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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06.09.27
  • 1081
재판관의 정치적 중립성이 무엇이냐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있는 예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발견한다. 존 할란은 대법원 판사가 된 뒤엔 대통령 선거를 포함한 모든 선거에 투표하지 않았다.

행정부에 대한 어떤 명시적 태도도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심지어 대통령 연두교서 연설장에서 박수도 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에이브 포타스는 정반대였다. 포타스는 비상전화까지 설치해 두고 자기를 임명한 존슨 대통령의 자문에 수시로 응했다. 어떤 때엔 백악관 회의에 참석하느라고 대법관 회의를 빼먹기도 했단다.

헌재소장 임명동의 정치 공세

이런 대조적인 일화들을 두고, 한때는 선악이 분명하다고 믿었다. 사법관은 행정부로부터 거리를 두고 정치적 중립을 엄격히 유지해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원칙이었다.

그렇다면 포타스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고, 할란의 자세는 모범의 전형이다. 하지만 요즘엔 이런 생각이 든다. 구체적인 사례는 평범하게 다가와 실감나지만, 기대효과 때문에 항상 각색된다. 극단화된 일화가 전해주는 것은 진실보다는 상징이다. 세상에 절대적 가치가 없듯, 절대적인 중립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정치적 인간세계에선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 이해가 쉬울 수도 있겠다. 19세기 미국 세인트루이스 지방재판소의 판사 제임스 페크는 재직 14년 동안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소송당사자의 얼굴을 보지 않아야 선입견 없이 공평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땠겠는가. 법정에 들어설 땐 누군가가 곁에서 부축하였고, 심리가 시작되면 제출 서류는 서기가 모조리 낭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신은 훌륭하지만, 그 방식까지 효율적인가. 역시 상징으로 읽어야 할 이야기다. 당사자의 겉모습부터 속사정까지 샅샅이 알아야 좋은 재판을 할 수 있다는 반론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은가.

정치적 중립성이란 말 자체도 따지고 들면 쉽지 않다. 시민운동단체도 정치적 중립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하지만 스스로 판단한 결과가 특정 정파에 기울어지는 결론이라고 중립이냐는 물음이 간혹 철학적으로 제기된다. 그래서 중립성보다 독립성이란 어휘를 선호하는 경향까지 생겼다. 결정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바깥의 영향만 받지 않으면 정당하다는 논리다.

이렇듯 매사가 양면적이어서 회의론에 빠져버려도 좋다는 궤변을 늘어놓자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결론에 도달하든, 항상 종당에는 반대 의견을 이해하고 합의할 줄 알아야 한다는 바람이 간절할 뿐이다. 윤리학자라면 또 모르지만, 그들이 정치인이라면 말이다.

헌법재판소에 소장 자리가 빈 것이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놀란다. 그런가 하면 한나라당 소속 국회 법사위원장은 법에 따라 다른 재판관이 직무대리하면 아무 상관없다고 느긋하다.

여당이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선언한 기한이 바로 오늘이다. 제1 야당은 이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심을 마지막 명분으로 내세우며 퇴진을 주장한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정치성과 중립성을 생각해본 것이다.

법률 논쟁은 법률가에게 맡기자

새 헌법재판소장 임명 절차에 문제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하자가 그렇게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헌법학자들의 의견이 갈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관행도 전혀 무시할 순 없다. 만약 한때의 소문대로 지금 헌법재판관 중에 임기가 6개월 남짓 남은 사람을 소장으로 지명했다면, 그는 그 기간 동안만 소장직을 맡아야 옳은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헌법과 법률의 남은 논쟁은 이제 법률가들에게 맡기자. 정치가인 국회의원들은 정치적으로 잘 해결하면 그만이다. 정치적 중립성이 끝내 못 미더우면, 마지막 정치적 의사 표현의 방식인 표결로 하라고 권고한다. 지나친 정치 공세는 간혹 폭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 이 칼럼은 한국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차병직 (변호사,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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