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4-10-04   1946

<안국동窓>국가보안법의 자살-간첩 리철진

법이라는 것은 건전한 상식을 보호하는 잣대가 되어야한다. 상식적으로 일어나서는 되지 않을 일을 정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보호해야만 하는 것은 법률적인 잣대를 가지고 보호를 해야한다. 그러니까 법이란 일반인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시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시민의 상식으로 일상생활에서 통용되는 것을 법이 억압하려고 한다면, 원래 선한 의미의 법이기를 벗어나 억압을 위한 도구로 법이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대중문화는 이런 면에서 일반인이 받아들이는 상식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일반시민들이 부담없이 재미있게 즐기는 문화는 내용과 형식을 떠나서 이미 상식의 수준으로 우리사회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 독재정권에서 여러 가지 수단으로 대중문화를 억압하기 위하여 갖은 수단을 동원한 사실을 기억한다.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그것이 오히려 하나의 코메디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상식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훗날을 위한 코메디를 만드는 일을 우리는 절대 용서해서는 안될 것이다.

몇 년전 “간첩 리철진”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였다. 간첩 리철진을 두고 국가보안법에 관한 논란은 없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사람이 상식의 수준에서 재미있게 그 영화를 즐겼다는 말이 될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리철진은 국가보안법 제 2조에서 규정하는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단체” 중의 최대 단체인 북한이라는 “반국가단체”에서 남파한 간첩이다. 조작의 시비가 있는 고정간첩이나 자생적인 간첩이 아니라, 남파간첩인 것이다. 이 무서운 남파간첩이 우리사회에서 겪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영화는 다루고 있다.

남한사회에서 도저히 적응하여 공작활동을 수행할 수 없는 간첩 리철진은 과감한 몇가지 행동을 벌인다. 그 중 하나가 경찰서에 가서 스스로 자수를 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경찰서에서 그의 자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남파간첩은 거의 최후의 수단으로 과감하게 결단한 자수에 실패를 한다. 현재 우리는 지키는 국가보안법에는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한 자는(제 3조)” “간부 또는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제 3조 3항)”라고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자수에도 실패한다.

또 간첩 리철진은 남한사회에서 벗어나고자, 달리 말하면 공작을 포기하고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과감한 공작을 꾸민다. 택시를 잡고선 운전수에게 “평양으로 갑시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하지만, 택시 운전수는 “손님, 양평이겠죠?”하고 평양으로 데려다 주지도 않는다. 이 장면 역시 국가보안법에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제 6조 1항을 보면,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더 진지하게 보면 제 6조 2항에는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하여 잠입하거나 탈출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구절로 대한민국의 보안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아마 간첩 리철진은 1항보다는 2항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1항과 2항의 미수범도 처벌한다고 4항에 명시되어 있다. 그만큼 국가의 보안에는 위중한 죄가 된다고 국가보안법은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간첩 리철진을 관람하고 즐긴 시민들 중 위에서 약간 장황하게 늘어놓은 내용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관람한 분은 없을 것으로 본다. 위의 에피소드를 국가보안법과 연결하여 감상하였다면 영화의 재미가 엄청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것을 늘어 놓는가?

이미 일반시민의 건전한 상식으로는 위에서 이야기한 간첩 리철진의 에피소드가 이미 국가보안법의 준엄한 잣대를 넘은 재미있는 오락의 수준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국가 보안법이 없어졌을 때 광화문 네거리에서 북한의 국기를 들고 흔든다든가, 김일성. 김정일 만세를 부르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을 보면 꼭 간첩 리철진을 보라고 권하고 싶을 뿐이다. 이미 상식에서 정리된 것을 케케묵은 법으로 이제는 더 이상 재단하지는 말자. 일반시민의 상식은 이미 저만치 가고 있는데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의는 왜 자꾸 과거로 가야만 하는가. 우리도 빨리 저만치 따라가자.

결론적으로 간첩 리철진은 어떻게 되었는가?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국가보안법이 자신의 자수도 받아들이지 않고, 잠입탈출도 미수에 그치니까 자살을 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보안법도 이제 자살을 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협동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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