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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05.07.20
  • 1191
대법원장이 바뀐다고 사법부가 바뀔까. 우리의 대답은 망설임 없이 "그렇다"이다. 물론 누가 대법원장이 되느냐보다는, 새 대법원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지금의 우리 사법부가 변해야 할 역사적 요청을 받고 있는 사정이라면, 새 대법원장은 당연히 무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전통과 관습과 법률에만 얽매여 있지 않고, 새 시대의 요구를 유연하게 이해하고 수용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 무난하고 원만하게 법원을 이끌어갈 능숙한 사법 관료가 아니라, 사법부의 미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청사진 한 장면이라도 제시할 수 있는 참신한 일꾼이 취임해야 한다. 이런 주장에는 정당성이 있다. 사법부는 본질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더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 대법원장이 돼야 한다. 이번 「사법감시」는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만들었다.

사법부는 왜 근본적으로 변해야 하는가. 이 물음과 요구에 대해 법원 안팎의 일부에서는 그동안 사법부가 많이 바뀌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듣고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50년 전이나 10년 전과 비교해도 변한 것은 사실이다. 제도도 꽤 바뀌었고 구성원에도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하지만 개혁이든 개선이든 그 변화의 실상은 피상적이거나 지엽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사법부의 고질적 본바탕은 의연히 유지되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문제나 부작용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그 질책과 자성의 소리가 법원 바깥보다 안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바람직한 사법부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그 목표를 앞에 새기고 따져 보면 지금까지 성취했다는 사법부 개혁의 허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밖으로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여 신뢰를 얻고, 안으로는 관료화에 안주하지 않고 민주적으로 움직이는 사법부가 우리의 바람이다. 오늘 이 시간까지 끊임없이 변모를 추구해 왔다는 사법부는 과연 그 기준에 부합하는가. 대법원은 헌법과 법률의 형식적 해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를 방편으로 소수의 이익을 무시한 사례는 없는가. 사회적 약자의 권리보다 오히려 국가나 기업이나 금권의 힘 편에 기울어 묵시적 사정판결을 해버린 경우는 없을까.

우리 법원의 근황에서 이상적 열망으로부터 좀 벗어난 그런 사례를 부인할 수 없다면, 그 근본적 원인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두말할 나위 없이 법원 내부의 구조적 모순이다. 좀더 단순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면 법관 인사 제도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법관 인사의 최상층에는 지금도 대법관이란 자리가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법관이 마지막에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가 여전히 대법관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같은 해 임관한 동기 중에서 한두 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불운의 탈락자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전통의 미풍을 지킴으로써 한 기수의 사법사를 마감한다. 하지만 대법관이란 배석 판사로 출발한 사법 관료의 마지막 승리자 몇 사람에게 안겨 주는 월계관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양식은 무엇보다 대법원의 정책법원화를 계속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무엇보다 대법원 구성은 다양하게 해야 한다. 다양한 대법원 구성은 법원 밖의 법률가를 대거 대법관으로 임명함으로써 가능하다. 대법관을 관료 법관의 마지막 승진 경쟁에서 이긴 사람을 위해 마련해 둔다면, 다양성을 통한 정책법원은 점점 멀어진다.

그 바로 아래는 더 심각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라는 자리다. 고등부장 승진은 현재 법원 인사 제도가 전형적인 관료제도의 틀에 옭매여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 대법관은 수도 적고 어느 정도 관운이 따라야 하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고등부장이란 자리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한 법관 생활의 마지막 승부처다. 그 전 단계인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연수만 채우면 누구나 다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견 법관들의 첨예한 촉각은 고등부장 승진 가능성에 집중된다. 탈락하면 사직이고, 상처를 입고 그만둔 그들에겐 전관예우가 위로의 보상으로 베풀어진다. 그래서 작년 초 법원을 떠난 두 사람의 법원장은 하나같이 고법부장 승진 제도의 폐지 없이는 법원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퇴임사를 남겼다.

이것으로 지금까지 법원 개혁의 허점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겠다. 단일호봉제라는 선의의 제도를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존재하는 고법부장 승진 제도가 관료화의 폐해를 막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대법원의 구성과 운영은 요지부동이다. 그동안 애써 준비했다는 예비판사 제도, 일부 변호사의 법관 임용, 법원의 통합과 신설 등이 무슨 근본적 개선책이 될 수 있겠는가. 장막을 거둬 보니 여전히 법관의 세계는 피라미드요, 그 정점에 대법원장이 있다.

그렇다면 왜 대법원장이 핵심인가. 법관 인사 제도에서 모든 문제가 비롯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대법원장만의 책임일까. 놀랍게도 거의 그렇다. 우리 현실은 그렇다. 바로 사법부의 모든 권한이 대법원장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장은 13인의 대법관 전원에 대한 임명 제청권을 행사한다. 그리고 고등부장은 물론 예비판사를 포함한 전국 법관의 근무 평정과 임명, 보직 부여, 징계에 관한 권한을 쥐고 있다. 대법원장은 앞에서 근원적 문제로 든 대법원 구성과 고등부장 승진 인사의 직접당사자다. 어디 그뿐인가.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5개 주요 국가기관의 구성원 13명에 대한 지명권이나 추천권을 가지고 있다. 법관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6개 위원회의 50여 명에 이르는 위원 위촉도 그의 몫이다. 대법원의 재판은 물론 전국 법원의 예산과 행정에 관한 권한도 예외가 아니다.

대법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외국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당연히 바람직하지 못한 우리 특유의 현상이다. 사법부의 인사, 예산, 행정에 관한 대부분의 권한이 대법원장에게 몰려 있는 실태는 실질적 민주화의 요구에는 물론 지방자치 시대의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된 연유는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과거 비민주적 정부 시절 사법부 독립이란 미명 아래 모든 권한을 대법원장에게 집중시킨 뒤, 독재자는 대법원장만 움직여 사법부를 장악하는 것이 편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 주장의 결론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떤 인물이 새 대법원장에 적합한가. 다양하고 다층적인 시대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미래에 대비하는 진취적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무엇보다 주체할 수 없이 과중한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스스로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법관 인사 제도의 개혁은 궁극적으로 대법원장의 권한 축소를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이미 법원 내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공감대는 상당히 형성되어 있다. 난공불락의 대법원장에서 막힌 부분만 해결되면, 법관들 스스로 합리적 개선을 위해 사심을 버리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진취적이고 기존의 권한에 연연하지 않을 대법원장은 법원 안에서보다는 밖에서 찾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 후보에 해당할 만한 사람은 이미 지금까지 승진의 관료제 습성에 젖어 있을 터이다. 혹 좋은 의지를 가진 인물이라 하더라도, 법원 내부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형성된 인간 관계의 부담 때문에 신념을 충분히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새 시대의 대법원장은 우선 법원 밖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법원 밖에서 적임자를 찾는다면, 너무 세세한 경력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미국 27대 대통령의 임기를 마친 뒤 8년만에 다시 연방대법원장 자리에 앉기도 했다. 나이가 너무 많다고 걱정할 일도 아니다. 혹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대법원장 임기를 채울 수 없는 고령이라고 정치권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일본에서는 정년이 1년 3개월 남은 후지바야시 에키조를 중간 구원투수처럼 최고재판소 장관에 임명했다. 그 뒤에는 검찰 출신 오카하라 마시오로 하여금 겨우 임기 1년 7개월을 수행하게 했다. 우리 법원사에서도 13명의 대법원장 중 임기를 제대로 마친 사람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령의 후보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할 근거는 전혀 없다. 오히려 우리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새 대법원장은 훨씬 젊어야 가능할지 모른다. 파격적 인사라 하더라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무려 37년 동안 근무하며 위대한 소수의견자로 칭송받은 윌리엄 더글러스는 약관 41세에 임명됐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계층의 여론이나 상대적으로 커져버린 여당의 정치 공세에 질려 서둘러 타협해선 안 된다. 여론도 적당히 무마하고, 국회도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성향의 인물 중에서, 사법 개혁의 수행 능력과는 관계없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의중을 잘 헤아려 줄 사람을 내심 정해 놓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1995년 일본에선 전후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사회당의 무라야마 토미이치가 수상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막 새로 임명해야 할 최고재판소 장관에 진보적 인물이 등장하리라는 꿈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무라야마는 최고재판소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보수파인 미요시 토오루를 기용해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선 정반대의 사태가 벌어졌다.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의심의 여지 없이 얼 워렌을 연방대법원장으로 임명했다. 굳건한 보수주의자인 줄 알았던 워렌은 기존의 형식에 구속되지 않고 세계 사법사를 통틀어 가장 찬란한 진보적 사법적극주의의 금자탑을 세웠다. 훗날 아이젠하워는 워렌을 임명한 것이 큰 실수였다며 탄식했다.

대통령은 인간적으로 믿고 임명한 대법원장으로부터 배신당할지 모른다. 따라서 너무 사적인 소통에 의한 정보와 신뢰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어차피 배반당한다면 위의 두 사례 중 어느 쪽이 더 나을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역시 변호사이자 미식축구 선수이기도 했던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가 한 말이 있다.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 중 연방대법원 판사 지명만큼 국가 장래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다." 우리 사법부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보아도 새 대법원장의 의미는 크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새 대법원장에 누가 임명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가까운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우리 사법사상 그리고 우리 정치사상 처음으로 맞는지도 모르는 이 기회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 마땅히 달라져야 할 부분을 서슴없이 다르게 할 수 있는 대법원장을 기대한다. 이번 여름 우리의 서늘한 희망이다.

* 이 글은 7월 20일 발행된 '사법감시' 제25호에 실린 글입니다.
차병직(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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