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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07.09.13
  • 927
돈을 벌기 위해서는 죄를 짓게 마련인가? 그래서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던 것일까? ‘낙타’는 사실 ‘밧줄’의 오역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이 ‘낙타’이건 ‘밧줄’이건 결국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뜻이 아닌가? 나야 잘 모르지만, 착한 부자가 되는 것이나 착한 부자로 사는 것이나 다 아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아니,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부자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는 근원적으로 나쁜 존재에 가깝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면, 예수의 가르침은 그야말로 씨알도 먹히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어디서나 부자가 되기 위한 무한경쟁의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마저 열심히 부려먹고 잡아먹고 있다. 그 결과 이 세상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심지어 그 중에는 예수의 사도를 자처하는 자들도 꽤 된다. 그들은 매년 수십억, 수백억의 불로소득을 챙기면서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고 불법세습까지 저지른다. 그러면서 멀쩡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을러댄다.

이 세상은 시나브로 ‘돈 신’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돈 신’은 ‘돈의 신’(money god)일 뿐만 아니라 ‘돌아버린 신’(mad god)이기도 하다. 오로지 더 많은 돈을 향해 미쳐 날뛰는 세상이 바로 ‘돈 신’의 세상이다. 돈이 많으면, 쉽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강력한 권력도 손에 넣을 수 있으며,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결코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돈 신’의 세상은 돈 이외에 어떤 인간적 가치도 멸시받고 폐기되는 비인간적 세상이다. ‘돈 신’은 이 사회를 돈 이외에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불신사회, 난민사회로 만들어 버린다.

재벌은 이런 ‘돈 신’의 세상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본래 재벌은 돈이 아주 많은 집안을 뜻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재벌은 이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뜻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한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대기업군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집안을 뜻한다. 쉽게 말해서 한국의 재벌은 한국 경제의 지배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재벌이 너무나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 경제의 문제는 한국 재벌의 문제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강력한 독점의 문제가 있다. 재벌은 생산과 유통을 독점해서 경제의 경직화를 낳는다. 둘째, 무차별 확장의 문제가 있다. 이른바 ‘문어발’로 잘 알려진 문제이다. 셋째, 무자비한 착취의 문제가 있다. 재벌은 중소기업과 공생하려 하지 않는다. 넷째, 막대한 투기의 문제이다. 부동산 투기는 한국의 ‘제일 망국병’이다. 재벌은 가장 거대한 개발세력이자 바로 투기세력이다. 다섯째, 부당이득의 문제이다. 재벌은 계열사 몰아주기 등의 여러 불법적 방법으로 막대한 부당이득을 챙긴다. 여섯째, 횡령의 문제이다. 재벌은 여러 방식으로 회사 돈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축재하고 ‘비자금’을 만든다. 일곱째, 불법세습의 문제이다. 재벌은 다양한 방식으로 상속세를 내지 않고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준다. 여덟째, 정경유착의 문제이다. 재벌은 자기가 일으키는 수많은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권력과 적극적으로 유착하고자 한다. 차떼기, 책떼기는 부패한 정치권과 재벌의 합작품이다. 아홉째, 경제교란의 문제이다. 경제의 지배자인 재벌은 이렇게 많은 문제를 일으켜서 경제를 지배하기 때문에 결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교란되고 만다. 열째, 사회교란의 문제이다. 경제는 사회의 바탕이다. 따라서 경제가 교란되면 결국 사회가 교란되고 만다.

‘삼성X파일 사건’에서 잘 드러났듯이 민주화 이후 재벌은 아예 이 나라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기 위해 여러 노력을 치밀하게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지금 통째로 재벌의 먹이가 되어 비정상적 ‘돈 신’의 나라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재벌을 정상적 대기업으로 전환시켜 진정한 선진화를 이룰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여기서 핵심과제는 고작 1~4%밖에 안 되는 지분으로 전체 재벌기업을 지배하는 ‘총수’라는 존재를 제거하는 것이다. 총수는 세계적 대기업을 비정상적 재벌기업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재벌 총수의 문제에 대한 여론은 상당히 확산되어 있다. 특히 IMF사태의 주범으로서 재벌 총수의 문제는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재벌 총수는 경제위기론을 강력히 유포하는 방식으로 맞서고 있다. 이 와중에 개혁을 외치면서 ‘재벌과의 사회적 협약’을 주장하는 이상한 좌파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재벌 총수를 기쁘게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재벌 총수를 가장 기쁘게 하는 존재는 이 나라의 사법부일 것이다. 바야흐로 한국의 사법부는 재벌 총수에 대한 면죄부 발급기관으로 전락한 것 같다.

앞에서 잠시 살펴보았듯이 한국의 재벌은 워낙에 많은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죄벌이라고 해야 옳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나는 몇 해 전에 ‘재벌이 아니라 죄벌’이라는 글을 안국동창에 쓰기도 했거니와 이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은 한국 사회를 올바로 인식하기 위한 핵심이다. 재벌 총수는 말 그대로 천문학적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부자이다. 그러나 그 부는 모두 심각한 불법이나 범죄와 연관되어 있다. 이런 재벌 총수의 문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극단적 불신사회, 난민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그 동안 한국의 사법부는 재벌에 대한 봐주기 판결 때문에 커다란 사회적 질타를 받아왔다. 그러나 법원은 도무지 개혁되지 않고 있다. 9월 6일에 막대한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부당이득을 취한 현대차재벌 정몽구 회장을 희한한 사회봉사명령으로 풀어주더니, 이어서 9월 11일에는 ‘보복폭행’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한화재벌 김승연 회장을 같은 방식으로 풀어주었다. 어떤 재벌총수가 법원을 무서워할 것이며, 그 누가 사법부의 공정성을 믿겠는가? 사법부야말로 불신과 불안의 주범이요, 제일의 개혁대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한국의 사법부는 ‘국가경제’를 운운하며 사법부의 존재이유 자체를 쓰레기통으로 내던지는 판결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독재의 시녀’에서 ‘죄벌의 시녀’로 거듭나는 듯한 사법부의 잘못된 행태야말로 ‘국가경제’를 위기로 몰아넣는 근원이다. 어떻게 해야 사법부가 제 구실을 하도록 할 수 있을까? 우선 면죄부 판결을 내리는 법관들에 대한 탄핵을 요구하는 안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서 나아가 강력한 전문주의의 뒤에 숨어 황당한 판결을 일삼는 사법부에 대한 시민의 일상적 감시가 크게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부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통계적으로 부자가 빈자보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오래 산다. 그러므로 부자가 되기 위해 지옥같은 아귀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 사법부는 이런 비인간적 아귀다툼을 막고 사람들이 공정한 경쟁을 벌여서 ‘착한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궁극적 책임을 지고 있다. 갈수록 비정규 불안정 문제가 악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악한 부자’의 대명사와 같은 재벌 총수에게 면죄부를 발급해주는 사법부는 그저 ‘공공의 적’일 뿐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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