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7-02-01   1406

<안국동窓> 사법부의 진정어린 사죄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는 2005년에 재심이 결정됐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1975년 유신치하의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고 판결 후 18시간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8인의 피고들에 대해 32년이 흐른 뒤 무죄라는 정반대의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유가족들은 ‘고인들의 누명이 이제라도 벗겨져 다행’이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 속에는 32년간의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도 담겨 있었겠지만 사형으로 사라져간 억울한 죽음들에 다시 숨을 불어 넣어줄 수는 없다는 허망함도 같이 배어 있었으리라.

그 일주일 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1970년대 긴급조치 위반사건 재판 1412건을 사건별로 판결 요지와 판사 이름을 함께 기록한 분석보고서를 만들어 공개했다. 거기에는 대법관·헌법재판소 재판관 등 현직 고위법관 10여명과 전직 대법원장·헌재소장·대법관 등 전직 고위 법관 100여명의 이름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거사위의 긴급조치 관련 사건 판결의 내용 및 판사 명단의 공개를 두고 일부 법조계 등을 중심으로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 거세게 제기되면서 공개 찬반논란이 뜨겁다. 필자는 판결사례 조사에 따라 판결내용과 함께 판사명단이 공개되는 것이 논란이 되는 것 자체를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

원래 판결문과 판결내용, 그리고 판결문에 쓰여진 판사의 이름은 공개되는 것이 원칙이고 정상적인 것이다. 선진외국들은 예외없이 이러한 판결문 공개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연방법원과 주법원을 막론하고 모든 심급의 법원들이 판사의 이름이 적힌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다. 미국 로스쿨 학생들이 검색하는 판례검색 프로그램에는 저 시골 주법원 판결도 판결이 선고된 그 날 판결전문이 떠서 학생들의 레포트 작성에 곧장 활용될 정도로 전면적이고 신속한 판결 공개가 이루어진다. 이에 비해 우리 법원은 유신치하에서 대부분의 판결문을 비공개했다든가 그후 판결문을 공개하면서도 하급심법원 판결은 일부만 공개하는 식으로 선별적인 공개의 태도를 고집해오고 있다. 이것이 비정상이다. 이번 과거사위의 판결내용 및 판사명단 공개는 비공개라는 비정상을 정상적인 상태로 돌리면서 제대로 된 사법 과거사 청산을 위해 당시의 판결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려 국민적 비판의 자료로 제공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정상적인 상태를 정상으로 돌리는 것을 왜 반대한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할 수 없다. 판결이 공개되어야 주권자인 국민이 판결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통해 판사의 재판권 행사에 적정한 민주적 통제를 가할 수 있다. 판사가 행사하는 재판권도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기에 판결에 대해 국민이 알고 이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다. 지금까지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문제다. 이번의 판결 공개에 대해 일부 법조계에서 보이는 근거없는 거부감은 ‘판결 비공개’라는 비정상적이고 후진적인 우리 과거 사법의 타성에서 발원된 것이 아닐까.

이해하기 힘든 명단 공개 과민반응, ‘작자 미상’ 판결내용 공개가 더 우스운 일

판사 명단의 공개에 대해 보이는 과민반응도 이해하기 힘들다. 만약 과거사위가 거두절미하고 긴급조치 사건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들의 명단만 공개한다면 그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고 정치적 악용가능성도 우려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과거사위가 공개한 것은 판결내용과 그 판결에 가담한 판사들의 명단이고 초점은 판결내용에 가 있다. 판결문에는 반드시 그 판결에 가담한 판사들의 이름이 들어있다. 판결문은 바로 판사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판사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판결문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 판결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데, 판결문이나 판결내용만 공개되고 판사의 이름은 지우거나 가명처리하여 판결문을 작자미상의 작품으로 만든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우스운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판사의 오판이나 잘못된 판결에 대해 이를 처벌하는 법조항이 없다. 즉, 판사가 판결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잘못된 판결에 대해 판사가 법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이 판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나 역사적 책임까지 지지 않는다든지 국민적 비판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재판장이나 주심판사에 비해 권한이 약했던 초임의 배석판사였다고 해서 판사 명단에 자기 이름이 오른 것을 푸념해서도 안 된다. 주심 아닌 배석판사라 판사들간의 합의에 주도적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판결문의 작성에 관여한 것인 한 공동관여자로서의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신시대 권력의 시녀로서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쉽게 반인권적인 긴급조치규정의 기계적 해석과 무자비한 적용에 몸을 담았던 판사라면, 이를 깊이 반성하고 과거사위원회의 판결내용 및 판사명단의 공개가 있기 전에 과거의 경솔한 재판에 대해 양심선언이라도 하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합당한 일이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일부 법조인들은 판결내용 및 판사 이름 공개와 관련해 판사의 인격권과 명예권 침해를 운운한다든가, 당시의 상황에서 판사로서 실정법인 긴급조치를 적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그것을 지금 상황에서 판사 명단 공개를 통해 여론몰이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사법부를 위해 옳은 일이 아니라든가, 무슨 정치적 의도를 깔고 있는 명단 공개가 아니냐는 식으로 이 사건의 본질을 비틀고 있다. 절망감을 느낀다. 이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하는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해당 판사의 명예권과 인격권 침해? 판사라는 국가기관이 누릴 권리 아니다

과거사위의 명단 공개가 해당 판사의 명예권과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부터 보자. 명예권이나 인격권은 원래 국민의 권리다. 판사라는 국가기관이 누리는 권리가 아닌 것이다. 판사 이름이 판결문 속에 들어가 있고 따라서 판결문이나 판결내용과 함께 그 이름이 공개되는 것은 공적 문서에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것을 기록하고 공개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해야할 것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판사의 명예권이나 인격권이 적용된다고 하면서 그 침해를 운운하는 것은 따라서 넌센스다.

당시 실정법에 따른 것, 현재 논리로 재단 불가? 헌법과 양심에 반하는 재판이 문제다

당시의 실정법에 따라 재판한 것을 현재의 상황논리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언뜻 듣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재판의 본질이 무엇이냐를 고려하면서 생각해보면 금방 궁색한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과거사위가 공개한 구체적인 판결내용들을 한번 살펴보자. 이웃 주민과 이야기 중 삼선개헌, 긴급조치 등이 현 정권이 무너지기 위한 징조로 보인다고 말하고 확성기를 통해 주민들에게 ‘현 정부가 부패해서 망하게 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징역 및 자격정지 7년이 선고되었고, 술집에서 유신헌법은 독재를 위한 것이며 긴급조치가 정부를 비판하는 학생들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징역 및 자격정지 10년이 가해졌다. 대학생들이 교내에서 유신헌법, 긴급조치 철폐를 주장하는 학생데모를 결의하고 결의문ㆍ선언문을 제작 및 낭독하며 성토대회를 열었다고 징역 7년이 언도된다. 아니 법 이전에 상식선에서 생각을 해보더라도 이것이 제대로 된 재판인가.

궁색한 변명을 피는 사람들이 말하는 당시의 실정법이란 ‘긴급조치규정’을 뜻할 것이다. 재판이라는 것은 긴급조치라는 실정법 규정을 별 고민없이 도식적으로 해석하고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이 아니다. 재판이 만약 헌법이나 인권, 양심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생략된 채 실정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만 하는 과정이라면 재판을 잘 프로그램화된 컴퓨터에 맡길 일이지 국가가 월급을 주어가며 판사에게 맡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이 법관에게 ‘헌법,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하라고 명하고 있듯이 모든 실정법은 재판에서 상위법인 헌법의 테두리내에서 해석되고 법관의 양심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적용되는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유신헌법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고 있었다. 이웃 주민에게 유신체재를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도 헌법의 수준에서는 보호받아야 할 표현인 것이다. 그렇다면 유신체재에 대한 비판 발언을 처벌하라는 긴급조치규정은 헌법과의 충돌을 고려해 최대한 제한적으로 해석되고 적용될 필요가 있다. 또한 설령 유죄결정을 하더라도 양형단계에서 집행유예 등 가벼운 처벌을 내려 긴급조치규정도 적용하고 헌법적 가치도 살려내는 조화점을 찾아볼 수도 있는 것이다. 법관의 ‘법조적 양심’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더라도 막역한 이웃 주민과의 사담 중에 유신체재를 비판하는 발언이 나왔다고 해서 그것에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다고 믿는 그런 이상한 양심은 아마 없으리라 믿는다. 따라서, 이러한 판결들은 헌법이 명하듯 ‘헌법,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한 결과가 아니라 오직 ‘긴급조치’만을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신봉하며 헌법과 양심에 대한 치열한 고민없이 긴급조치라는 실정법을 기계적으로 과도하게 적용한 무리한 판결들이라 볼 수 밖에 없다.

즉, 이러한 판결에 관여한 판사들을 비판할 수 있는 비판의 지점은, 긴급조치라는 실정법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 법조적 양심에 근거해 헌법적 가치와 헌법상의 기본권들을 살려내기 위한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하는 판사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고 별 고민의 흔적도 없이 너무 쉽게 기계적으로 권력자의 입맛대로 재판을 한 경솔함, 무책임함, 무소신에 있다. 판사가 아니라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들을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같은 유신치하의 긴급조치 관련 사건에서 헌법,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 무죄판결을 내리고 불이익을 감수한 판사들도 있었다는 사실 앞에, 당시 실정법을 그렇게 밖에 적용할 수 없었다는 변명은 더더욱 궁색해진다. 1976년에 수업 도중 박정희 정권을 비판한 혐의로 기소된 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이영구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예나, 반공법과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뒤 진급에서 탈락하는 불이익을 감수한 양영태 전 고등법원 판사의 예가 있어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재판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양심적 판사들이 이 때에도 존재했었구나 하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법치주의 훼손?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로 나선 유신시절이야말로 법치주의가 훼손된 때

이번의 판결내용 및 판사명단 공개를 두고 이것을 대선과 연결 지으면서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으로 확대 해석한다거나 음모론적으로 이번 일을 바라보는 태도도 옳지 않다. 물론 판결문 공개 이전에 미리 그 정보를 흘린 과거사위에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겠지만,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던 사법부의 과거에 대해 근거있는 비판과 역사적 심판을 내리는 일을 두고 이를 대선과 연계시키면서 정치적 배경을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어떤 국가적 사업치고 대선 후보에게 직간접적으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이번의 판결내용 및 판사명단 공개를 특정 대선후보를 불리하게 하기 위한 의도된 정치적 노림수로 몰아간다면, 그럼 대선이 있는 올 한 해 동안은 어떤 국가적 사업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이번 일은 정치일정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법 바로 세우기의 일환이라 봐야 한다. 유신치하의 대표적 인권침해 재판이라 할 수 있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판에 대해 재심을 통해 최근에 무죄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유신치하의 다른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판결은 어떠했느냐를 판단케 할 수 있는 자료를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이번의 공개사업인 것이다.

판결내용 및 판사명단의 공개가 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주장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법치주의가 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듯, 법치주의에 입각한 사법이란 헌법과 법률에 의한 재판이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이다. 이 땅에서 법치주의가 훼손된 것은 판결내용과 판사명단이 공개된 지금이 아니라, 유신치하에서 반헌법적ㆍ반인권적 긴급조치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로 나선 바로 그 때였다. 오히려 이번의 판결내용 및 판사명단 공개와 사죄, 용서, 화해와 전진으로 이어지는 사법 과거사 청산과정이야말로 훼손된 법치주의를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며 우리들로 하여금 진정한 법치주의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론몰이식 ‘인민재판’? 국민을 앞뒤 가리지 않는 우매한 존재로 보는 국민비하적 사고

판결내용 및 판사명단 공개가 여론몰이식 ‘인민재판’이라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최근 한 대법원 관계자가 “사회적 합의와 이해 없이 명단만 공개되면서 과거사 반성을 위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판사 개개인에 대한 비난에 초점이 맞춰질까 우려된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유신정권하에서 판사들이 힘이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왜 그런 판결을 내려야했는지의 정황도 이미 알고 있다. 판결 내용 공개가 특정인 매도로 이어질 것이라든가 여론몰이식 인민재판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우리 국민이 판결내용에 대한 진지한 파악도 없이 판사명단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인을 비난하려 들 것이라는 국민비하적 사고에 터잡고 있다. 국민을 앞뒤 가리지 않는 우매한 존재로 격하시켜 보는 심리가 밑바닥에 깔려있는 주장인 것이다.

스스로 정리할 기회? 인혁당 무죄결정에도 사과 없던 사법부의 낯뜨거운 변명

법원의 과거사는 과거사위가 아니라 법원 스스로 그 과거사를 정리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했다는 주장도 들린다. 물론 사법부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백번 옳았다. 그러나 사법부는 실기(失機)했다. 대법원장이 취임시 취임일성으로 내건 것이 바로 ‘사법 과거사 청산’이었다. 그러나, 이제껏 ‘사법 과거사 청산’과 관련한 아무런 구체적 움직임도 국민들에게는 감지되지 못했고 사법부 스스로가 어떤 성과도 내놓지 못했다. 특히 얼마전 인혁당 재건위 재심에서 무죄결정이 날 때 잘못된 증거채택과 법적용으로 무고한 피고들에게 사형을 언도했던 판사들과 사법부는 유족들 앞에, 국민 앞에 진정어린 사과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사법 과거사 청산’의 작업을 그 때부터라도 제대로 시작했어야 했다. 무죄가 난 8인의 피고들은 사법부의 오판으로 인해 32년 전에 ‘사법살인’을 당한 무고한 피해자들이고 사법부는 오판을 통해 이들의 생명을 단절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 때에도 가만히 있던 사법부가 지금에 와서 법원 스스로 과거사를 정리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푸념하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다. 법원은 지금이라도 법원 스스로 유신치하 긴급조치 관련사건의 판결문을 전부 공개하는 성의부터 보여야 한다. 그리고 공개의 범위를 확대해 장기적으로는 판결문의 전면 공개로 가야 한다. 판결내용을 국민들이 판결문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어야 권력의 시녀로 대놓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는지 마지못해 소극적으로 권력에 동조하는 판결을 내렸는지 옥석을 가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개는 ‘처벌’ 아닌 ‘화해’를 지향하는 사법 과거사 청산과정의 한 시작일 뿐

일각에서 우려하듯이 판사 실명 공개가 ‘인적 청산’으로 연결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법부가 ‘진정어린 사죄’라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보다는 진심어린 사죄가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관련 판사나 사법부가 국민의 인권침해를 막지 못한 데 대해 깊이 반성하고 국민에게 사과한다면 사건당사자나 그 유가족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용서의 미덕을 발휘할 것이고 진정한 화해를 통해 미래의 발전된 사법부로 전진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사위의 정식명칭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라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판결내용 및 판사명단 공개사업은 ‘처벌’이 아니라 ‘화해’를 지향하는 진정한 사법 과거사 청산과정의 한 시작일 뿐이다. 우리 모두가 ‘사법 과거사 청산’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차분하게 가슴에 새기며 한걸음 한걸음 신중한 발걸음을 옮겨가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인혁당 사건의 무고한 8명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고 그들의 억울한 죽음에 영원한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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