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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06.10.02
  • 821
안상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님 귀하.

오랜만에 지면으로나마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월을 올리는 것은 2003년 대법원 산하에 설치된 '사법개혁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수년간의 논의 끝에 성안된 형사사법개혁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호소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사법개혁의 방향과 방식을 두고 관련 기관들 사이에 논쟁과 타협을 거친 후, 2005년 말 대통령 직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는 형사사법 개혁을 위한 여러 법안을 제출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중요 범죄사건의 경우 국민의 사법 참여를 보장하여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것, 수사기관의 우위가 관철되는 '조서(調書)재판'의 시대를 끝내고 피고인의 방어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상태에서 당사자가 공판에서 전개하는 다툼을 통하여 실체적 진실을 밝히도록 하는 것 등이 법안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다툼이 없는 경미 사건을 신속하고 간이하게 처리하여 형사사법에 소요되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꾀하고, 검사의 기소재량과 판사의 양형재량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계획 역시 법안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항은 현재 여야의 정치적 이해를 뛰어넘는 사안으로, 민주화를 형사사법의 영역에까지 확산시키고, 우리 형사사법의 수준을 OECD 국가 수준으로 높이고자 하는 노력이었습니다.

형사사법 개혁법안 조속한 통과를

그런데 현재 여야간의 정치적 대립으로 인하여 사법개혁법안에 대한 신속한 심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법원장의 발언을 둘러싸고 법조계에서 논란이 일어난 것도 이 법안이 확정되지 않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형사법학자로서 저는 법원, 검찰, 변호사 및 학계가 수년간 머리를 모아 어렵사리 만든 여러 법안이 휴지통 속으로 버려지지 않을까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께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법안 제출이 자신들의 입법권을 건드리는 것으로 마뜩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풍문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안 위원장님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께서 정부에게 법안 제출권이 있음을 모르실 리 없을 것이고, 중요 법안이 국회 외부에서 만들었어졌다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협량(狹量)의 정치인들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오히려 걱정이 되는 것은 형사사법개혁법안이 여야의 정치전략의 희생물이 될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사립학교법 재개정 등을 둘러싸고 여야의 대립이 심각해지고, 모든 사안을 차기 대선 승리의 문제로 결부시켜 처리하려는 '과잉정치화'의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립학교법을 재개정하지 않으면 형사사법개혁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겠다는 식의 원내 전략이 관철되거나, 형사사법개혁의 성과를 현 정부에게 안겨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일이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야 정쟁의 희생물 될까 우려

'대권'에만 관심이 있는 정치인들은 형사사법개혁을 '시시한' 사안으로 볼지 모르지만, 적어도 안 위원장님께서는 형사사법개혁의 심대한 의미를 숙지하고 있으시리라 확신합니다.

형사사법개혁법안을 둘러싸고는 여야간에 첨예한 대립전선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에, 여야가 이 사안만큼이라도 초당적으로 협력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협력이 성사된다면, 이번 국회는 해방 후 현재까지 유지되어 온 낡은 형사사법의 틀을 혁신한 국회로서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법률가로서는 물론이요 정치인으로서도 풍부한 경험을 가지신 안 위원장님께서 형사사법개혁법안의 신속한 여야 합의 통과를 위하여 지도력을 발휘하시고, 또한 형사사법개혁의 유산(流産)이 감지되는 고비고비마다 중요한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안 위원장님의 건승과 건강을 빕니다.

(이 글은 한국일보 2006.9.29자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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