 굴곡 많은 시대에 법관으로서 겪어야 했던 소회를 담담히 털어놓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세빈 법원장님과 같은 시기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동기이기도 한 박용수 법원장님께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께서 35년의 세월을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법과 정의의 수호자로서 이 사회의 밝음을 위해 헌신해 오셨음에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제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가 되어 이 땅에서 핍박받는 자들을 위해 사자후를 토할 것을 생각하니 그 또한 뜻 깊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에 저희들은 그동안의 수많은 수고를 내려놓고 이제 저희 곁으로 돌아오는 두 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다만, 이 순간에 두 분께 간곡한 부탁 하나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비록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그리 탐탁한 부탁이 아닐 수는 있겠으나, 돌다리도 두드려 본 후 건너고 싶은 여린 마음에 드리는 말씀이니 곰곰이 숙려하여 주신다면 그것 자체도 의미있다고 여겨집니다.

두 분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전관예우’라는 말이 있습니다.
퇴직한 판사와 검사가 재판이나 수사과정에서 후배 판사와 검사한테서 어떤 특혜를 받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물론 이는 과거의 폐단이었을 뿐 최근에는 ‘전관예우’는 없다는 법원 관계자들의 이야기도 없지 않습니다. 저희들 또한 문명된 오늘날에 그런 일들이 있을 리는 없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안타깝게 만들고 있는 것은 이 전관예우의 존재에 대한 국민들의 의심입니다.
모든 국민이 무한하게 신뢰해야 할 사법절차와 사법기관, 그에 종사하는 법률가 사회 전체가 이 ‘전관예우의 의혹’ 하나만으로도 엄청나게 불신받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이 가로막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선배 법관이 퇴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변호사가 되어 같은 법원에 근무하던 후배 법관 앞에 서면, 그 후배 법관이 영향을 받지 않겠냐는 이 원초적 의심은 아무리 전관예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외쳐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박용수 법원장님께서도 기억하고 계실 한 가지 일이 떠오릅니다.
박용수 법원장님께서 대구고법원장에 막 취임했을 2007년 2월, 전임 대구고법원장이셨던 김진기 변호사께서 대구고등법원에서 다루어지던 영천시장 선거법 위반 항소심 사건의 변호인으로 등장하여 세간에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두 분의 선배이기도 한 김진기 변호사께서는 대구고법원장을 끝으로 법관직에서 물러난 지 일 주일도 지나지 않아 최종 근무법원이었던 대구고법의 형사재판 사건을 수임해 선임계를 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저희는 참 안타까웠습니다.
고등법원장 정도의 고위직을 보낸 분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진기 변호사께서는 그 사건을 가장 잘 변호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수임하셨을 것이지만, 그로 인해 쏟아질 법률가에 대한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실망감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보셔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당시 대구고법원장으로 일하시던 박용수 법원장님께서는 이로 인해 사회적인 지탄이 일자 그 사건을 다른 재판부에 재배당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체야 어떻게 되었든 법원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전관의 경력을 가졌던 변호사가 회전문을 타고 다시 법대 앞에 섰을 때 후배 법관들이 느끼는 부담, 그리고 괜스레 법원과 법률가들에게 쏟아지는 국민의 우려와 불신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방책이었을 것입니다.

저희는 이런 전례를 걱정하면서 두 분께 스스로 후배 법관에게 이런 부담이 되지 않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저희는 두 분께서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실지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하실지 아직 아는 바가 없습니다. 통상 다른 분들이 해 오셨던 것처럼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여시거나 어떤 법무법인에 영입되시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입니다.
만약 퇴임 후에 변호사로서 활동을 하신다면, 두 분께서 35년 동안 혼신의 노력을 다해 생활해 온 법원, 그리고 계속 법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후배 법관에게 부담이 되는 것만은 피해주셨으면 합니다.
퇴임한 지 1년, 아니 6개월 만이라도 두 분께서 마지막으로 근무하신 서울고등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의 사건을 수임하는 것만은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최소한의 냉각기’라 생각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지난 해 여러 달에 걸쳐 로스쿨 진학을 꿈꾸던 몇 사람의 도움을 받아 두 분보다 앞서 퇴임했던 여러 고등법원장들과 지방법원장 출신 변호사들의 사건 수임 내역 일부를 조사해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김진기 전 대구고법원장님, 신정치 전 서울고법원장님, 박행용 전 광주지법원장님 등 2004년 이후 퇴직한 분들이, 퇴직 직후에 최종 근무 법원의 사건을 얼마나 빨리 수임했는지를 조사한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저희가 상상한 것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퇴직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최종 근무 법원의 사건을 수임한 경우도 있고, 한 달 이내에 수임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6개월 이내, 1년 이내 경우까지 넓혀보면 그 수는 매우 놀라울 정도입니다. 혹시 그 실태가 어떤지 궁금하시다면 저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 연락주시면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저희도 놀랐지만 로스쿨에 진학하여 미래의 법률가가 되기를 꿈꾸던 그 학생들도 많이 놀랐습니다. 그 실태조사 자료를 준비했던 참여연대의 젊은 상근자들 사이에서는, 그 분들은 법관생활을 30여 년씩 하다가 퇴직했을 텐데 한 달 정도 마음 놓고 쉬지도 않으시나, 경제력도 있을텐데 보름이나 한 달 정도 해외여행을 다녀올 생각도 왜 안 했을까 하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두 분께서는 법관생활을 모두 정리하시기로 마음먹으면서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할 것인지 이미 다 생각해두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앞으로의 생활을 구상했던 것 안에 저희가 오늘 부탁드린 것이 끼워들 여지가 있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두 분의 퇴임과 그에 이은 변호사개업을 학수고대하면서 궁지에 빠진 사람들을 ‘전관예우’라는 말로 현혹시켜 일확천금을 꿈꾸고 있을 그 법원브로커들에게 따끔한 일침이 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혹은 선비는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치지 아니하며 외밭에서 신발끈을 묶지 않는다는 말처럼 비록 오해에서 나온 말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전관예우’의 폐단을 걱정하며 사법정의를 갈구하는 우리 모든 시민들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실제 우리 사회는 아쉽게도 고위법관 출신의 법조인으로 세간의 존경을 받는 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위관직에 올라 ‘거악의 척결’을 외치더니 불과 며칠사이에 퇴직하여 비리혐의로 검찰에 소환되는 재벌총수의 변호인이 되어 그의 뒤를 따라 검찰청사 안으로 들어서는 억장 무너지는 현실의 경험이 더 크게 인식되고 있을 뿐입니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저희는 법률가의 표상이 되어 많은 이의 존경을 받을만한 법률가를 한 분씩 더 갖고 싶습니다. 우리 시민들에게는 지금 그런 분이 대법관직에서 물러나신 후 변호사 개업의 길 대신 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경험을 전수하는 길을 택한 조무제 전대법관 밖에 없다는 것이 매우 아쉽습니다.

부디 바라건대, 두 분께서 이런 귀감이 되어 주십시오.
후배 법관들에게는 퇴임 후 이렇게 처신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우리 시민들에게는 오늘날 우리 법원은 이렇게 건전해졌구나는 감흥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서울과 부산 두 지역사회에서는 최고의 권위와 신망의 상징인 고등법원장직을 보내고 이제 사회의 품으로 들어서시는 두 분께서 정녕 시민들이 존경할 수 있는 또 한 명의 법률가가 되어 주길 성심으로 요청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내 강건하십시오.

2009년 2월 6일

한상희, 박근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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