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12-05-14   3744

대법원장에게 필요한 결단

대법관·헌재재판관 임명 제청할 때
고위 법관 아닌 재야변호사 골라야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우리 대법원장은 다른 어느 나라의 대법원장보다 권한이 막강하다. 그중 하나가 대법관 13명 전원에 대한 임명제청권과 3인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대한 지명권이다. 올 7월에 퇴임하는 4명의 대법관과 9월에 헌법재판소를 떠나는 5인 중 2인 재판관에 대한 후임 인사권을 대법원장이 곧 행사하게 되어 있다.
 

과거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지명하는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들은 엘리트 남성 고위법관 일색이었다. 살아온 인생행로가 비슷했기에 판결 성향도 거의 동일동색인 이 최고 법관들에 의해서는 국민 각계각층의 의사와 이익이 다양하게 대변될 수 없는 구조였다. 이런 이유로 10여년 전부터 최고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사법시험 기수와 서열 중심으로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던 기존의 관행에도 적지 않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 결과 여성 대법관, 젊은 대법관들이 나왔다. ‘독수리 5형제’로 지칭되는 이들을 통해 인적 구성에 다양성이 반영된 대법원이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인가를 국민들은 분명히 목도할 수 있었다.

 

최고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이러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고 또 발전되어야 한다. 그것이 시대적 요구이고 국민들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법원장이 이번에 어떤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는 것이 이러한 다양성 확보의 노력을 지속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일까? 출신 대학의 다양성, 출신 지역의 안배도 고려는 해야겠지만 훨씬 더 중요한 다양성 확보의 기준은 현직 법관이 아닌 법원 밖의 변호사들을 뽑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출신 대학과 출신 지역이 달라도 법원 안에서 이삼십년의 판사 생활을 하다 보면 성향이나 사고가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법원 밖 국민들의 상식보다는 판사 생활을 통해 습득한 경직된 법리가 부지불식간에 그 고위법관들의 사고의 틀이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10년 이상은 법원 밖에서 각계각층의 국민들과 부대끼고 동고동락한 이들이 대법관 후보로 제청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법원 밖 인사들의 사고가 치열한 평의 과정을 통해 대법원 판결에 담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법원 밖 인사들을 뽑을 때, 분야의 다양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일반 민형사 사건들만을 수임해온 변호사들보다는 노동·환경·장애인 등 소수자 인권 분야에서 현장을 누벼온 재야변호사들이 대법원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노조 파업 현장들을 발로 뛰어본 변호사들이야말로 노동자가 진정 하고 싶은 주장이 무엇인지 안다. 그리고 그 절절한 주장들을 대법원 판결에 담아낼 수 있다.

 

갈수록 복잡한 분쟁이 많아지고 있는 환경과 소수자 인권 분야 사건들에도, 오랜 현장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갖춘 재야변호사들의 안목이 절실히 요구된다. 여성 대법관의 수도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 구색 맞추기로 한두 자리 할당하는 식은 곤란하다. 헌재 재판관은 헌법재판의 특성상 이러한 다양성이 더 극단적으로 배려되어야 한다. 대법관으로 제청해주지 못한 후배 고위법관에 대한 위로 차원의 인사가 되어서는 정말 곤란하다.

 

물론 대법원장 입장에서는 대법원장만 바라보고 있는 후배 고위법관들의 기대에 찬 눈길을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다. 조직의 장악을 위해서도 현직 법관들 중에서 대법관을 제청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과거에도 이러한 법원 내 분위기 때문에 대법원장들이 법원장급 고위법관들로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는 관행이 계속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대법원장의 눈은 후배 법관들이 아니라 최고법원의 다양성 확보를 원하는 국민들을 향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법원장의 읍참마속에 가까운 과감한 결단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은 한겨레(2012.5.14)에 함께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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