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12-05-24   4253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대의기구가 아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관료적 대의기관이 아닌

시민들의 사법적 대의기관이 되어야 한다

 

이국운 한동대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매년 2월 법원의 정기 인사가 이루어지면, 일간신문 한쪽에 새로 임관되었거나 자리를 옮긴 법관들의 이름이 빼곡히 실리곤 한다. 법조계 사람들이야 관심을 가지고 그 내용을 살피지만, 솔직히 일반 시민들에게 그 기사는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한자로 쓰인 그 작은 활자의 이름들만 보고 누가 누군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부임했다가 2~3년이 지나면 또다시 옮겨가는 것이 대한민국 법관들의 인사 관행인 까닭이다. 선거로 뽑히는 시장이나 구의원은 크고 작은 행사장에서 얼굴 볼 기회라도 있다. 그러나 법관들은 한동안 왔다가 또 가버리는, 도무지 얼굴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누군가에 의하여 자유와 권리가 위협받을 때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최종적으로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은 사법부이다. 여기서의 사법부는 법원 건물이나 헌법재판소 건물이 아니라, 그 조직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즉 넓은 의미의 법관들을 말한다. 헌데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최종적으로 수호할 이 법관들이 도대체 누구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과연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정상적인 모습인가?

 

오는 7월과 9월, 대법원 대법관 4명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5명이 새로 임명된다. 최고 법관 9명이 교체되는 것이다. 10여년 전부터 대법원장이 바뀌거나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시기가 되면, 한국 사회는 어김없이 한바탕 홍역을 치러 왔다. 평소에는 대통령과 주요 정당 주변을 맴돌던 일간신문의 1면이 사법부 관련기사로 뒤덮이는 경우도 다반사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민주화 이전에는 거의 발생하지 않던 이런 일들이 최근 들어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누군지 알 수 없는 법관들에게 재판받는 현실을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시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 외부 인사 두루 포함시켜야

 

지난 10여년 동안 대법관 또는 헌법재판관의 선임에 관하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논란은 명확한 초점을 가지고 있다. 한쪽에는 법원 내부의 인사 관행에 따라 평생을 법관으로 살아온 사람들만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구성하려는 흐름이 있고, 다른 쪽에는 법원 외부의 다양한 직역에서 경험을 쌓은 법률가들을 가능한 한 많이 포함시키려는 흐름이 있다. 시민들의 시각에서 이 둘 중 후자가 더 바람직하다는 점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전자는 앞서 언급한 도무지 얼굴을 알 수 없는 법관들만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채우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시민들의 사법적 대의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본질에 어긋난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법관들의 관료적 대의기관이 되었던 것은 민주화 이전에 고착되었던 종래의 잘못된 인사 관행일 뿐이다.

 

시민들의 사법적 대의기관으로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바로 무엇이 정의로운 법인지를 선언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대부분의 법률은 행정부가 마련한 법안을 국회가 심의하여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부주의로 인한 입법 실수가 발생하기도 하고, 정치세력 사이의 협잡에 의한 자의적인 결정이나 소수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 이루지기도 한다. 입법과정 자체가 날치기로 되는 경우도 있고, 행정부가 하위 법령을 잘못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입법부와 행정부가 잘못된 법을 고집할 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각기 고유한 절차에 따라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구체적으로 수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정의로운 법인지를 선언한다.

 

시민들에 의하여 선출되는 입법부 및 사실상 공권력을 독점하는 행정부에 맞서서 무엇이 정의로운 법인지를 선언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대법관 후보자와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찾을 때 우리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이처럼 쉽지 않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게 만들 수 있는 조건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법적 전문성을 갖출 것이 전제된다면,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조건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한국 사회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다양하고 합당한 세계관을 가진 합리적인 인물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특정 영역이나 분야만을 과도하게 반영하는 인적 구성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입법과정 및 행정과정에서 소외된 구조적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적 통로가 마련되어야 한다. 사법과정마저 이들을 외면하면 대한민국이라는 체제의 규범적 통합은 달성되기 어렵다. 셋째,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은 입법부와 행정부에 맞서서 정의로운 법을 수호할 용기를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살아온 이력에서 그 점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이 두 기관 모두에서 적어도 다수를 이루어야 한다.

 

사회 전영역 아우르는 합리적 인물을

 

상식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후보자들을 찾기 위해서는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대의기관이 중심이 되어 독립된 대법관 및 헌법재판관 인사위원회를 통해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두루 들어야 할 것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러한 제도와 절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처럼 상식적인 기대와는 상당히 다르다. 군사정권기의 제도적 왜곡을 극복하지 못한 채 현행 헌법은 대법원장 1인에게 대법관 후보자 전체의 제청권과 헌법재판관 중 3인의 지명권, 그리고 법관 인사권 전체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대법원장 1인에게 이처럼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입법례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비유컨대, 현행 헌법은 자칫하면 제왕적 대법원장의 출현을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다.

 

지난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입법화되어 제왕적 대법원장에 대한 견제장치가 생기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명단에서 3배수 이상의 후보를 추려내는 역할 이상을 이 위원회에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문제는 결국 양승태 대법원장의 결단이다. 그가 평생 법관 이외의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엘리트 사법 관료의 전형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자신과 비슷한 경력을 가진 인물들을 대거 제청 또는 지명하여 법관들의 관료적 대의기관을 재현하리라는 호사가들의 예측을 그대로 따르게 될지, 아니면 종래의 인사 관행과 과감하게 절연하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시민들의 사법적 대의기관으로 재구성하는 데 힘을 보태게 될지, 시민들의 이목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결단에 집중되고 있다. 모쪼록 후배 법관들이 아니라 동료 시민들을 철저하게 의식하는 대법원장의 결단을 통하여 호사가들의 예측이 모두 빗나가고 제왕적 대법원장에 대한 시민들의 염려가 기우에 그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주간경향(977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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